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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먼지 Aug 24. 2023

달라진 일상, 하늘에 안부를 묻던 날

대답은 시원한 빗줄기랄까.

사랑하는 막내를 보낸 후 이제 두달이 다 되어간다.

두마리에 휩쓸려 끌려다니던 우리 산책은 이제 여유롭다.


날이 34도로 더운데도 뽈뽈거리며 빈약한 집사 체력은 안중에도 없는 복구녀석은 덕구의 죽음 이후 훨씬 편안해보인다.

"언니 복구 살 너무 쪘다. 살접히는 거 봐.....어디 아픈 거 아니야?"

"그러기엔 너무... 잘 먹고 잘 잔다. 가끔 성질도 더러워져서 얄밉다."

 강아지들을 사랑하는 동생은 덕구가 죽고나서 무리해서 복구를 보러오고, 사랑을 준다. 그동안 무심했던 자기를 수없이 되뇌이면서.

(그녀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많이 구구를 사랑한 사람이다)


동생집에 마련된 덕구의 추모공간. 우리집보다 예뻐...

제부와 동생의 카톡프로필 사진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구구다.

제부의 카톡프로필사진(좌)과 동생의 카톡프로필사진(우)

덕구 빈자리가 느껴질 때면 왕자병 걸린 복구가 쉴틈없이 땡깡을 부려서 그 자리를 대신한다.

"워르워!!!"

(나 여기 있어. 나 좀 신경써. 이미 떠난 놈 생각보다 내 생각좀 해달라구)

그럴때면 덕구생각을 멈추고, 우리 앞에서 자기를 마구 어필해대는 구에게 다시 집중해본다.

비가 오는 날이면 가게문을 다 닫고 털공에 인형을 던지며 놀아주고,

해질녁 도자공원과 빌라옥상에서 체력이 하찮은 복구의 뛰뛰를 마무리해준다.

덕구가 있을 때는 불안하고 어려웠던 모든 코스가, 복구만이 남은 지금은 너무 쉬워져버린 일상.

이제 길 필요가 없는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면, 더위에 시원한 물을 찾아 마신 복구의 입주변에 묻은 물방울을 닦아준다.

"으이그 많이도 잡쉈네."

죽은 덕구를 따라하려는지, 물이든 우유든 밥알이든 흘린적없던 복구가 이제 콧잔등에 물도 묻히고, 음식도 흘리며 먹는 모습이 낯설다.


 주말에는 남편이 먹고 싶어하던 순대국 맛집을 찾아서 먹었다. 간을 하기 전 반찬통에 담아온 고기와 내장을 흰쌀밥에 주물럭거려 육수없는 국밥을 만들어 먹였다.

이건 사실, 죽은 덕구가 살아생전 찹찹거리면서 밥알 하나 안남기고 먹던 국밥. 국물있는 요리를 술먹은 부장님 해장국 먹듯이 마시던 덕구가 생각난다.

두 그릇에 나눠담고서, 한 그릇은 복구에게, 남은 한 그릇은 지금도 천국과 이승 어느 한복판 흙마당에서 뛰어다니고 있을 덕구의 추모함 위에 살포시 얹어둔다.


2개월령인 녀석을 데리러 갔던 분양샵 유리관 속 강아지를 보며 남편은 [밥잘먹는 놈은 건강해]원칙를 따라 데려온 것일테다.

그래서인지 덕구는 6년을 살면서 단한번도 토를 한 적이 없었고, 사고쳐서(1.배스킨 스푼을 몰래 씹다가 어금니잇몸에 박혀 전신마취로 빼는 2.베란다에 얼굴 내놓고 자다가 코감기 3.낙엽따라 점프앞돌기하다가 슬개골탈구) 갑자기 병원 가거나 접종을 하러 가는 일 말고는 병치레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러고보면 우리 덕구 진짜 튼튼했다."

우리를 너무 일찍 떠난 아이가, 빈자리가 미칠듯이 그리운 날에는 이렇게 애써 위로한다.

즐거웠던 이야기로 자꾸 눈물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채운다.

내 눈물이 흘러내리는 속도보다, 녀석이 우리에게 준 추억과 사랑스러움이 가슴에 손난로처럼 지펴지는 온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에.


어디서 노는지 모르지만 급하게 뛰어가다가 유리조각 밟거나 은행밟지 말고

유유히 이제 목줄도 없으니 천천히 걸어도 보면서 땅과 바람도 느끼다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모습으로 환생하길 바라면서

침대에 누워 덕구가 늘 누워자던 자리에 얼굴을 대본다.


이렇게 편안하게 주말을 보내던 우리였다.

누워있는 그 까만 몸을 하루에 한번은 꼬옥 안아주었다.

어디론가 떠나버릴 것 같은 녀석에게 우리를 받아들여달라고 기도하듯이..

그리고 기어이 떠난 덕구를 데리고 있을 하늘에게 안부를 묻고,

커다란 빗줄기를 답으로 얻은 날이다.


살아있어야 누릴 수 있는 많은 것을,

하늘 아래서 누리고 있는 우리에게 차갑도록 일러준다.

이 비가 우리에게 채찍이 되어 오늘 하루도 미친듯이 열심히 살라고.

죄책감과 상실로 얼룩진 하루말고,

새로운 날이 주어진것에 대한 감사와 지난날의 추억으로 알록달록한 하루를 살길 바란다는,

하늘의 답 같아서.

우리를 내내 지켜볼 덕구의 사랑스런 메시지같아서.

오늘은 일찍 눈물을 거두고 씩씩하게 밥알을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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