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5일차]정수기 없는 사무실 어떤데?

새로운 감사와 새로운 의지

by 김먼지


체력은 바닥이 났다.

전쟁을 준비하는 기분.
출근길마다 아침에 원래 일어나는 시간보다 20분 일찍 일어나는 게 익숙해질 것 같다.


사무실에서 버틸 수통 챙기기!

양손 가득 보온보냉텀블러 각 통에다 얼음에 뜨거운 물 잔뜩 넣어나오니 가방무게까지 3kg는 족히 넘는 것 같다.

다음주 중에 설치 예정인 정수기를 기다리며

평소에는 생각을 따로 해본적 없던 정수기에 무한감사를 하고 있는 한 주간이었다.


<감사1 - 정수기의 존재감>


나는 이제 우리집 정수기가 그 자리에 있어주어서

너무 감사해하는 사람이 됐다.

나와 남편의 갈증을 해소하고

산책 후 복구에게 생명수같은 달콤함을 주고

요리에 완성을 더하고

따뜻한 차를 마시게 해주고..


네모나고 하얀 녀석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이러다 이름도 붙여주겠어.....)


<감사2-텀블러의 중요성>


보온보냉은 장비빨이 맞다.

육아맘들 스터디꾼들은 잘 알 것이다.

어린 아이는 없지만 큰애기(=10년묵은 남편)가 사무실이 아닌 차에서 일과를 보내야 하므로

보온통에 가끔 챙겨주는 스프나 국(평소에는 단밸질쉐이크와 두유 우유를 가져가거나 바나나를, 내가 여유있는 날 아침에는 토마토계란볶음이나 샌드위치,김밥류를 스프나 국과 함께 싸주니까)이 식는 건 자존심이 허락치 않는다.


그저께 아침 7시 40분에 얼음을 가득 담아간 하늘색 스탠리 퀜쳐는 분명히 어제 아침까지 그 얼음이 다 녹지 않고 30%이상의 얼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훌륭한 보냉성을 가진 스탠리 퀜처다.

9시간 보냉이면 합격인데

24시간이라니.

(물론 정수기 맹물을 담고 얼음을 꼭대기까지 채워서겠지만 남편이 2개 살때 째려봤는데 미안하다.)


하루종일 운전을 하는 남편에게는 아아담아가기 유용했지만 나에겐 그닥이었는데

정수기 없는 사무실에 가져가기엔 이만한 게 없다.

오늘은 여기 100도씨의 온수를 채우고

얼음은 다이소판 죽통(보온)에 가져가본다.


<감사3-밥은 안주지만 동료의 온기가 있다>


5일째 출근하는 나는

분명 어제 동료에게 도망갈 각을 재고 있다고 했지만

사실은 회사가 싫은 것보다 팀장도 한참 뒤에 출근인 회사에서 업무를 실무에 바로 투입시키려는 조급함에 겁을 먹은 게 사실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식대제공이 없고 직원복지는 소정의 명절 상여 두번이 전부다.

이전 회사에서 구내식당 사장님은 내가 퇴사하는데도 "꼭 이직해도 놀러오면 밥 공짜로 갖다 먹고가라"며 아쉬워해주던 그 온기가 이제 없어서일까.


마음둘 곳이 거의 없는 불모지같은 느낌의 신규센터지점인 이곳에서 버틸 수 있을까.


텅빈 사무실에서 냉기와 싸우며 교육내용 이해때문에 노트북 교육자료들을 보며 밥을 먹어야하는 상황에 없어졌던 위경련이 다시 일어날까 불안할 정도였다.

금요일저녁 갑자기

그러다가 어제 저녁 동료의 '천천히 해도 된다'는 메시지에 눈물이 났다.(빌어먹을 F)

왕T처럼 보이는 동료와 교육담당자가 인간미가 있음을 발견하고 나니

뭔가 어둠의 흑막이 한꺼풀 벗겨진 느낌이고


지금 어제까지만 해도

지하철 안에서 출근하는 내내 집에 갈 생각만 하던 내가

기분좋고 기세좋게 출퇴근을 마치고 주말을 맞이하고 있다니, 신기하다.


이 모든 일련의 시간흐름마저도 감사하다.


1일치

???상태 : 아무것도 생각할 게 없음

2일치

어떡하지.. 상태 : 생각할 게 너무 많음

3일차

도망갈까.. 상태 : 뇌정지 생각이 멈춤

4일차

막막한데..상태 : 파워불안핑N에게 일어날 일 생각

잠시 눈물이 맺힘

5일차

고요한 아침의 나라..상태 : 헤쳐나갈 수 있는 돌파구 생각


<불안핑에서 불도저로>

그리고 6일차 출근을 하루 앞둔 나 자신.

불안핑모드에서

불도저모드로 기어를 변경해보기로 했다.


무슨 일이 생기든

또 뇌정지가 몇번이나 올지를 생각하지말고

그냥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하고

들이받아보겠다.

모르는 걸 배워가는 과정이

즐거운 내 성향이 메인이다.

완벽하지 않으면 스트레스 받아하는 내 성향도

눈치를 여기저기 보고 일어나지 않을 일 걱정하는 내 성향도

모르는 걸 배우겠다는 의지보다 강하지 않기에

버티려고 또 글을 새겨둔다.


감사할 존재들을 떠올려

나 자신 도망갈 통로을 허물어뜨리는 중이다.

자 이제 어떡할거냐.

나아가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으니

다시 앞으로앞으로.

텀블러 덜 닫아서 생긴 누수사건의 피해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느새 새벽3시에 잠안오는 이불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