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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조사에서 경사보다 조사를 갈 것

사람도리에 대하여

by 김먼지

기쁜 날보다 힘든 날 뜻밖에 나를 찾아와준 이들의 얼굴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내 결혼식에 온 친구들보다, 할머니 장례식에 온 이들의 얼굴을 더 오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인지.?

초등학교 동창이자 내 어두운 날들의 위로가 되어주던 친우J 의 모친상 연락을 또다른 친우 L에게 카톡으로 전달받고 , 퇴근 후 옷만 갈아입고 남편과 함께 장례식장을 찾았다.

나에게 직접 부고를 보내지 않았는데 남편과 함께 찾아와 준 걸 고마워하며 우리가 장례식장을 떠나면서도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해준 J와 배웅해준 뭇 친우들을 뒤로 하고 올라오는 차 안.

"여보 친구들은 진짜 하나같이 다 의리있다."

당일 받은 부고에도 어느 누구 하나 못 간다 소리없이 밤늦게라도 달려오는 친구들이 속속들이 도착해 오는 것을 보며 남편은 꽤 의아해했다.

남녀를 떠나서 이 녀석들은 많게는 3년 4년에 한번만 만나도 그 경조사 자리에서 인사만 하고 스쳐지나가도
어색하지 않다.

나를 큰엄마 큰아빠와 함께 살며 길러주셨던 친할머니의 부고도 나는 일부러 아무에게도 전하지 않았음에도,
5명의 친우들이 장례식장에 찾아와주었을 때의 그 고마움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엄마 식당 수도 터진 걸 챙기느라 한 친우의 결혼식장에 축의만 한 것이 늘 미안했는데,
이번 J 어머니 장례식장에서 얼굴 보고 한번 더 이야기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열두명 중 아홉은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각자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우리.
그 우리에 내가 있을 수 있게 연락을 해주는 L에게 고맙다.

L이 아니었다면 나는 누구에게서 J의 애경사를 들었겠는가.

한참 오래 전에 세상을 등져버린 못난 놈 산드로에게도 이 광경을, 우리의 이 오랜 시간들을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이 자식 왜 그렇게 빨리 갔냐며 따질 수도 없을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을 녀석이 오늘따라 더 많이 보고싶다.
너도 이 자리에 함께여야 했다고.
그렇게 빨리 가지 않았다면 누릴 수 있는 너의 소중함이 여기 있었을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와이프의 친구가 남자들이라 싫을 만도 한데, 자기가 본 사람들 중에 제일 진국인 사람들 같다며,
내가 결혼식이 두개가 겹쳤을 때 기꺼이 남사친 결혼식에 나 대신 가 준 남편을
내 친우들은 그렇게 알뜰살뜰 챙겨주었다고,
남편은 그래서 이 형들이 이제는 진짜 동네친구같고 내 친구 같다고.

점점 예쁜 말을 잘하는 남편이 고맙고 고맙다. 쌉T도 학습하면 소문자F정도는 거뜬하다. 10년이 걸렸지만.?

아이를 낳아 기르는 기쁨을 그 노고와 헌신을 다하고 있는 또다른 친구 J에게는 이번에는 우리집에도 놀러오라는 고마운 초대를 받았다.

내가 아이가 없어도 고맙게도 초대해주는 그 따뜻함이 좋다.

그렇게 또 살다가 바빠져서 못 보게 되어도 좋다.
그냥 우리는 그렇게 억지스럽지 않게 흘러가듯,
언젠가 한번 또 만나면 그게 반가운 듯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잘되길 바라고,
옛날 생각하다가 피식 웃고,
서로의 사람들을 챙기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생을 피우고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대단하고,
멋진 친구들을 남편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해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니까.

이따금씩 결혼식보다 장례식을 무조건 가라고 얘기하신 어른들 말을
마흔이 다 되어가는 이 나이에 깨닫고 있다.

아무 돌려받을 계산없이 그냥 그 친구와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기쁨 하나로
그 친구의 애도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받았음에
기꺼이 시간을 내보길 잘했다 싶다.

돈이야 또 벌면 되는 것.

내게 소중한 존재들에게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아픔에 동참할 기회는
평생 한번도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누군가의 기쁨도 좋지만 아픔에 더욱 곁을 주고 보듬어줄 수 있는
그런 인생을 오래도록 살고싶다.

더 건강하고,
더 숙고하고,
더 익은 벼처럼 살기 위해 공부해야겠다.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모니터에 나오는 영정사진을 보다가,
나의 부모님의 영정사진을 마지막으로 남길 사진을
나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그렇게 이따금씩
나의 가족과의 이별을 미리 마음에 담아보기도 한다.

골백번은 넘게 갔을 장례식인데,
늘 마음이 아리는 건 참 적응이 안된다.

2년전 떠나보낸 우리 막내 덕구야, J 어머니 혹시 초행길이라 헤매시거든,
고양이로 놀다가도 한번 뵙고 인사드리고 천국 문 앞까지 가이드 잘 해드려라.

못 기다리고 고양이로 환생했으면 패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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