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

무너진 믿음 앞에서

by 달이 아빠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책임을 더 많이 짊어지는 일일까.

해야 할 말보다 삼켜야 할 말이 늘어나는 일,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일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일일까.


어른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주위의 ‘좋은 어른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올랐다.


그 얼굴들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말수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았고,

나설 줄 알면서도 물러날 줄 알았다.


겉은 늘 온화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쉽게 흔들리지 않는 내면을 가지고 있었다.


삶의 무게를 웃음으로 견뎌내는 사람들이었다.


그 얼굴들이 아이 앞에서 무너졌던 나의 순간과 포개지자,

알 것 같았다.


어른이란 스스로를 마주할 줄 아는 사람이란 것을.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바라볼 줄 알며,

그래서 쉽게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아이가 태어난 후 나는 내 안을 얼마나 들여다보며 지냈을까.


그 질문이 조용히 나를 멈춰 세웠다.


러고는 아이를 처음 안았던 날부터 아이에게 고함을 질렀던 그날까지 내 마음의 구석구석을 차분히 복기해 보기 시작했다.


아이가 태어난 뒤 나는 의도적으로 나를 챙길 여유를 두지 않았다.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해서는 한동안 나를 내려놓아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가능한 모든 시간을 가족에게 쓰려했다.

그러다 보니 몇 안 되는 친구들의 연락도, 직장에서의 회식 자리도 하나둘 멀어졌다.


주변에서는 그런 나를 두고 가정적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그래도 내가 꽤 잘 해내고 있구나’ 하며 묘한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집착하듯 가정에 충실하려고 했던 이유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부재로부터 비롯된 어떤 결핍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버지를 일찍 여인 나는 어릴 때부터 막연히 ‘행복한 가정’을 꿈꿔왔고,

꿈속에는 언제나 가정을 지키는 이상적인 가장의 모습이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려왔던 꿈속 장면이 마침내 현실이 되었을 때,

나는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붙잡고 있던 ‘가장의 모습’은 온전했던 걸까.


복기의 끝은 어느새 샤워실에서 아이에게 고함을 질렀던 그날에 닿아 있었다.


나를 ‘가정적이다’라고 표현하던 내 주위 사람들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나는 가장이 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아이 앞에서 무너진 미숙한 나 자신을 마주했다.


그 장면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참담했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표현일까. 부끄러웠고, 애써 외면하고 싶을 만큼 불편한 기억이었다.


그 감정들을 한 겹씩 걷어내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었다.

그날의 내 안에 미안함과 죄책감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마음보다 더 크게 남아 있던 것은,

‘나는 괜찮은 가장일 것이다’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조용히 금이 가고,

결국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감각이었다.


남들 앞에서는 그럭저럭 잘 해내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내 안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이 나를 크게 흔들었다.


위선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고,

아등바등 버텨온 시간들이 한꺼번에 내려앉는 것 같은 상실감도 함께 느끼고 있었다.


복기를 마치고 나서야 알았다.


가족을 향한 마음이 커질수록 내 안은 조금씩 곪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나를 살피는 일’을 미뤄둔 채 책임만 끌어안고 있었으니,

버텨내지 못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르겠다.


문제는 나 혼자 있는 시간을 도무지 일상 안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아침에는 출근이 급했고, 낮에는 일에 매여 있었으며, 저녁에는 아내와 아이를 챙겨야 했다.


결혼 전에는 당연했던 나만의 시간이 아이를 낳은 뒤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이대로 가면 다시 무너질 게 분명했다.
그 생각이 하루의 끝마다 남았다.


일상 안에서 찾을 수 없다면
일상 밖에서라도 나를 불러내야 했다.

아이와 아내가 모두 잠들어 있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시간.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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