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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먼지 Aug 13. 2023

소중한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덕구의 추모함이 복구의 보물상자로

부스럭부스럭.

딸그락딸그락.


주말 해지는 저녁, 이불 한무더기와 옷가지들을 세탁기에 돌리고 건조기에 돌리고 앉아서 티비를 보다가 누웠는데, 덕구의 추모함이 놓인 베란다에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또 털어가게?"


같이 살 때 빼앗긴 간식들이 사료들이 억울했는지,

복구는 자기 밥그릇에 있는 사료를 두고도 종종 덕구의 추모함으로 머리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고기를 굽는 날에는 여전히 그릇 두 개에 정성스레 담아 복구의 식사를 먼저 챙기고 덕구의 그릇에 놓아둔 고기는 다음날 아침이면 깨끗하게 비워져있는 걸 보면서,

우리는 이제 울지 않는다.

처음엔 두 마리와 함께 하던 식사시간이 생각나서 아프고, 그 다음은 먹지 못할 덕구가 생각나서 가슴이 시리다가, 여전히 남아있는 그 양에 눈길이 갈 때마다 눈물이 가득 찼다.

"어디서 잘 먹고는 다니는거냐 이놈아."

물론 덕구는 시바산 평정을 다니는 동안에도, 이 동네 일대를 밤새 쏘다니는 동안에도 공원이고 캠핑장이고 여기저기서 잘 먹고 다닐 거라는 생각을 했다.


출근하는 아침 유일하게 우리 넷 중에 밥을 꼬박꼬박 챙겨먹던 녀석이었으니까.


이제 비워지는 덕구 추모함 그릇은 복구가 즐겨찾는 보물창고가 됐다.

"쟤 저기 가는 데 맛들렸네. 아주 지 세상이여."

기운차게 덕구 것을 훔쳐먹고 만족해하는 복구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이제 덕구의 생각보다도 복구의 귀여운 얼굴을 더 떠올리는 내가 신기해진다.


"정말, 시간이 약은 약이구나."


덕구 추모함에 날마다 머리를 들이미는 복구
오늘 메뉴 내꺼랑 똑같은건지 확인차 온거야.

덕구가 좋아했던 오리육포는 제일 먼저 먹어치운 녀석.

그래, 6년동안 "뺏기며" 산 너에게도 이제 "뺏어먹는" 재미가 생겼겠구나.

훔쳐먹다 걸려도 육포는 질겅질겅

이제 이틀 후면 덕구의 49재가 다가온다.

"두마리 키우다 한마리라 많이 힘들지?"

"이제라도 애기 가져. 부부가 애가 있어야 힘든 것도 이겨내고 사는거야."

"쟤 쓸쓸해서 어떡하니. 동생강아지 와야 하는 거 아니야?"

이웃들의 적당한 위로와 걱정의 말들은 감사하지만 우리는 덕구의 죽음을 대체할 무엇도 찾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덕구는 우리와 함께였고, 죽음 뒤에도 녀석이 원할 때는 언제든 우리에게 다녀갈 것을 믿는다.


다만 너무도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덕구이기에, 이전에 우리와 살던 6년이 녀석에게는 어떤 때는 감옥같았을 수도 있겠다 싶다. 옷과 목줄은 원래 싫어했고 우리와 24시간을 함께 있는다 해도 가게건물안에 묶여있는 시간도 답답했을거고, 3시간을 넘게 달려도 모자란 녀석기준의 산책이 하루 한두번 한시간으로 만족되지 않았을 터.

이제 언제든 목줄없이 정처없이 돌진할 덕구.

고양이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이 산 저 산 오르며 마음껏 땅도 파고 흙냄새 나무냄새도 맡으러 다닐 덕구를 생각하니,

아 이거 나 너무 오래 붙잡고 있는건가.

덕구가 나 때문에 그 원하던 자유를 못 누릴까 싶어 괜시리 겁이 난다.

홍삼은 덕구꺼로 남겨주자.

"홍삼은 덕구꺼야."

피로회복 좀 하라고 둔 홍삼스틱을 덕구가 지칠 때마다 먹고 갔음 좋겠다.

복구도 홍삼은 건드리지 않는다. 기특한 형아다.


소중한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내가 만질 수 없는 몸이 되어 영영 우리의 곁에 머물 수 없다 해도,

덕구를 기억하고 싶어 만들어둔 추모함이 복구의 보물상자가 되듯,

덕구의 존재가 우리에게 선물이 된 6년 전의 여느 날처럼 덕구의 죽음 또한 우리에게 잊혀지지 않을 덕구의 삶의 마지막 장으로 아름답게 사랑해주어야 할 일이 된다.

우리는 그 할 일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씩씩하게 걸어나가서 이 생을 달려나갈 것이다.

닿을 수 없는 곳까지 달리다 우리 삶도 끝나고 나면,

그 땐 덕구야,

평생 같이 살자는 말로 부담은 주지 않을테니

얼굴 한번 보여줘. 그 동그란 눈으로 우릴 바라봐줘.

그리고 다시, 너의 갈 길을 가.

사랑한다 아가, 아주 많이 소중한 우리 덕구.


소중한 존재가 있음에 감사한다.

오늘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 그 모든 존재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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