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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파파 Sep 21. 2021

백 원

산책길 생각

산책은 나만의 시간이다.  혼자 걸으면서 어지러운 생각을 비우고, 정리하고, 스스로 위로한다. 이런 산책의 시간은 아침이 좋다. 이미 밤의 쉼을 겪고 난 아침에는 생각 비우기가 훨씬 쉽다. 마치 컴퓨터 바탕화면에 있는 휴지통으로 파일을 옮기는 것처럼 정리하기가 편하다. 게다가 만약 그날이 휴일 새벽, 해뜨기 전 회색 빛이 아직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이 없는 아파트와 빌라촌 사이를 걷고 있노라면 혼자만의 거리가 다 내 것 같아 전날의 걱정은 다 잊고 스스로 부자 된 기쁨마저 갖게 된다.



그런데 오늘 방해꾼이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100원!

코너길을 돌아가는 데 바닥에서 반짝이는 물체가 보였고 그 주인공은 바로 100원 동전이었다. 이 동전을 어떻게 할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의 손은 이미 그것을 주워 들고 있었다. 아! 머리보다 더 빠른 손이여~


그때부터 '누가 잃어버렸을까?', '무엇을 하다가 떨어뜨렸을까?', '혹시 잃어버린 사람이 100원 때문에 다시 이곳에 와서 찾으려는 것은 아닐까?' 등등 온갖 잡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조금 더 걸어가는데 새벽청소를 하는 동네 아저씨가 보였다. 그 아저씨를 보면서 '왜 하필 나한테 100원이 보였을까? 저분한테 보였으면 더 행복했을 텐데, 그냥 100원 주는 것도 이상하고...' 이쯤이면 산책의 기쁨이 걱정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요즘 100원 동전을 보는 일이 참 드물어졌다. 버스를 타도 선불 또는 후불교통카드로 계산하고, 몇 백 원짜리  음료수를 살 때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도 신용카드나 스마트폰 페이 결제로 계산을 하니 오히려 주머니 속에 잔돈 동전이 있는 것이 어색할 판이다. 어릴 적 설날에 받은 천 원 세뱃돈으로 주변 슈퍼나 문방구에서 파는 과자 고르고 몇 백 원 남으면 등에 금색 한자로 복(福) 자가 새겨져 있는 빨간 돼지저금통에 넣는 것이 기쁨이었다. 몇 개월 뒤 돼지저금통이 꽉 차기도 전에 배를 가르고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기도 하고, 중간에 빼 쓰는 것을 꾹 참고 참아 마침내 두 손으로 뚱뚱한 저금통을 은행에 들고 가서 쏟아낸 후 동전 세는 기계에 넣어서 통장에 숫자가 찍히는 것과 바꾸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100원은 우리에게 많은 추억을 주었다. 그런데 이제 주변에 보이지 않는 물건이 되었다. 앞으로 전자결제가 더 일상화되면 동전뿐 아니라 지폐도 거의 사라지지 않을까? 오늘 산책의 방해꾼 100원은 나의 기억을 소환해 주었다. 그리고 또 하루를 이렇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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