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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

결혼을 망설이는 어느 젊은이에게

by 김먼지


다시금 직장인이 되고 나서 들어간 블라인드에는

생각보다 시시껄렁한 직장인들의 호기심부터

끈적한 육체적 쾌락을 갈구하는 본능주의,

그리고 진짜 현실판 고민이 마구 엉켜있다.


결혼할 만큼 확신이 있지 않은데

다른 사람 만날 자신이 없어서 결혼한 사람이 있냐고.

성격은 잘 맞아 연애중이지만

이 사람보다 조건적으로 경제적으로 더 나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결혼을 결정 못하고 있다고

만나는 사람보다

솔직히 말하면 자기가 더 아깝다. 라는 생각을 한다고.


원래라면 지나칠 글들을 그냥 못지나치고

누군가 나처럼 고민했던 흔적을 덧대어

조심스럽게 댓글을 달았다.



일단 조건이 내가 더 낫다
생각하는 것부터 결혼해서 양보하거나 희생할 생각이 없어질 수 있어

조건이 더 나아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신경써주고 할 자신이 있는 상대를 만나.

결혼은 마구 줘도 아깝지않은 사람이랑 해도
싸우다 보면 살인충동 느껴지는 게 결혼이야

하물며 조건이 이미 느껴지고 내가 아깝다 느껴지면
결혼하고 나서 조금만 손해보는 것 같으면
파국이 예정돼있지..

법륜스님도 김창옥교수님도 그래서
결혼을 장사로 하지말고
손해봐도 괜찮은 사람이랑 하라고 하는거야.
내가 저 사람 짐을 좀 져도 괜찮겠다
싶은 사람.

나 역시 이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 만날 수 있을까 하다가
그놈이 그놈이다 하고 간건데
맞춰지기까지 징하게 걸렸지만
결혼할 때 맘속으로 다짐한 건 그대로야.
이 남자 팔다리 없어도 머리만 있어도
얘 하나는 내가 책임져야겠다는 생각.

누구 덕보려고 하는 결혼 당연 좋다 싶지만
사람일이란게 항상 좋은 쪽만 흐르진 않아서.

애초에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감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편안함이 있고
애틋해하는 것도 있고
빡치는 건 있는데 그래도 말은 통하면
살아지고 나아지고 그러더라고.
일단 차분히 생각해보길 바래.

이사람 어떤점이 어디가 제일 예쁘고 좋고
맘에 걸리는 건 뭔지.
그리고 나는 이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내 심장을 줘도 안 아까운 사람이랑 결혼한 나도
남편 게임중독 때는 내손으로 정리하고 싶었어.

그러니 남들 한다고 휩쓸려가지말구
정말 후회하더라도 얘는 놓치기 싫다
딴 새끼들이 관심갖는 꼴 못본다 할 사람
그 사람이랑 결혼해

10년차얌...


쓰고 보니 내가 친구들 직장동료들 만나서

남편 욕을 그렇게 해도

내 손에 들려있는 맛집 포장음식에

다들 "뭐야 니 남편 사랑하잖아."가 들려서

나도 이제 포기다.


분명 이건 의리라고 넘겨짚어도

책임감이라고 못을 박아도

남편이 강아지 옆에서 잠들어 있는 모습은

사랑스러운 건 반박불가다.

큰 개같기도 하고 아기같기도 하기에.


그래도 게임충모드일 때는 오해머로 머리깨는 상상

다들 한번은 할걸?


"넌 내가 살려두는 걸 고맙게 생각해."

"맛있어.냠냠냠."

극 F인 나와 극 T가 만나

이상한 결혼생활을 이어간다.


내가 만든 음식에 독타서 널 죽일 수 있다고 해도

그 음식 그냥 먹고 죽을 인간이 내 남편너구리다.


이거 확 그냥 죽일까 싶다가도

어휴 이런 둔탱이 내가 먼저 일찍 떠나면

여우한테 홀려 요절하기 딱이다 싶어

이 남자보다는 하루라도 더 늦게 죽어야지, 싶은 10년차 유부녀의

오만오천번째 생각.

꽤 철이 들어가는 중인 남편너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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