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꺼다]를 읽고
소설가가 쓴 철학책 같은 이 책은 여기저기에서 나를 멈춰 세웠다. 그럼에도 책을 평소의 성격대로 후루룩 급하게 읽으니 남는 것이 없다.
아무리 오감으로 느끼려고 노력하며 읽어도 사람의 인지능력으로는, 아니 나의 독서능력으로는 되지 않는 일인 것 같다.
생각이 침잠할 시간, 내 안에서 그 '징' 소리가 울리고 가라앉을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흩어지는 생각들이 다 사라지기 전에 급하게 글을 쓴다. 혹여 한 자락이라도 내 마음에 더 오래 붙잡고 싶은 연유이다.
"모든 것이 내 손에 달려 있어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무언가가 달라질까 하고
가야 할 것이 가는 시간을 결국 늦춰 놓고 말았던
그 시간까지 엄마는 참으로 많은 것을 지불했다"... 책 본문 중에서
나도 그 열심으로 살던 때가 있었다. 그러면서 항상 신께 투덜거렸다.
내 인생은 왜 이런 거냐고 따지며 신과 맞짱 한번 진하게 뜨고 싶었던 날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지금은 그간 쌓인 경험과 거기서 얻은 지혜 덕분인지 해야 할 '열심'과 하지 말아야 할 '열심'이 조금씩 구분되기 시작했다. 나의 맹목적이고 버릇 같은 '열심'이 떠나자 그 자리에 '감사'가 들어왔다.
딸을 사랑해서라고 생각하며 내가 했던 말과 행동들이 실제로는 나의 결핍 메꾸기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은 것도 오래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지금은 더 이상 그 '짓'을 하고 있지 않은지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
딸아이의 가출 그리고 엄마를 향한 '팽'은 나에게 중년에
다시 입학한 인생학교가 되었다.
아이가 뭐가 잘못된 건지 알고 싶어서, 억울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이때까지도 내 생각엔 무조건 딸이 잘못되어 있었고, 31살에 혼자되어 20년을 혼자 딸아이 키우며 희생한 엄마에게 절대로!!! 이럴수는 없는거였다)
주로 자녀 교육에 관한 책들이었고.
오은영 선생님의 '부모가 돼서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는 책망에 분해서 책을 덮어버렸다.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뭘 어쨌다고....'
나에게 교육받을 자녀가 더 이상 그 교육을 원치 않으니 나는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나를 교육하기 시작했다.
지난 10개월.
약 40권의 책을 읽었다.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다독을 했다.
공지영 작가가 내가 왜 책을 읽고 그 안에 빠져드는지를 아주 작가답게 대답을 해주었다.
-똑같은 한 해를 20번 보내고 싶지는 않다고
-아직도 자라고 싶다고.
더 높고 더 깊게,
더 투명하며,
단순한 세계로 가보고 싶다고.
나에겐 한 가지 바람이 더 있었다.
-나는 너를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는.
'너'를 알려다가 내가 '나'를 만난 건 뜻하지 않게 찾아온 행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