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삼성전자 3번 퇴사? 어떻게 그런 일이?

남들은 한 번도 가기 힘들다는 곳을 세 번이나 때려치우다!!!

by 이글파파

2013년 2월 마지막 날, 몸이 아파 연가를 신청하고 쉬고 있는데 Y 상무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조 수석, 내일은 꼭 나와라. 사령장 나왔다."

"네? 무슨 말이에요?"

"이봐 자네 수석으로 승진했어, 다른 건 몰라도 인사 사령장은 받아야 할거 아냐? 아무리 아파도 꼭 출근하도록 해."


삼성전자에서 임원이 되기 전, 간부급에서 가장 높은 직급을 수석 또는 부장이라고 부른다. 보통 엔지니어는 수석이라고 부르고 경영. 사무직은 부장으로 나눠진다. 그 직급이 되서 좋은 점은, 물론 임금체계가 바뀌어 기본급이 오르는 것도 있지만, 해외 장거리 출장을 갈 때 비행기에서 비즈니스석을 타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 출장 시에 드디어 비즈니스석을 앉아보게 되다니... 솔직히 월급이 올라가는 것보다 비행기 비즈니스석에 앉아서 출장 가는 것이 더 기대가 되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본인은 Y 상무에게 면담을 신청하였다.

"상무님, 아무래도 더 이상 회사 생활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음 달 부로 퇴사하겠습니다."

사실상 통보처럼 선언하고 회사를 나와 버렸다. 그렇게 나는 삼성전자를 3번째 퇴사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정말 희한한 이 스토리는 아마도 삼성그룹 내에서도 아주 특이한 케이스로 기록될 법하다.



[삼성전자에 첫(!) 입사하다.]


1996년 1월, 곧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었지만, 회사는 이미 공채 입사가 결정된 사람들에게 겨울 신입사원 연수를 받게 하고 있었다. 당시 공채 입사자만 삼성그룹 전체 7천 명 정도 되는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이 신입사원들이 조별로 나눠서 전국 곳곳의 연수 캠프로 입소했다.


1995년은 당시 전 세계적인 반도체 호황기여서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에서 유독 많은 신입사원들을 뽑았다. 그 해에 삼성전자, LG반도체, 현대반도체에서 많은 입사지원 공고가 났고, 필자가 전공한 전자재료공학과에서 약 10명 정도가 삼성전자, 그것도 반도체 부문에 입사할 정도로 취업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덕분에 1995년 여름에 이미 삼성 입사가 결정되어 4학년 마지막 학기는 거의 놀면서(?) 학교를 다니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1996년 3월, 삼성 공채 36기 신입사원의 연수가 끝나면서 경기도 용인시 기흥에 위치한 반도체사업부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여기서부터는 같은 신입사원들끼리 어느 부서로 들어갈 것인가가 초유의 관심사였는데, 필자는 반도체의 핵심부서라고 스스로 생각한 "설계팀"으로 가길 고집하고 있었다. 당시 인사팀 과장은 그곳에 가면 "네가 버티기 힘들 거다."라고 했다. 워낙 석. 박사급 인재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건 당시 내게 큰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무조건 그 팀에 들어가서 최고의 엔지니어가 되고 싶은 것이 꿈이었다.


욱여 다짐을 한 끝에 인사팀에서 디램(컴퓨터 메모리의 한 종류) 설계팀으로 발령을 내주었다. 그러나 인사팀의 우려는 곧 현실이 되었다. 반도체 공학, 전기회로, 전자기학 등등 대학 4년 내내 공부했던 전공과목은 그야말로 아무 쓸모가 없었다. 회의실에서 발표되는 선배들의 자료와 보고서들은 이미 대학에서 배운 수준 이상의 지식을 필요로 하고 있었고, 그런 연구결과를 보고하는 팀 내 동료와 선배들은 대부분 석사와 박사 학위자들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인사팀에서 들었지만, 반도체 기흥사업장에 있는 박사인력의 수는 서울대학교 모든 박사들을 합친 숫자보다 많다고 했다. 그야말로 널린 게 박사였던 것이다.


그 후에 나름 열심히 배우고 일하면서, 참여했던 프로젝트팀에서 사업부장상까지 받았을 정도로 적응했지만, 팀 내에서는 계속해서 열등의식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시던 과장님이 조용히 부르더니 설계팀이 아닌 상품기획팀으로의 전배를 권유하였다. 본인이 그 부서로 가게 되었는데 같이 가자는 것이다. 말이 나오자마자 흔쾌히 동의하였고, 입사한 지 3년 만에 새로운 팀에 합류했다. 새로운 팀에 합류하면 적응할 기간이 필요할 것도 같은데, 이상하게 옮기면서부터 상품기획 쪽 일이 나와 너무 잘 맞았다. 불과 한 달 전까지 설계팀 워크스테이션(디자인을 하기 위한 중형 컴퓨터의 일종)에서 내가 직접 시물레이션 하고 설계하던 제품이, 온전한 상품이 되어 고객에게 팔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상품기획팀에서의 내 역할은 제품의 기능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고객에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같은 부서 동료들은 모두 스펙(Spec)이라고 불리는 메뉴얼 책으로 공부했지만, 나는 실제 그것을 설계를 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자신 있게 기능을 설명할 수 있었고, 이런 자신감으로 인해 좋은 소문이 났는지 해외에 있는 주재원들로부터 문의가 쇄도했다. 아! 드디어 나의 숨었던 잠재 능력을 찾았던 것일까? 덕분에 그동안 못 느꼈던 재미있는 회사생활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조직의 기능"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나 보다. 부서 이동 후 스스로 자신감이 가장 충만하던 때였다. 해외 바이어와의 회의에서 회의 참석을 제한받는 일이 생긴 것이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 이유는 바이어와의 가격협상을 할 때에는 영업, 마케팅 부서 외에는 모두 나가라는 지시사항이 있었던 것이다. 순간 기분이 상한 본인은 이런 답답함을 동료와 얘기하다가 "MBA (Master of Business Administration)"라는 학위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사원이 간부급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MBA 학위를 취득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이 학위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해외 유수 대학의 MBA를 하게 되면 당시에 선망의 대상인 외국계 컨설팅 회사로부터 억대 연봉을 받고 스카웃 될 수 있다는 꿀 같은 얘기를 들었던 것이다. 2001년 당시 우리나라는 IMF 후유증에서 막 벗어날 때였다. 본인은 IMF사태로 전 국민의 금 모으기 운동이 한창이었던 1998년에 결혼을 한 후, 첫 아이가 돌이 갓 지날 때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고민이 늘 있었고, 결국 미국 대학 MBA 입학 도전 공부를 위해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당시 퇴사 사유서에 담당 간부의 결재를 하던 부장님은 면담을 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조 전임(대리급 직급)은 다른 경쟁 회사로 이직하는 것은 아니지?"

"네 저는 진짜 공부하러 나가는 것입니다."

"그럼 학위과정 잘 마치고, 그때 다시 연락하자!"


그리고 2001년 퇴사를 하게 되었다. 입사 5년 만에 첫 퇴사(!)를 감행하는 순간이었다.



[삼성전자에 재 입사하다.]


2004년 3월, 잠을 들려고 불을 끄려는 순간 부장님.... 아니 상무님의 전화가 왔다.


"조 책임, 이제 졸업할 때 안되었나?"

"앗, 전 부장님, 아니 상무님 어떻게 제 번호를 아셨어요?"

"하하, 내가 곧 보스턴 가는데 입사 면접이나 보러 와라."


3년 전 퇴사할 때 내 퇴사 서류에 결재를 해 주시던 부장님은 그 사이 임원 승진을 하였고 나에게 삼성 재입사를 권유하셨다. 나는 2개월 뒤에 지금 다니는 학교에서 MBA 학위를 곧 취득할 예정이었다. 내 졸업을 앞두고 어떻게 전화번호를 아셨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하다.


전화를 받고 얼마 후 부랴부랴 학교가 있던 버지니아에서 보스턴으로 비행기를 타고 올라갔다. 알고 보니 당시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황창규 사장이 미국 MIT 공대에서 특별 강의를 위해 출장을 나와 있었고, 동시에 미국 내 박사급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서 본사 인사팀이 총출동을 한 상태였다. 나는 전화를 받고 얼떨결에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면접실 안에 들어가는 순간 예전에 알고 지내던 분들이 줄줄이 면접관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서로 한참을 웃었다. 아니 입사 면접을 하는데, 안부 인사부터 먼저 했던 것이다.


"앗~ 상무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응? 뭐야? 너 여기서 공부하고 있었어??"

"아뇨, MIT는 아니고요~ 전 버지니아에서 MBA를 했는데요, 이제 졸업할 때가 되어서요."

"MBA? 미국 농구 NBA가 아니고?... 하하하"


세상에 무슨 면접을 온 임원들하고 이런 농담 따먹기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 수 있을까?

서로 안부와 함께 길지도 않게 아주 간단히 면접을 보고 나오는데 내 뒤로 공부만 하게 생긴 인력들이 대기실에서 엄청나게 긴장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마 이번에 삼성에 입사를 희망하는 박사급 인재들인 모양이었다.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뭐.... 떨어지더라도 별 후회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다행히(!) 한 달여 뒤에 재입사 통보가 왔고, 그 해 5월 졸업을 하자마자 부랴부랴 한국으로의 귀국을 준비하게 되었다. 몇 달 뒤 재입사한 부서는 또다시 상품기획팀! 3년여 만에 본 동료와 후배 얼굴들은 모두 그대로였고, 본인도 너무 자연스럽게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마냥 행동하고 있었다. 옆 팀의 부장님은 오랜만에 얼굴을 보면서 주재원 생활을 한 것 아니냐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다만, MBA 학위 취득 전과 후의 업무는 바뀌었다. 학위를 받기 전의 업무는 제품의 기능을 설명하는 일이 주 업무였다면, 학위를 받은 후의 업무는 미래 상품의 기획과 사장님이 대외에 발표하는 발표자료 기획과 자료 작성을 하는 것이 주 업무가 되었다. 당시 반도체 업계는 황창규 사장의 "황의 법칙"이 큰 화두였고 그 화두를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나의 업무였다. 이 업무 역시 너무 재미있었다. 각종 전시회나 학회에서 발표되는 사장님의 자료에는 내가 만든 그림과 글이 올라가고, 그것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항상 타이틀로 사용했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다니는 회사생활은 뿌듯했고, 주변에서 보기에도 승승장구하는 모습처럼 보일 수 있었다.


도전을 결정하고 응전하는 사람에게 보상의 기회가 온다. 그리고 결정을 하였으면 즐기는 것이 필요하다. 나의 얼굴과 행동에는 그것을 즐기는 사람인지 아닌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변 환경에서 원하지 않는 변화가 시작되었다. 2004년 재 입사 후 4년 여가 흐른 뒤에, 늘 가까이 모시던 임원의 타 계열사 전배가 결정되었던 것이다. 반도체 부문 전체의 임원인사가 크게 있었는데, 이 임원 역시 다른 사업부서로 옮기게 된 것이다. 당시 반도체 부문의 실적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사실 일종의 좌천성 인사였다. 본인은 그 분하고 같이 일을 하고 싶었지만 그 분은 조용히 나를 불렀다.


"조 책임, 내가 너를 데리고 갈 수도 있지만, 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 좋겠어. 훗날 좋게 만날 날이 있겠지."

"네 알겠습니다. 몸 건강하십시오. 종종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 믿고 신뢰하던 그 분이 갑자기 사라지니 모든 일에서 재미 없어지기 시작했다. 주변에 본인을 좋게 여기는 선배들이 계속 새로운 일을 맡겨주었지만 그 일마저 흥미가 없어졌다. 마치 사춘기 방황이랄까.... 그런 시기가 오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저런 업무에 정을 못 붙이면서 6개월 여가 흘렀다. 그러던 중에 2009년 여름에 갑자기 전화가 왔다.


"조차장? 나 송 부장이야..."

"네? 아 부장님, 안녕하세요?"

"응 이번에 전자하고 전기하고 같이 투자해서 만든 삼성 LED가 새롭게 조직되는데, 이 곳에 오지 않을래? 내가 평소에 자네를 눈여겨봤는데 여기에 잘 어울릴 것 같아"


이상하게 그때 그 순간만큼은 누군가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너무 기뻤던 것 같다. 바로 다음날 가겠다고 선언해 버린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라고 했던가? 이왕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이라면 새로운 분위기의 회사에서 도전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같은 삼성그룹 내 회사라도 다른 기업으로 가게 되면 퇴사의 형식을 거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두 번째 삼성전자 퇴사를 결심하게 된 것이다.



[조직 전체가 삼성전자에 흡수되다. 이제 세 번째 입사!!!]


삼성 LED는 조명에서 좀처럼 매출이 나지 않고, 삼성 TV에 들어가는 부품을 계속 생산하기 위해 있던 조직이 모두 삼성전자에 흡수되어 버렸다.


이제 삼성 LED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는 인사팀의 승급 결정이 되기도 전에 매번 승진을 먼저 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한국에 올 때에도 전임(대리)이 아닌 책임(과장)이 되어 있었고, 전자에서 LED로 옮길 때에도 책임(과장)이 아닌 차장이 되어 있었다. 물론 사람을 끌고 오려는 분들 입장에서 상대방이 기분 좋으라고 먼저 말이나마 직급을 올려주기도 했는데, 실제로 옮길 때마다 진급이 결정되었던 것이다.


삼성 LED에서는 입사 후 지금껏 해 왔던 제품의 소개나 미래 전략이 아닌, 사업의 전략을 책임지는 경영전략 부서로 가게 되었다. 삼성 LED는 삼성전기 출신의 인력과 삼성전자 출신의 인력이 융합되어 일을 하게 되었다. 같은 삼성이라도 서로 문화가 달랐기 때문에 처음엔 무척 어색했다. 그러나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몰려 있는 새로운 조직에서의 생활, 모두들 의욕도 넘쳐나기 때문에 금방 서로 팀워크도 잘 맞춰가고 있었다. 전 세계 우수한 인재 풀이 이미 넘쳐나는 삼성전자와 다르기도 했고, 그 당시 해외 MBA 출신은 본인만 있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담당 부장님의 추천으로 서초동에 있는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에 잠시 파견되어 근무하는 일도 있었다. 미래전략실에서는 거의 매일 밤새면서 근무하는 것을 경험해 보았다. 당시 추진했던 미래전략실의 신규 프로젝트의 결과는 별로 좋지 않았지만 여러 부문에서 모인 사람들과 그런 경험을 해 본 것만도 재미있었다.


2009년부터 삼성 LED에서 근무를 시작하고 한참 바쁘게 일을 할 때인 2010년에 갑자기 아버지에게 위암 진단이 내려졌다. 동네병원 건강검진 결과 발견된 암은 위에서 식도로, 또 간으로 이미 전이가 된 상태였고, 그해 12월, 약 6개월간 이어진 항암치료를 더 못 견디시고 결국 세상을 떠나셨다. 2011년은 그래서 더 잔인했나 보다. 아버지의 소천으로 인해 장남인 본인에게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집안일들이 남아 있었고, 홀로 되신 어머니는 평소와 다르게 아버지의 유지를 소개하는 책의 출간을 비롯해 여러 가지를 요구하시기 시작했다. 회사일은 회사일 대로 점점 바빠지고, 그 어느 것도 마무리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유럽으로 출장명령이 떨어지면서 스트레스는 극에 달하게 되었다. 2011년 중반에 결국 스트레스로 인한 극심한 두통에 시달렸던 본인은 회사에 휴직을 요청하게 되고 3개월여 쉬게 되었다.


도전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어느 것도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더욱 그러한 것 같다. 이럴 때는 그냥 순리를 따르는 것이 정답이다. 무리하게 무엇을 하기보다는 현재 주어진 것을 그냥 묵묵히 하는 것이 나를 위한 일이다.


휴직 후 다시 돌아와서는 새로운 부서로 옮기게 되었다. 조명 마케팅 TF팀(Task Force Team) 조직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새로운 조직의 장은 유럽 네덜란드에서 오신 파란 눈의 외국인 전무님이었다. 모든 소통은 영어로 하게 되었고, 그동안 삼성에서 느끼지 못했던 유럽식 자율성과 책임감을 느끼게 해 준 전무님과의 생활은 삼성이 아닌 다른 회사에 있는 것 같은 또 다른 회사 생활의 즐거움을 알게 해 주었다. 그분과 함께 TF에 소속되어 일을 하게 되면서 평소에 잘 몰랐던 생활용 조명제품의 로지스틱스(물류)와 B2C(Business to Customer) 마케팅 전반에 관련한 노하우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야심 차게 기획했던 회사의 조명 부문의 매출은 예상보다 저조했고, 그룹은 고민 끝에 삼성 LED를 2012년에 삼성전자에 흡수하는 결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1년여 함께했던 외국인 전무님과의 이별과 함께 다시 극심한 두통이 시작되었다. 2013년 초 다시 인사팀에 요청해서 연가를 모두 쓰게 해 달라고 했다. 사실상 진급 대상이었지만 별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2월 말 수석으로 승진되었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남들에게는 삼성이라는 조직에서 부장으로 승진한 것에 대해 소감을 묻는다면, 큰 영광과 함께 미래에 대한 부푼 꿈을 얘기할 수 있었을 텐데, 본인한테는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우선 새로운 조직의 장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체력도 그렇고 두통이 너무 심해져서 일에 대한 집중이 어려웠던 탓이다. 의무적으로 들어야 했던 수석/부장 승진자 대상 교육 프로그램에서 어느 인사팀 부장이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 간부의 최고 위치인 부장으로 승격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 계신 100명의 부장님 중에서 단 1명 만이 임원으로 승진되십니다. 지금부터 삼성에서 임원을 목표로 하실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기회에 도전하실 것인지 잘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너무나 냉철한 표현이다. 임원을 목표로 하는 것도 도전이요, 다른 기회를 찾는 것도 도전이다. 둘 다 도전이지만, 몸이 너무 지쳐서 힘들어하는 이 순간에 듣게 된 그 말은 마치 알아서 나가라는 소리처럼 들리기까지 했다. 우연이었을까??? 마침 몇 년 전 삼성을 나와 회사를 차린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조 선배, 혹시 나하고 같이 일 안 할래요? 여기 예전 후배들 많이 있으니까 같이 일하면 즐거울 거예요."

"그래.... 조금 생각해 보고..."


2013년 9월... 나는 삼성전자에서 세 번째 퇴사를 하게 된다. 1996년에 입사해서 17년 동안 3번의 퇴사를 하게 된 삼성전자는 더 이상 들어가기 어려워졌지만, 이제는 나의 모기업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삼성에서 일을 했던 경험을 다시 추억해 보면 어느 부서를 가게 되든 간에 훌륭한 선배, 그리고 마음에 맞는 동료들과 많이 만날 수 있었고, 그들로부터 새로운 일을 할 때마다 힘을 내라는 말을 자주 들어왔던 것 같다. 조직에 속해 있으면서 도전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역시 주변에 그런 힘을 북돋워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도전을 즐기고 서로 응원하는 사람들이 같이 모여 있는 조직, 그런 조직은 반드시 성공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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