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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먼지 Oct 22. 2023

어시마라이프

Ep.01.  안가 시바

"아놔..얘봐라.?"


복구는 아침부터 바쁜 우리랑 다르게 콩침대에 늘어져서는  아무리 목줄을 당겨도 미동도 없다.

산책이 아니라 출근을 안한다는 확고한 의지.

30분의 대치끝에 우린 결국 이 녀석을 거실에 두고

유튜브로 음악을 스위치로 조명을 켜둔 채 출근했다.

복구의 연차가 쌓여간다.

이건 마치 월요병 걸린 나를 보는 것 같은 아침 단상.

모든 강아지들이 항상 집사들과 함께 있는 걸 좋아하지만 그게 같이 하는 "출근"이라면 얘기는 달라지나보다.

집에 있겠다고





"이번주에 일산(시댁) 가자. 얼굴 안 보여드린지 오래 됐어."

"봐서."

이 무미건조한 말투의 남편은 나의 친정보다 시댁을 더 안 간다. 부모님과 딱히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면서 그냥 본인이 피곤하면, 친구들을 만나야 해서, 낚시를 가야 해서 약속을 잘 잡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렇게 심한 불효자 자식이랑 내가 결혼을 했나 싶어 싸우기도 많이 했다.

"왜 잘 안 가려고 해? 니 부모님 집인데!"

"명절 두번 가고. 어버이날이랑 생신 다 만나고, 가끔 가게에서 보잖아. 뭘 더 자꾸 가자는거야."

"너 울엄마 장보러는 왜 자주 가?"

"아 그거야 장모님 집은 가면 나 진짜 아무것도 안하잖아. 눈치도 안주시고.....낚시도 마음껏 하고."

본인이 낚시를 좋아하다 보니 친정엄마는 바다가 있는 서산에,시부모님은 바다가 없는 일산에 살아서 장모님인 우리엄마를 더 자주 보게 된다는 걸 알고는 있다.

처음에는 친정보다 시댁에 더 많이 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고, 잘 보이고 싶은 며느라기에는 시부모님이 서운하실까 친정간다는 말도 못한 적이 있었다.

"넌 뭘 니네집 가는 거까지 눈치를 보냐."

남편은 이런 날 이해하지 못했다.

"서운하실 수도 있지! 엄마네 갔다왔으면 일산 한번 가고 그럼 좋지!!"

"진짜 보고 싶어서 가는 거 말고 의무로 가야한다는 생각이면 안 갔으면 좋겠어. 나도 내가 엄마아빠 보고 싶을 때 갈거야. 억지로 막 그렇게 가자고 안해도 돼."

그의 한마디에 나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내가 의무감으로 양가 어른들을 챙기고 있다는 걸, 그가 알고 있던 것이다.


"봐봐. 복구도 가기 싫으면 안 가잖아. 넌 왜 그렇게 못해?"

가기 싫던 동창회 모임.

5년 가까이 연락도 없던 동창의 결혼식.

마법이 터진 날 가야 하는 시부모님 집.

여자는 커피만 잘타면 된다는 진상손님이 득시글한 남편의 가게.


꾸역꾸역 의무감, 책임감으로 다니던 무수한 길목에 서서 나도 한번 주저앉았다.

"아 몰라. 안가 시바."





이 강아지도 야근 특근 외근은 힘들거든.

어제 밤 10시까지 야근하는데 몸이 좀 뻐근하더라고.

우리 대장은 작은 썬팅가게를 하는데, 폴딩도어를 열어주고 바깥 공기를 쐬게 해주고 아침 저녁 산책도 해주지만, 묶여있는 내 하루일과가 늘 재미있지는 않아.

나 사실 한 5살까지는 매일 출근 잘 했는데 이제 일곱살이나 되니 좀 피곤해.

그런데 억지로 출근하려니 더 힘들고 짜증만 늘아서 집사들한테 성질만 부리더라고.

집사들하고 보내는 시간이 필요한만큼 혼자 쉬는 게 필요하다는 걸 너무 늦게 안 것 같기도 해.


그런데, 억지로 끌려가듯 사는 삶은 어때??


어떤 얼굴과 표정으로 자기가 하루를 살고 있는지, 다들 알고는 있어?


나는, 나만의 속도로 걷다가 뛰다가 하려고.

그런데 지금은 안 가 시바.


어쩌라고 내가 싫은데.

내가 오늘 가기 싫은데?

어쩌라고 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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