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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생각-나를 살아가게 한 사람들

10년짜리 감사함

by 김먼지


내 과오를 잊지 않는다.

내 과거가 제로로 없어지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안다.


다만 그 흑역사보다 지금이

더 나은 내가 되어있는지에 대한 자기검수만이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갈 건지에 대한 자기기대치가


그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갭차이가

있냐 없냐일 뿐이다.


부끄러운 내 어린 시절에 지지 않겠다.


내 부끄러움도 감싸안아주던 직장 선임언니가 서울에 갤러리를 차린지 꽤 됐지만 아직 가보지 않았다.

O언니.

27살 직장에 들어갔을 때 사장님의 조카로 해외영업팀을 맡아서 디자인과 전시기획을 전부 맡고 있던 그녀는 영어면접에서 덜덜덜 떨며 쫄아있던 나를 뽑아줬다.


그리고는 김주임~하면서 이것저것 업무팁도 많이 주고

해외파 출신임에도 서툰 내 영어를 비웃거나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 주머니사정을 눈치껏 알아채던 그녀는 언니들이 사주는 밥과 술에 한번쯤은 몰래 모르는 척 카드를 내밀면 눈감아줄 법도 하거늘 도저히 내가 계산하는 걸 허락치 않았다.


어잇!

어린 녀석이 어딜 결제를!!

안돼요 안돼!!


웃으며 나를 제지하는 언니는 이태원이 한참 핫하던 2014년 시절, 가본적도 없는 나를 구경시켜주겠다며 자기 집에서 샌들이며 나시에 핫팬츠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호텔까지 잡아주던 걸크러시 여전사였다.


파리로 같이 전시회를 나갔을 때에도 언니는 늘 어머니 그림을 사러 오던 지역에서 맛집을 찾아서 알려주고 시골깡촌 출신 내가 먹을 줄 모르는 음식은 다정하게 알려주었다.


엄마의 사채빚으로 내 월급이 차압당하던 날, 어쩔 수 없이 퇴직금과 대출로 해결을 해야해서 하기 싫은 퇴사를 했을 때에도 언니는 진심으로 내 부재를 깊이 안타까워해주었다.


그리고 내 꿈을 포기하지 말고 뭐든 얽매이지 말고 계속 뭐든 하라고,

그 뒤 2년 뒤내 결혼식에도 웃으며 와주었다.


그리고 또 10년이 지났고

우리는 아직 만나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생일이 오늘.


지금 직장에서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고 있지 않아서

언니를 당당하게 만날 자신이 없어,

소정의 쿠폰만 보냈다.


그리고 저녁에 장문의 메시지와 음성메시지가 온 후

나도 바로 전화를 걸어

10년만에 통화를 했는데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았다.


"뭐야뭐야~~진짜 우리 재밌었는데~!안그래도 전사장님이 그저께 우리 셋 있었던 회사시절 너무 그립다고 언제 애들 오라고 맛있는거 사주신다고 하셨는데!"


놀랍게도 2014년 당시 O언니 작은아버지셨던 J사장님께서 아직도 나를 기억해주신다는 것이 또 감사했다.


언니의 전시일정이 한가해지면 서울에서 한번 만나자고 마무리를 짓고 통화를 끝냈다.


역시, 나는 이 언니가 너무 좋다.

우아함과 타고 난 큰 키와 무용에 딱인 서구적 몸매는

나는 죽었다 깨나도 못 따라갈 것임을 안다.

그러나 내가 언닐 만나고 동경하고 닮고 싶었던

진취성과 긍정적이고 에너제틱한 행동양식.

이건 언니를 앞으로도 종종 오래 보면서 많이 닮고 싶다.


다음주에 용산가는 티켓을 끊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언제가 되었든 언니가 나를 반겨주는 따뜻함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 것이다.

이 감사함 또한 10년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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