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이, 살아남기 위해 도려낸 상처의 기록

제 살을 도려내어 숨구멍을 만드는 나무에게서 배운 삶의 태도

by 방랑자
처마끝 봄날의 푸르른 기억들 (2018년 어느 봄날)

나무의 옹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무성하게 뻗어 나가는 가지들을 왜 굳이 상처를 내면서까지 정리해 주어야 하는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사실 나무는 스스로 길을 만듭니다.

햇빛이 닿지 않는 아래쪽 가지를 과감히 굶겨 죽여 스스로 떨어뜨리는 냉혹한 결단. 그것은 나무가 비로소 숨을 쉬기 위한, 오롯이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선택입니다.


그렇게 가지가 잘려 나간 자리에 남은 옹이는 나무의 아주 깊은 곳까지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

저는 그 옹이를 볼 때마다 우리네 인생이 걸어온 길 위에 남겨진 상처를 떠올립니다.


나 자신으로 오롯이 서기 위해 우리는 때로 소중한 것을 쳐내고 아픈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그때 생긴 마음의 상처들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옹이처럼 인생의 가장 깊숙한 곳에 단단히 박혀 흔적을 남깁니다.


옹이 하나에 담긴 나무의 이 지독한 생존 방식을 마주하고 나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작고 같잖은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작은 상처 하나에도 일희일비하며 남의 시선에 흔들리는 우리네 모습이, 묵묵히 제 살을 깎아내며 자리를 지키는 나무 앞에서 초라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나무에게 옹이는 단순히 잘려 나간 흔적이 아닙니다.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해 나무가 온몸으로 써 내려간 승리의 기록이자 훈장입니다.


우리의 삶에 박힌 상처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단순한 아픔이 아니라, 우리가 이 거친 세상을 어떻게 살아내 왔는지를 증명하는 가장 뜨거운 증거입니다.


나무의 옹이를 손끝으로 만져보며, 내 안에 깊이 박힌 상처들도 가만히 쓰다듬어 봅니다.

살기 위해 쳐내야 했던 그 모든 것들의 슬픈 흔적들, 그러나 이제는 나를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힘이 된 그 옹이들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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