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

누군가의 뿌리로, 나에게 더 깊어지는 일에 대하여

by 달이 아빠

언제부턴가 앰뷸런스를 보면 가던 길을 멈추고,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곤 한다.


그 안을 잠식하고 있을 두려움이 남 일 같지 않아,

그 형체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그 단출한 배웅이 끝나면 시선이 머물던 자리에

5년 전 그날 밤이 아른거린다.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를 안고,

앰뷸런스에 올랐던 밤.


그 밤 나는 세상의 끝으로 등 떠밀려,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을 알게 되었다.


아빠로서의 긴 여정이 시작된

긴박하고도 외로운 출발점이었다.


출발만 하면 어떻게든 될 줄 알았던 아빠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드넓은 사막에서 어딘지도 모르는 목적지를 찾아 헤매는 일'이라고 해야 할까.


한 걸음씩 나아가며 이제야 길을 찾았다고 안도하는 순간이면,

그 길은 내 안일한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신기루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길이 사라진 자리에는 낯선 풍경이 자리했고,

그 한복판에 아이와 함께 덩그러니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 허둥댔다.

어떤 길로 들어서야 아이가 덜 힘들지, 수시로 걸음을 멈추고 아이의 얼굴을 살폈다.

아이의 평안이 나의 유일한 이정표였기에, 정작 나 자신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를 살피는 데 온 신경을 쏟다 보니, 거울 속의 나는 점점 낯설어졌다.

이따금씩 스치는 그 낯선 얼굴에 흠칫 놀랄 때면,

'아 어쩌면 아빠가 된다는 건, 나의 세계를 조금씩 허물어뜨리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위해 나를 뒤로 미루는 것,

그것이 아빠로서 감당해야 할 당연한 숙명이라 믿으며,

나는 기꺼이 그 길을 택하고 묵묵히 발걸음을 이어갔다.


그러나 몸과 마음을 다해 아이의 시간을 함께 통과하며,

내가 믿어왔던 것과는 사뭇 다른 진실을 마주하기 시작한다.


나라는 뿌리가 메말라간다면,

내 품 안의 아이 또한 온전히 자라날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그 깨달음 이후 무너진 나를 다시 세우기 위해 매일 새벽 현관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전쟁 같은 일상 속에서도

기어이 시간을 내어 달렸다.


그 새벽의 달리기는

오롯이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었고

흔들리는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사투였다.


그 시간을 지나며 알게 되었다.


아빠가 된다는 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스스로를 잘 살펴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새벽길 위에서 길어 올린 에너지는

자연스레 가족의 일상으로 흘러갔다.


나를 먼저 보듬고 나니,

가족을 돌보는 일은 더 이상 나를 깎아먹는 소모가 아니라

나를 채우는 충만함으로 다가왔다.

특히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은 나에게 일종의 작은 의식이었다.

서투른 손길로 재료를 손질하고 온기를 더해나가는 과정은,

내가 우리 가족을 열과 성을 다해 지켜내겠다는 나름의 결연한 다짐이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하루를 정성껏 채운다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몸소 배워갔다.

그 마음이 내가 사회적으로 이룬 그 어떤 성취보다,

훨씬 더 나를 안쪽부터 채워주었다.


아빠가 된다는 건

거창한 일을 해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를

조용히 지켜주는 일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기억이 문득문득 떠오르기도 했다.


그 기억들을 따라가며,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을

차분히 마주하게 되었다.


동시에 그 빈자리를

치열하게 메우며 견뎌온 어머니의 시간들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아빠가 된다는 건, 어릴 때는 결코 보이지 않던

부모의 뒷모습이 같은 부모가 되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부모를 이해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을 포개어 보며, 내 안에 감춰두었던 진짜 나를 마주하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드는 생각과 고민들을

훗날 어른이 될 내 아이에게도 전하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다 보니 사유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어린 시절 나의 행복과 불행이 어머니의 그것과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깨달음은 자연스레 아이에 쏠려 있던 시선을 아내에게로 옮겨 놓았다.

내 아이의 온 우주인 아내를 살피는 일이 곧 아이를 살피는 일임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시야가 조금씩 넓어지자,

아이를 지키려는 내 유난스러운 마음의 결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 보호 본능 안에는 가장 소중한 존재를 잃어본 자의 두려움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소중 한 사람을 갑자기 잃고 나면,

다른 소중한 사람도 하루아침에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그 서늘한 공포.

어린 시절 내 가슴에 새겨진 그 두려움이, 지금의 내 아이를 과하게 붙잡아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 두려움을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이를 지킨다는 것은 곁에 붙잡아 두는 일이 아니라,

과거의 나로부터 자유로워진 내가

아이를 온전히 놓아줄 수 있는 존재로 성숙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처럼 아빠가 된다는 건 나를 뒤로 미루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나라는 사람에게 더 가까워지는 일이었다.


아이를 통해 ‘나’를 재발견하고,

그동안 외면했던 내 안의 모서리를 새로이 다듬어

나라는 존재의 지평을 넓혀 나가는 과정이었다.


아빠가 되는 길은 여전히 쉽지 않다.

아이가 조금씩 자랄 때마다

매번 새로운 문제를 마주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여전히 허둥대고

때로는 날카로워지며

성숙하지 못한 행동에

스스로를 책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그 시간들을 지나며,

내가 예전보다는 조금 더 '괜찮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나는 삶의 무게 앞에서 흔들리더라도

다시 제자리를 찾아올 줄 안다.


거창한 미래를 이야기하기보다

오늘의 식탁을 함께 나누고,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온전히 느낄 줄 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아이를 지키는 방식이다.

이제 나는 과거의 상처받은 내 안의 아이를 달래느라

아이를 붙잡아 두는 대신,

그 아이를 조금씩 놓아줄 수 있는 여유를 배우고 있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 나라는 사람도 천천히 자라고 있다.

아이가 건네는 행복과

그 안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기쁨으로

내 삶은 점점 충만해짐을 느낀다.

그 충만함은 앞으로 이어갈 아빠로서의 시간을 더 기대하게 만든다.

나는 오늘도

아이보다 한 걸음 뒤에서,

조금 느린 보폭으로 아빠의 여정을 이어간다.


그렇게 아빠로, 어른으로 성장하는 길 위에서,

매일 조금씩 나에게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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