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우면 부럽다고 해
부럽다.
INVU라는 태연 노래도 있지.
사람이 사람을 부러워한다는 것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그 부러움이 상대방을 동경하는 긍정적인 부러움인가.
아니면 쟤가 나보다 잘나가거나 잘난게 못마땅한,
소위 끌어내리고 싶은 본능에 기반한 부정적인 부러움인가를 구분하는 것이다.
전자는 나를 더 나아가게 만들고 부러운 대상과의 관계도 발전시키게 되지만
후자는 나는 물론 타인과의 관계도 망치고 만다.
가까운 예로 인스타나 SNS에 올라온 예쁜 몸매와 화려한 생활에 부러움을 표현하는 방식.
"너무 예쁘다, 좋은 시간 보내라"는 전자이고
"뭐 다 뜯어고쳤네" 는 후자일 것이다.
나의 20대는 부끄럽지만 후자의 쪽이었다.
내가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어렵게 어렵게 다니는 대학에서 숨만 쉬고 700원김밥에 허덕이며 알바로 생활비를 연명하고 그 돈마저 엄마 병원비로 60%를 보내던 나였다.
집에서 아들아닌 딸년이 대학을 가는 건 어림없고 주제넘는다는 반대에 울며불며 장학금을 타보이겠다고 약속하고 들어간 대학에서 나는 여유를 느끼는 게 사치라고 여겨졌다.
1학년 내내 얹혀사는 외삼촌 댁에서 외숙모의 살림을 도와가며 아이를 돌보고 아이가 내 레포트를 갈기갈기 찢어도 화 한번 내지 못한 내게
한달 생활비가 풍족해서 반 친구들 모두에게 피자와 맥주를 살 정도로 넉넉하게 베풀기까지 한 친구를
나는 밀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치사한 일인가 싶다.
나의 자격지심
나의 처지비관으로
예쁘고 야무진데 착하기까지 했던 대학동기를 내 손으로 잃었다.
별볼일 없는데 쓸데없는 자존심만 세우다가 참 좋은 친구를 잃었구나 싶다.
지금의 나는 이미 집값도 10억이 넘게 오른 초등학교친구가 일곱번째 상가를 사고 벤츠에서 포르쉐로 넘어가려한다는 소식에 부러움을 마음껏 표현했다.
"니가 진짜 승자다 임마. 이제 미국도 다 접수하러 가라!넌 되고도 남을 녀석이다!."
내 말에 친구는 파안대소 웃으며 그날 저녁에 우리 동네를 떠났다.
나를 초등학교 시절부터 꼬봉으로 대했던 이 친구는 사실 내 결혼식에 오지 않았고 지금도 나를 대등하게 친구로 느낀다는 생각은 크게 하지 않는다.
언제나 필요할 때 누구 주변에 아는 사람 없냐는 연락으로 시작하는 그녀를 내 가족과 남편은 매우 싫어한다. 우리엄마조차도.
사실 주변에 아직도 연락하는 20년넘은 친구들도 그녀와 연락하는 친구는 없다.
그래도 내가 아직도 연락하는 건 단 하나의 내 가치관.
그녀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는 것.
나이가 드니 이 친구가 얼마나 돈을 타고 났는지 사업가의 수완이 진짜 부럽고 배우고 싶은 안목을 가졌기 때문에.
이 친구가 나를 이용하는 거라면
나도 똑같이 이용하면 된다.
그게 나이 마흔을 앞두고
내가 깨달은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