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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먼지 Oct 22. 2023

어시마라이프

Ep.02 안먹어 시바

"어라? 얘 봐. 사료 다 뱉어"

고기랑 사료를 섞어서 주는 특식을 열심히 준비했는데, 수박씨 뱉듯이 뱉어버리는 사료 알갱이가 땅에 굴러떨어진다.

"고기만 다 골라먹네 이 새끼!!"

"야 너도 코코볼만 한달내내 먹으라고 해봐. 먹을 수 있어?"

"아 몸에 좋다면 오래 살려면 먹어야지."

"막창 떡볶이 돈까스 포기할 수 있어?"

"난 사람이잖아!"

"쟨 강아지잖아!! 코가 예민하면 맛있는 거 우리보다 더 맛 잘 느끼겠지!!그러니까 편식한다고 뭐라고 하지마."

..........남편은 왜 이럴 때 말을 이렇게 잘하는걸까.

복구는 사료는 쳐다보지도 않고 휙 돌아서 제 침대로 돌아가 눕는다.

그래. 맛있는 거 개도 알지. 



"회식 왔으니까 술 좀 먹어야지? 술 뭐 좋아해요?"

남편의 거래처 영업을 갔던 나는 원치 않는 1,2,3차 술에 취하지 않게 위해 화장실까지 가서 토하고 마시고 토하고 마시고를 반복했다.

중요한 거래처이기에 와이프까지 동석해서 술과 밥을 사고, 새벽 3시가 넘어서 집에 오기 일쑤였다.


남편은 가게를 하기 전에는 매일 퇴근 후 반주로 소주 한병씩을 마시고, 친구들을 만나서도 집으로 친구들을 불러서도 술에 취한 날이 일상다반사였는데, 그 때 그 거래처 접대 이후로 술자리를 만들지 않게 되었다.


억지로 무언갈 먹는다는 게 괴로운 일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누가 친절로 준 것은 남기지 않고 다 먹던 나였고,

돈 주고 산 음식은 어떻게 해서든 바닥이 보이게 해치워야 직성이 풀리던 나였다.

그런 나는 남편과 연애를 하면서 "남기는"법을 배웠던 것 같다.

하와이 신혼여행에서 유명한 스테이크하우스에 가서도 시뻘건 사시미를 시킨 남편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스테이크집 왔다고 스테이크만 먹어야 해? 여기 메뉴에 사시미 있잖아. 내 맘대로 먹고 싶은 거 먹고, 안 먹고 싶은 거 안먹는 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

"고기 남기는 거 왜 이렇게 아까워해? 오늘만 고기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먹고 소화 안돼서 못 자지 말고 그냥 남겨.먹기 싫을 땐 억지로 먹지 마."

이 날 스테이크를 혼자 썰고, 그 날 유독 고기가 땡기지 않던 남편은 사시미로 배를 채웠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접시 위에  "고기"를 남겼다.




시바는 꼬릿꼬릿한 냄새를 엄청 좋아해.

그래서 우린 치즈를 좋아하지. 그런데 그 치즈 짜다고 나 안주더라.

나에게 사료만 먹으라고 하면 솔직히 기분이 나빠.

왜 니들은 배달의민족 요기요 다 시켜먹으면서 냄새 풍겨놓고

나는 안줘??

니들만 입이야???

내일부터 사료 안먹어 시바.

고기 줘.

치즈 줘.

사료 먹으면 준다고 하지 말고

고기부터, 치즈부터 줘. 좋아하는 거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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