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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먼지 Aug 27. 2023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대한민국에 없다

노블레스말라드,귀족인간의 착각

돈이 힘,힘은 전부

다주택자 중 빌라사기의 혹자는 젊은층의 돈을 뜯으면서 안심시켰을 것이다.

"내가 여기 건물만 500채 있는 사람이야.!"

강남 한복판, 고급 상가를 지나가는 집 한채 값의 차를 몰고 다니는 어느 재벌집 자녀들은 마약이 가능한 클럽에 들어가며 자아도취가 되었을 것이다.

"감히 너희 따위가 바라볼 수 있는 상대가, 말 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이 몸은.!"

드라마 영화가 너무 비현실적인 거 아니냐는 핀잔이 무색하게, 우리나라의 사회지도층, 혹은 부유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배운 게 도무지 "돈이 힘이고 힘이 전부" 라는 논리밖에 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람을 죽이고 때리고 차로 치어도 돈이면 해결되고
애초에 돈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다고 가르치는 사회.
돈있는 집으로 시집과 장가를 보내야 하고,
무조건 "사"자 들어갈 전문직 이상의 커리어를 가진 이들과 엮여야 한다.
돈을 무조건 많이 벌어야 하기에, 그래야 힘을 기를 수 있기에
무조건 힘을 기르기 위해 불법도 서슴지 않고 돈의 힘들을 과시하며 세력을 모은다.
그리고 그것은 대대로 대물림되며, 가끔은 변질되어(주로 하방곡선을 그리며) 세상을 어지럽게 하기도 한다.
"좋은 일을 할거야, 정의를 위한 일을 할거야 "라는 신념도 그렇게 오로지 돈과 힘을 위해 따라가다 보면
과연 그것이 정의가 맞는지, 현타가 오고, 결국 물든다.
정의는 힘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그 정의조차 지금은 미정의되는 사회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사회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해외 슈퍼리치들의 제대로 미친짓 : 다보스포럼에 보낸 102명의 슈퍼리치 공개서한

외국의 부자들은 우리나라 부자들과 다를 바 없을거라 생각했고, 아니 오히려 더 많고 더 넓은 땅덩어리에 사는 자들이니 욕심을 부리면 더 부리지 덜하진 않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월트디즈니 상속자의 서한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당황스럽다.

https://imnews.imbc.com/news/2022/world/article/6334219_35680.html
mbc뉴스 전달 / 국제부 임소정 기자

내용의 요약은 월트디즈니 가문의 상속자 애비게일 디즈니와 벤처 투자가 닉 하나우어 등 102명의 서명이 속해있는 공개서한이 2022년 1월 17일 전달되었다는 이야기.

 "부자인 우리는 현재 세금 체계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려면 전 세계는 부자들에게 정당한 몫을 요구해야 한다. 우리 같은 부자들에게 당장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

이런 멋진 말을 뱉어버리는 사람이 월트디즈니가의 상속자를 포함한 슈퍼리치들이라니. 등골이 확 펴진다.




한국에는 없는 노블리스 오블리주

우리나라 국회의원들과 뭇 "상류층"병에 걸려있는 일부 졸부들이 들으면 저런 기사에는 아마 "헐. 저런 미친새끼들"이라는 쌍욕을 해대며 혀를 끌끌 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국회의원 월급이 900만원 정도 된다는데, 잼버리 파국에 공무원들은 나라 세금으로 신혼여행같은 유럽여행을 잼버리가 열리지도 않았던 스위스와 이탈리아로 신나게 다녀왔는 모양이다.
그 돈들이 당연히 지역구민의 고혈이라는 생각은 아마 들었을 것이다.
"고혈"의 뜻을 안다면 그렇게 펑펑 써제끼며, 자기들만의 이익에 도취되어 현안이던 배수시설 점검이나 화장실 시설개선을 게을리 하지 못했을 것이다. 서민의 아픔을 달래겠다며 집값은 포기 못하고 배불리려 이거저거 집 몇 채, 땅 몇천평씩 사들이진 못할테니까. 전북 부안에서 일어난 만행. 잼버리만 봐도 우리나라 사회지도층의 수준 따위를 알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법안을 발의했던 '일하는 국회법'도 무산시킨 이 나라 욕심쟁이 부유층 국회의원들만 봐도 당연한 결말이었고, 기득권층이 [내려놓지 못하는 집단]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결석하면 월급 깎자"며 2020년에 발의되었던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일하는 국회법’ 은 유명무실해졌다가 최근 오기형 의원에 의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른 듯 하다.

https://www.news33.net/news/articleView.html?idxno=93998

통과될 수 있을까..?글쎄.....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제국 2,000년 역사를 지탱해준 힘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철학"이라고 했다. 560여 년 전통의 영국 최고의 사학명문 '이튼(Eton) 칼리지'의 교내 교회 건물에는 전사한 졸업생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제1차 세계대전 1,157명, 제2차 세계대전 748명이다.

미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만만치 않다. 6 · 25전쟁 당시 미국 참전용사들 중 142명이 미군 장성들의 아들이었다.5) 심지어 핀란드에는 소득 수준에 따라 벌금을 내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법(法)'이 있다. 그래서 핀란드의 닷컴 백만장자인 야코 리촐라(Jaakko Rytsölä)는 자동차로 시속 40킬로미터의 제한 구간을 약 70킬로미터로 달렸다가 50만 마르카(약8,700만 원)의 벌금을 냈다.6)

"이 나라 지도층의 도덕성이 이렇게 추락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이들을 보면서 '노블레스 말라드(Noblesse Malade)', 즉 병들고 부패한 귀족이라는 비아냥이 딱 맞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지도층이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7)
[네이버 지식백과] noblesse oblige (교양영어사전2, 2013. 12. 3., 강준만)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는 부동산정책,금융정책들로 서민을 어지럽게 하기보다, 조금 더 책임감있는 자세로 귀기울이고 발로 뛰어줄 수 있는 귀족들이, 대한민국에는 필요하다.



인정의 욕구가 변질된 한국의 귀족들


연예인의 부동산투자 성공이야기들이 뉴스기사거리로 등장하는 나라는 후진국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OECD국가 중 자살률 부동의 1위의 대한민국의 귀족들은 그들이 가진 고급차와 주택, 부동산, 온갖 물질적인 것으로 치장을 아끼지 않으며 [나는 성공했고, 너희의 머리 꼭대기에 있지. 너희들은 내 발밑이고 결국은 가난뱅이 루저야] 라는 프레임으로 끊임없이 가스라이팅해가며 우리같은 서민들에게 수천번을 위화감과 좌절감을 안겨준다. 뒤틀린 인정욕구가 만들어낸 "고학력 모질이"들의 세상이다.

이런 저급한 의식들을 애써 서민들에게 깨닫게 해서 우월감을 느끼며 인정받으려 봐야 부정적인 사회의식만을 만든다는 걸 그렇게 많이 배운 사람들이 모른다는 사실이 참 웃프다.

결국 그들이 만든 사회에서 누군가는 노동자로서,서비스제공자로서, 그들의 필요에 의해 움직여줄 사람들이 우리 같은 서민들인데, 자기들끼리 만든 사회에서 서민이 되어줄 귀족은 없을테니까.

(내 자식이 남밑에 있는 걸 볼 리 없는 승부욕 강한 귀족들이라면)

그래서 귀족은 평민,서민,국민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
하다못해 길가에 있는 거지에게조차 함부로 발길질을 하거나 침을 뱉어서는 안된다.

그들이 견디다못해 빼어드는 칼이 당장은 그 귀족의 발을 향하지는 않더라도,
이미 서현역 칼부림사태나 이런저런 사회적 범죄가 주는 안전하지 않은 일상부터 그 귀족이 지탱할 힘을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상가건물을 몇 백 채 몇 천 채 사들인 부유층들도 결국 그걸 이용해주는 많은 서민들이 움직이고 소비를 해야 , 그리고 그 안에서 자영업을 하러 들어오고, 누군가는 밥과 술을 먹고 물건을 사야 그들의 손에도 돈이라는 게 들어간다.


유기적이지 않은 관계는 인간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기업도 중소기업과 하청업체와 소비자,투자자들이 존재해야 유지가 되고, VVIP들이라 불리우는 귀족들의 삶조차 그들이 가진 걸 이용해 부려먹을 사람들이 없어지면 결국 자기 손으로 운전을 하고 청소를 해야 할 뿐이라는걸.

그들은 결코 히어로나 이세계물 속 주인공이 아니라서 마법을 부려서 일을 해결할 수 없다.

돈으로 사람을 부려야 하고, 힘으로 누군가를 눌러야 해결이 된다.

심장이 하나인 나같은 서민과 똑같은 사람 이기 때문이다.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우주의 먼지같은 존재.

하찮은 존재들 중에서 나라비를 세워봐야 그냥 조금 더 반짝거리고 부피가 큰 먼지이자 자연에게 많은 걸 허락없이 빌린 채 자신들의 왕국을 세워가지만 결국 멸망을 향해 똑같이 달려가고 있는

지구의 세입자일 뿐.
당장 보이지 않기 때문에 와닿지 않을 뿐.

지금 그들이 자기들만 우월하다고 여기며 도배해가는 물질만능주의적 가치 속에 자라난 다음 세대들이,
머지않아 그들이 원하지 않는 사회의 방향으로 흘러갈 때,

그 때 책임은 누구에게 물을 것인지.

생각이 풍부한 부자가 많아지면 좋겠다.
양심있는 정치인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미래를 조금 더 밝게 바라봐줄 대안을 만들어줄 수 있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죽을 때까지 내 정신으로 글을 계속 써나갈 건강한 힘만을 기르고 싶고, 저녁 노을을 보며 카누커피 한잔 타마시면서, 이웃과 계란한알 깻잎한장 정겹게 나누는 사회에서, 사라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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