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잃어갈 때

퇴사할 결심

by 김먼지

주말을 동생부부 집에서 2박3일을 내리 쉬었다.


지난주 금요일 인원충원이 안되면 퇴사를 고려한다는 내 말에 진이 빠진 팀장이

금요일 정시퇴근이 불가능할 정도의 업무를 지시하고 본인은 떠난 후

아침 8시에 출근한 나는 그 일처리를 모두 끝내고

밤 9시 반에 회사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 팀장의 보복성 업무부과로 인해

나는 팀장의 그릇과 내 그릇의 검증이 끝났다.

그녀도 나도 이제 더는 조화로운 업무관계를 맺어가기 어려울 거라는 것을


아침부터 질문에 차갑게 대답하며

질문은 이따가 시간되면 받을테니 이따 물어보라거나

다른 기관 담당자에게 물어보라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밀린 업무를 뒤로 하고 그냥 집에 갔어도 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 밤늦게까지 일하다 나온 나 때문에


주말 약속이 망가졌고 나는 자꾸 내 배우자에게

가정파탄의 빌미를 제공하는 것만 같다.

망가지는 내 몸과 정신 때문에

사람이 날카롭고 부정적으로 변해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니 잠이 안오고 새벽마다 악몽을 꾸는 나 자신의 연약함.


내 자책에 바쁜 내가 괴로워하고 있는 새벽

뇌와 심장이 요동치는 한 영상에 빠져들었다.


역시 갓지영
고트지영...

유니스트가 귀한 인재를 알아본 것 같다.
그녀의 명언이 지나가는 새벽
내 귀를 때리고 갔다.

나를 잃으면서 얻어야 될
어떠한 소중한 가치도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아요.

나를 놓으면서
나를 바닥에 내팽개치면서

모든 의무와 책임을 다 짊어지고

자신을 괴롭히지 마세요.

나를 잃어가면서 다녀야 할 회사는

잘못된 회사라는 생각을 왜 못하고

나는 자꾸만 나에게만 채찍을 들었을까.

애초에 퇴사한 동료가 현명한 선택을 할 동안

나는 그러지 못한 것을 이제야 후회했다.


1.5에 입사해서 첫날부터 느낀 걸

이제서야 확정하다니.

역시 나는 느리구나.

그래도 다행히 늦지 않았다.



나를 잃으면서
내 건강을 무너뜨려가면서
지금 회사를 다녀야 할 이유에 대해

일부러 두 달을 끌고 온 내 앞에

이지영교수는 너무 자상하게
답을 알려주고 있다.

남편은 나에게
"니가 죽을만큼 노력해서 몇년뒤 된 사람이 그 팀장이라고 생각해보면 이미 답 나왔잖아.
그 회사가 대우해주는 게 고작 그거."

엄마는 나에게
"회사를 오래 다니려면 보고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하잖아.
그 팀장이 위에 사람들이 니가 닮고 싶고 배우고 싶은 뭔가가 남아있어?그걸 생각하고 버텨야지 무턱대고 버티는 게 능사가 아니야.
거기 아니면 안될 정도로 포기하지 못할 뭔가가 있다면 버티는 게 맞지만
너는 지금 보면 거기 아니어도 대안이 많잖니."

동생과 제부 역시 내가 다니는 회사가 얼마나 내 성향과 반대인지를 잘도 짚어주었다.
"사람을 부품으로 보고 부려먹는 회사에다가,
통제광 팀장 밑에서 언니가 참고 다녀야 할 가치가 뭐야?"
"돈이라도 많이 주던지, 팀장이 좋던지 뭐 남아서 좋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집착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음.
입술이 터지고 악몽을 꾸고
매일 근육통약과 두통약 소화제를 먹으면서

사람은 그래도
이렇게 일이 재미있다고 버텨오기에
(실로 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내가 전달하는 정보가 도움이 될 때 큰 성취를 느낀다)
나는 이제 퇴사한 동료를 타겟으로 둔 괴롭힘이
나에게로 향하는 지금을
받아들이거나
되받아치거나 하는 양자택일의 선택을 해야 한다.

아직도 부어있는 목과 나아지지 않는 근육통이
내 몸이 지금 쉬어야 할 때를 말해주지만
퇴사를 결심했다면
빠르데 다음 단계를 바라보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걸

새벽의 현자들의 명언을 두드려맞고서야

머리가 맑아지니

아침 출근길이 왠지

무섭거나 무겁지 않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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