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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파파 Sep 18. 2021

크리스천에게 선택이란?

자기가 선택한다 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free images from pixabay, waldryano-309781


크리스천으로서 자녀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해 물을 때 어떻게 답을 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여러 책에 나오는 선택과 내용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글을 남기기로 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아이들은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


() 많이 이루겠다는 선택은 옳은 것인가?


인간이 삶을 살아가면서 부를 이루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성경에서는 부자가 천국으로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다. 그 말은 부자가 그만큼 많은 유혹에 노출되어있으며, 그런 유혹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유지하기란 어렵다는 뜻 이리라.


<부의 추월차선> 저자 엠제이 드마코는 30대에 이미 백만장자의 꿈을 실현한 사람이다. 그는 아주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사실 중하층 미국 시민 가정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평범한 대학에 진학한 그저 그런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랬던 그에게 충격을 준 람보르기니 소유자의 직업을 알기 전까지 말이다.


우연히 슈퍼마켓 앞에서 슈퍼카를 본 저자는 그 소유주가 누구인가가 궁금했다. 유명한 연예인이나 운동선수가 아니라면 지극한 연세의 어르신일 것이다라는 생각과 달리  소유주는 평범한 복장을 한 30대였다. 그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을 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평소 내성적이고 남 앞에 서기 부끄러워하는 성격이었는데, 람보르기니 차 주인에게 용기 내어 다가가 그의 직업을 물어본 것이다.


그 슈퍼카 주인이 밝힌 그의 직업은 예상 밖으로  "발명가"였다.  물론 여기에서  얘기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발명가가 엄청난 부를 이루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그 얘기를 듣고 깨달은 것은 세상에서 가르쳐준 부의 방정식이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뒤로 그는 사업을 하게 되었고 몇 번의 실패 긴 했지만 결국엔 성공하고 젊었을 때 충분히 부를 쌓고 은퇴한다는 그의 꿈을 이루게 되었다.


우리가 어떤 동기가 아닌 그저 사회적 통념과 학습에 의해 자기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팔로워. 즉 따라가기만 하는 사람이라면 무엇이 특별할 수 있을까? 그러나 자기 과신이나 자기 과장이 아니라, 스스로 꿈을 세우고  목표에 맞춰 하나씩 둘씩 어떤 행동을 하는 가에 따라 그의 인생에서 꿈을 달성하는 시간이 좀 더 앞당겨질 수 있다. 


"꿈을 세우고 이루어 간다는 것은 기다리지 않고 주도적으로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 그 저자가 선택한 젊은 부자의 꿈은 옳은 것일까? 사실 여기서 우리가 선택의 가치를 옳고 그른 것으로 나누는 것 자체가 맞지 않다. 굳이 그런 식으로 판단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부자가 될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남을 속이고 돈을 뺏는 식의 부정적인 방법으로 돈을 모은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다.  열심히 살아 돈을 모은 후엔?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했던가? 돈을 모아서 좋은 곳에 쓰겠다고 했던 마음이 바뀌어 초심을 잃고 버는 만큼 쓰는 것이 늘어난다면 그 마음도 옳다고 할 수 없다. '난 절대 안 그래!'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돈이 없을 때는 선택권이 많지 않아 다른 여러 사용처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지만, 돈이 생기기 시작하면 점점 그 쓰는 것에 선택할 일들이 많아진다. 그건 인간의 본성 아닌가?


이때 우리가 성경에서 부자와 낙타 이야기를 떠올린다면 십원 한 장을 쓸 데에도 많은 고민을 하고 실행할 것이다.


인생에서의 선택


우연히도 같은 시간대에 비슷한 책을 하나 더 읽게 되었다. 이번엔 <신경 끄기의 기술>이라는 책이다.  <신경 끄기의 기술> 저자인 마크 맨슨은 그의 책에서 자기가 선택한 것이 자발적인 선택인지 아니면 강요에 의한 압박인지를 잘 판단해 보라고 했다. 우리가 인생에서 어떤 선택을 할 때 그 선택에 대한 결과의 책임을 스스로 지는 것을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결과가 성공인지 실패인지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42.195 킬로미터를 달리는 마라톤 경기를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달리는 것과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 운동을 하다가 마지못해 참여하는 것은 그 결말이 너무 뻔하지 않은가? 인생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처음인 지금  행복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과 숨 쉬는 것조차 불행이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너무 큰 차이다.


인생은 오늘 밤에도 끝날 수 있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지금'이라는 시간은 잠시 잠깐 시간이 지나면 과거가 되어버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60 또는 70-80세의 시간이 이미 주어진 인생이라면 조금은 다른 특별한 인생을 살아보는 것도 가치가 있는 인생이라고 할 만하다 하겠다. 인생을 즐겁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지금순간은 아마 영원히 멈추고 싶을 수도, 오래오래  많은 일을 하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여정에는 끝이 있듯이 누구에게나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그리고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은 동일하게 주어지지 않는가?


그래서 여러분이 가진 인생에서 시간은 정말 소중한 재산이다. 돈에서만 가치를 느끼지 말고 시간을 통해 얻는 것을 가치로 환산하는 습관이 매우 필요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기와 의견 충돌이 있는 상사, 동료, 부하와의 갈등 상황을 그려보라. 그런데 본인이 주장하는 것은 그럴 시간이 없다는 이다. 갈등은 (인간적인) 서운함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냥 그런 갈등을 오늘 풀고 빨리 내일을 준비하자는 말이다. 실패에 매몰되지 말고 빨리 다음 행할 것을 생각하는 것이 시간을 아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앙인으로서 '선택'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자유함이 주는 감격


사도 바울은 초대 교회 전도여행 기간 중, 여러 서신을 남김으로써 신약 성경의 귀중한 업적을 남겼다고 볼 수 있다.  그는 감옥이라는 불편한 환경 가운데도 불구하고 보낸 서신들이 많이 있었는데 갈라디아서도 그중 하나다. 초대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에 의해 기독교 신앙관이 정립된 교회였다. 그런데 그곳에 거짓 교사라고 일컬어지는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와서 바울이 없는 가운데 율법의 중요성과 할례의 강제성을 강요하고 유대인의 전통을 따르라고 가르친다. 바울은 그것을 배격했다. 이미 자유함이 있는데 왜 그러느냐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것이 신 위에 의식을 올림으로 불신앙을 초래한다고 하였다.


예수님은 그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 바리새인들과 제들의  허례허식에 대해서 강력히 비판을 하셨다. 그들의 믿음에  의한 자발적인 행위가 아닌 구원을 바라고 하는 기복적 행위로의 의식은 필요하지 않다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분의 뜻, 인간의 죄 사함을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심을 선택하셨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예수의 죽음으로 우리에게는 구원에 대한 선택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신 자유함이 주어졌다. 유대인의 전통과 율법이 나의 신앙생활에 방해가 된다면 나의 자유함을 통해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구원에 대해서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이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을 내가 같이 즐거워하고 받아들일 때 큐티와 기도와 이웃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그럼 처음 이 글을 열었던 질문이 있다.


크리스천으로서 자녀가 인생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였다. 성경적으로 선택은 클리어하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다만, 일반적으로 자신이 스스로 유리한 길을 선택하면 행복한 꽃길을 그려볼 텐데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에는 고통이 있다. 아니 거의 다 그렇다. 그런데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냐에 따라 인생에서의 선택이 기쁜 것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주님이 원하시는 길로 선택하면 비록 그 길이 좁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끝에 감사하다는 고백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자녀에게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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