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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워간다는 것

똑바로 내일로 가는 방법. 과오를 인정하기.

by 김먼지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바로 옆 상대방을 포함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


사회구성원으로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기본을

요즘은 안 가르친다.

정확하게는 중요하게 가르치지 않는다.


도덕시간에 배운 윤리가

국영수 과목처럼 주요 입시과목이 아니기 때문에

덜 중요한 과목 쯤으로 여겨져

시간낭비 취급을 받기 때문에.


그렇게 자랐을 한 인간군상이 스레드에 잡혔다.

누군가가 올리며 안타깝다 했을 사진에는

버젓이 자동차크렁크에 개를 싣고 가는 커플이

그리고 그 트렁크에 들어가려 두발을 들고 타려는

하얀 강아지 한마리가.

익숙하다는 듯이 32도 더위에

함께가 아닌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어른을 만나면 인사부터 한다던지,

다친 사람을 만나면 괜찮은 자리를 양보한다던지,

어린 아이가 길을 잃었으면 찾아주려는 노력을 한다던지,

동물은 말을 못하니까 짖는 게 문제가 아니라 짖게 하는 원인이 문제라는 걸 안다던지

한뼘 이상씩은 더 여유있을 나보다 [약자]인 동물,어린이,노인,장애인에게

걸리적거린다는 이유로 배제,학대,무시를 일삼는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에 일어난 동물학대부터 묻지마 살인사건들 모두가 그를 동반한 사회적 부적응으로 인해 생긴다.


우리집 개는 상전이라 부르지만

나는 개가 고기맛을 봐서 사료를 거부하면

8시간을 굶긴다.

새벽 1시쯤 배고파 알아서 밥을 먹을 때까지.


내가 할일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나가자고 떼를 쓰면 모른 척 한다.

그러면 삐져서 방에 들어가 있지만 일과 후엔

간식과 산책으로 다 풀어준다.

입질을 하려고 이빨을 보이면 주둥이를 잡고

주의를 옮긴다.

안되는 건 안되고

단호한 건 단호하게 해야

알아듣는다.


귀여우니까 예뻐만 하는 개는

사람을 아래로 보고 나중에는 개든 사람이든 문다.

자기 뜻대로 안되니까. 손을 쓸 틈보다 이빨이 더 쉽다는 걸 본능으로 안다.


우리는 그런 동물과 함께 살면서

함께 사는 모습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

나 역시 남편과 가게를 하는 7년 중 6년을 시바 두마리를 키우면서

산책이 얼마나 중요한 지 모른 채 초기 1-2년 정도를 이틀에 한번 해주고 그랬다.

막내를 떠나보낸 지금은 첫째와 함께

하루에 최소 40분이상의 한번

많게는 4번의 산책을 해준다.


나보다 작고, 다리도 짧으니 높은 곳에 올라가기 쉽지않으니 위급상황엔 안고

밥을 혼자 따라먹을 수 없으니 물과 사료를 챙겨준다.

산책 시에 튀어나갈 수 있으니 도로 벽 쪽으로 붙여걷게 하고,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만져도 되냐 물으면

꼬리나 수염 귀를 잡아당기지 않고

꼬집지않고

발로 차지않고

주먹을 내어 인사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배변훈련이 서툰 어린 강아지 시절에는

간식과 배변패드를 방 거실 주방 모든 공간을 다 써가며

한달가까이 가르쳐서 익힌다.

(이제는 작은 방 하나 반틈은 강아지 화장실이라 거기 배변패드를 복구는 용변후에 치우라며 코로 접어놓는다)


그렇게 하나씩 배워간다.


저 사람들은 아마도

털이 차 시트에 붙는 게 싫어서

아니면 개가 차에서 배변을 못 가린 적이 있어서

저런 방법을 쓰는지 모르겠지만


이 더운 여름 개가 죽어도 된다는 사고방식이 아니라면

절대 살아있는 생명체를 트렁크에 넣을 리가 없겠지.


개는 장난감이 트로피가 아니고

사이즈가 크다고

짖음이 심하다고

똑똑하지 않다고


버려져도 될 생명이 아니라는 걸

못 배우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정상인들이 곁에 살고 있다면 배울 날이 오길.

내가 하던 행동이 잘못이었다는 걸 알고 인정해야

내일이 있고

자랄 수 있다.


나도 아직 이 아침엔 모르는 것 투성이니

더 배우고 더 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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