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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파파 Jun 29. 2021

공부해서 남 주자

평소에 <공부의 목적>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중고등학교 시절 그렇게 공부를 하기 싫어했는데 어쩌다 보니 중학 졸업 35년 만에 3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시작한 것으로 일주일에 2번씩 무료로 영어 수업을 진행합니다. 학생들 다니는 학교마다 교과서와 진도도 다르고, 또 교과서별 맞는 문제집을 사서 풀어보니 제가 중학교 때 배우던 영어 수준보다 훨씬 높아 처음에 적쟎이 당황했습니다.

출처 : Pixabay로부터 입수된 lil_foot_님의 이미지


그런데 누구를 가르치는 것은 수업 듣는 것과 완전히 다르더군요. 차라리 제 전공 (예를 들면 마케팅이나 IT산업의 이해 같은...)을 하라면 모를까, 비전공자한테 영어라는 과목은 한 시간의 수업을 위해 2배 3배 시간을 더 투자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혹시나 저한테 배우는 아이에게 틀린 문법을 가르치게 되거나 심각한 실수를 하지 않까 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더더군다나 (과거 "모르면 외워!"의 지론으로 인해) 저의 평소 실력이 부족한지라 스스로 모자란 부분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문제 하나를 보더라도 맞는 답과 틀린 답을 골라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된 것인지 이유도 일일이 설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1시간의 수업은 단지 한 시간의 가치만 있는 것은 아니다"입니다. 우선 그 한 시간 수업을 위해 미리 공부한 두. 세배의 시간이 들었고, 학생이 저와 같은 시간 동안 수업을 들으며, 그 친구는 다시 그 수업을 이해하기 위해 두. 세배의 시간을 투자합니다. 단순 계산으로 해도 최소 5~6배의 가치가 있는 것이 교육이고 가르침입니다.


그러다 문득 저의 어릴 적 모습을 떠 올렸습니다. 전 중고등학교 시절 유난히 내성적이라 많은 사람들과 활발히 관계를 맺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 탓에 누구의 영향도 잘 많이 받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초등학교부터 대학 졸업할 때까지  학급 친구들이 참석했던 선생님과의 수업 시간들이, 단지 그 시간의 가치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어디 선생님뿐이겠습니까? 부모님이 저와 함께한 시간도 그분들의 희생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아이를 방금 낳은 엄마가 원래부터 육아를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를 잘 키워보려고 육아방법을 배우기 위해 온갖 모임에 다닌다던가 아니면 친정어머니에게 배운다면 그것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투자한 시간들의 결과물을 전달받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서로 공유되고 또 공부한 그 시간을 넘어 다음 세대를 위해 다시 투자해주셨던 그분들의 시간들 덕분에 지금의 인격이 형성되고 또 본인도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쓰는 것 같습니다.


<공부해서 남 주자>는 자연스럽게 공부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받은 인격 형성의 시간만큼 그 시간을 잘 전달할 수 있도록 공부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 특히 다음 세대에게 투자하는 것이 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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