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먼지 Oct 24. 2023

수많은 불빛 속 내것 하나 없지만

우리가 함께여서 행복해

가진 건 쥐뿔도 없고 내 명의래봐야 전세대출로 빌린 오래된 빌라 뿐.

월세로 빌린 남편의 작은 가게에서 퇴근하고

렌트로 (5년계약으로 3년이나 남았다) 빌린 작은 경차를 끌고 공원에 온다.

수많은 아파트 불빛들 그중에 내것 하나 없지만

이룬 건 뭣도 하나 없이 부릴 허세도 없는데 우린 그렇게 아등바등 살면서도 힘든 날보다는 좋았던 기억이 많고, 재밌었나.

웃을 일 없다가도 꼴통 두 마리가 하는 짓만 봐도 웃음이 나던 6년. 덕구와 함께 넷이 있으면 집에서 냉동빵만 데워먹어도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우리는 넷이 있을 때 세상 아무것도 부러운 게 없었다는 것을,

함께 걷고 달리던 공원에 올 때면 느낀다.

운동 많이들 나오는 자전거생태공원의 저녁풍경

으레 그렇듯 구구가 산책하는 길은 흙과 나무, 풀이 무성한 한적한 공원.

노후됐지만 운동시설과 앉아쉴 수 있는 벤치도 있다. 여름엔 할아버지들이 소나무숲 그늘에서 메리야스(요즘말로 런닝셔츠)바람으로 박스깔고 앉아 막걸리 한사발 드시기도 하는 요상한 이 곳에서 7년동안 짧은 산책과 무료놀이터를 잘도 이용했었다.


시바성향치고 더 공격적이었던 덕구는 유료카페에 가봐야 좋을 게 없었고, 반대로 너무 소심한 복구는 아예 어울리질 못하니 우리에게 여기보다 더 좋은 오프리쉬 놀이터는 없었다.


6년간 덕구의 축구실력을 키워준 놀이터

덕구가 검둥개 덕구로 살아있는동안 가장 신이 나서 축구공을 수십번도 더 굴리던 놀이터는 복구에게는 영 흥미가 없는지 놀이터엔 더이상 들어가지 않는다.


가게 뒤 컨테이너에서 고영희씨 흔적을 찾던 덕구

덕구가 떠난 후, 덕구와 함께 있던 일상의 흔적이 매일 아침마다 펼쳐지는동안 나는 오래 울곤 했다. 어쩔 줄 몰라하는 남편과 또 시작했다는 눈빛의 복구를 봐서라도 참아야 하는 눈물은 늘 덕구 사진 앞에서 터져 나오기에.

집 말고 목줄없이 놀아보게 한 게 많이 없어 미안함이 든다.

호텔링을 맘 편히 맡기던 카페에는 대형견칸에서 잘 노는 게 참 신기했다.

소형견에게 놀자고 앞발을 드는 모습만도 위협이기에, 차라리 대형견한테 맞더라도 민폐를 끼치는 개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키우느라, 아이를 지독히도 답답하게만 한 건 아닌지. 가끔 속이 상한다.


돈이 갑자기 잘 벌려서 엄청 좋은 집을 산다 한들

엄청 좋은 동네로 이사를 간들

내가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에 있다 한들

덕구가 없는 세상은 여전히 회색빛이다.


그럼에도 행복은 남아있다.

덕구가 남겨놓고 간 그 흔적이,

집과 가게 곳곳에 고이 숨겨둔 덕구의 속털이,

덕구 이빨 자국이 가득한 빨간 축구공과 테니스공이

매순간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함께야.

아니 영원히 함께야.

라고.


어딘가에서 머무름없이 쉼없이 목줄없이

자유롭게 까만털 까만눈 휘적이면서 날아다닐 덕구를 생각하니,


이밤이 그렇게 슬프지만도 않은 듯 하다.


나는 정말 덕구를 많이 사랑하는구나.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하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지금이 좋다.

작가의 이전글 어시마라이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