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내 아이로 돌아온 나의 아버지

by 달이 아빠

모든 부모는 첫 아이가 태어난 날을 잊지 못한다.

나 역시 그렇다. 다만 나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앰뷸런스에 올랐다는 기억까지 함께 안고 살아간다.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 코로나로 세상이 숨을 죽이던 시절이었다.

그 혼란의 한가운데서 우리 부부에게 첫 아이가 찾아왔다.

임신 기간 내내 혹시라도 감염되지는 않을지 마음 편할 날이 없었지만, 다행히 예정일에 맞춰 분만의 순간이 찾아왔다.

분만실에서 확인한 아내와 아이의 건강한 모습에, 그제야 나는 깊게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안도와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출산 후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신생아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아이가 ‘선천성 빈호흡 증후군’으로 스스로 호흡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신생아 중환자실이 있는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응급 의료진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정신없이 앰뷸런스에 올랐다.

그 직전, 보행보조기를 붙잡고 위태롭게 서 있던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망연자실한 그 눈빛은 지금까지도 내 마음에 깊게 남아 있다. 말 한마디 건넬 수 없었던 그 순간이, 우리 부부가 마주한

첫 부모의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앰뷸런스 안에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차례로 밀려왔다.

그러다 문득 이 상황이 낯설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20여 년 전,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던 또 다른 앰뷸런스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병원으로 향하는 내내, 아버지를 모셨던 과거와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있는 현재가 쉼 없이 겹쳐졌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애걸했다.


제발, 우리 아들만은 살려달라고.


병원에 도착해 아이를 신생아 중환자실로 보내고, 담당 의사에게서 아이의 상태와 치료 방향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이상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해 면회는 불가능했고, 하루에 한 번 병원에서 전화와 함께 아이 사진 몇 장을 보내주겠다는 말이 전부였다.

모유 수유를 원한다면, 냉동한 모유를 직접 병원으로 가져와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그렇게 나는 태어난 지 몇 시간밖에 되지 않은 아들과, 기약 없는 이별을 해야 했다.

아내가 있는 산부인과로 돌아와 그 이야기를 전했다.


어떻게 말해야 덜 아플지 고민했지만, 어떤 말도 중환자실로 아이를 보낸 엄마의 마음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그날 밤, 아내는 산후의 통증과 아이를 볼 수 없다는 절망 속에서 밤새 신음했다.


그 소리는 5년이 지난 지금도 내 귀에 또렷하다.


다음 날, 우리는 예약해 두었던 산후조리원을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셋이 아닌, 둘이서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의 공기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분명 우리 집인데, 남의 집처럼 차갑고 낯설었다. 아기 베개와 이불만 남은 침대는 지나치게 조용했고, 그 고요함은 숨이 막힐 만큼 무거웠다.


그 와중에 감사했던 건, 아이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바로 모유를 유축해 병원으로 전달하는 일이었다. 특히 출산 직후 며칠간만 나오는 초유가 아이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그것을 먹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아내는 하루에도 네다섯 번씩 유축을 했고, 나는 냉동된 모유 팩을 들고 매일 병원으로 향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그 짧은 시간만큼은 마음이 조금 편안했다. 무기력하게 기다리는 대신,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감각 덕분이었다.


초유 덕분이었을까. 아이는 조금씩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고, 마침내 퇴원해도 좋다는 연락을 받았다.

퇴원하는 날, 나는 그토록 보고 싶던 아이의 얼굴을 마음껏 바라보았다. 서툰 자세로 몇 번이고 안아보며, 그 존재를 온몸으로 확인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비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그 억수 같은 비가 우리 부부의 걱정을 모두 씻어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날, 나는 비로소 아빠가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시간이 흐른 뒤 어머니와 그날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독실한 불자이신 어머니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환생해 내 아들로 왔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마지막 숨결을 지켜봤던 앰뷸런스의 인연이, 아들의 첫 숨결로 이어졌다는 이야기였다.


누군가에게는 허무맹랑하게 들릴지도 모겠다.


하지만 그날 밤 앰뷸런스 안에서 아버지를 수없이 불러댔던 나에게, 그 말은 따뜻한 위로였다.


아버지의 마지막과 아들의 처음을 모두 앰뷸런스에서 마주한 사람이 또 있을까.

아무튼 우리 아버지는, 아니 우리 아들은

참 요란스럽게도 내게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