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글파파 Feb 09. 2022

나를 기다리시는 예수님

실패했다고 인생이 실패한 것이 아니고 성공했다고 기뻐할 일이 아니다

최근 성경의 레위기에 관한 설교말씀을 연속으로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레위기는 이야기 위주의 성경이 아니고 여러 가지 규례를 설명하는 내용이 많아서 눈으로 흘겨 대충 읽거나, 두 번 세 번을 읽어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매년 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 까지 읽다가 포기하는 일이 정말 많았다. 그런데 최근에 설교 말씀들을 통해서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말씀 감동으로 다가왔다.


가장 최근의 내용은 레위기 14장의 말씀이었다. 해당 장에는 백성 중에 나병이 낫게 될 때 제사장이 해야 할 일과 나병환자가 해야 할 규례에 관한 내용이 있다. 우리가 한센병이라고도 부르는 나병은 낫기 힘든 불치의 병으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2~3천 년 전에도 나병에 걸린 사람은 마을 사람들과 격리되어 마을 밖에서 생활해야 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정말 하늘의 도우심으로 병이 나았을 경우 해야 하는 가장 첫 번째 의식이 바로 제사장에게 가서 병이 나았다는 선언을 받는 것이다. 일종의 증명인데 그래야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된 것이다.


나병이라는 병 걸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환자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처음에는 나병인 것을 숨기려 했을 것이고, 숨겨도 숨겨도 감출 수 없을 때에는 결국 사람들에 의해 또는 자기 스스로 사람들과 멀어지게 되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죽기 전에는 나을 수 없다고 여겨지던 불치의 병이 나았을 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환자가 가장 그리웠을 것은 역시 가족의 품이었을 것이고, 가족들과 그리고 친구들과 편하게 도란도란 앉아서 얘기하는 것이리라.


우리들 인생을 그래프로 그어보면 마치 산을 오르내리듯 정점과 저점이 있는 것을 수 있다. 크리스천들의 삶이라고 다른 사람들의 인생과 다를 수 없다. 그런데 사람의 본성이 자기 스스로 드러내기를 좋아하는지라 아무리 믿음좋은 크리스천이라고 해도 잘되고 좋은 일은 대게 나의 잘난 이유이고, 실패하고 병 걸리고 힘든 일이 생기면 왜 저에게만 이런 시련을 주시냐고 신께 따져 묻기도 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인생을 모두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왜 나에게 실패를 주실까? 믿음 좋은 크리스천이라면 항상 복 많이 받고 성공하고 남들의 존경을 받는 그런 위치에 있거나 생활을 하는 것 아닐까? 혹시 독자들 중에서도 그런 생각을 하는 분이 있다면 조금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병과 크리스천의 삶을 연결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예수님이 낮은 자를 위해서 이땅에 인간의 몸으로 사셨던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점검해야 할 부분이 있다. 우선 신약성경에서도 나병과 관련된 말씀이 있다. 바로 10명의 나병환자를 고치셨던 사건이 있는 누가복음 17장의 말씀이다. 10명의 나병환자를 만나서 치료해 주시고 제사장에게 보이라고 하셨다. 여기까지는 레위기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신 규례이니 당연한 절차이다. 아마 병이 나았음을 알게 된 나병환자들은 빨리 가족을 만나고 싶어서 부리나케 제사장에게 선언을 받기위해 달려갔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대제사장이시고, 왕이신 분은 예수님이 아니셨던가? 10명 중 오직 한 사람만이 다시 예수님께로 달려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렸다. 그리고 그 사람은 유대인들이 싫어했던 사마리아인이었다. 주님은 그에게 구원을 허락하셨다. 가장 낮은 자로 여겨졌던 사람이 가장 비참한 병에 걸렸던 것으로부터 나음을 입고 구원을 받았다.


사마리아인은 실패의 인생에서 구원의 인생을 살게 되었다. 세상적인 것과 다르지만 예수님은 병이 낫는 것이 인생의 성공이 아니라, 그 병을 낫게 해 주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길임을 알려주신 것이다. 나머지 아홉 명은 나음을 입었지만 구원을 얻지 못했다. 그의 인생이 성공한 인생일까? 그러면서 그러한 것들을 안다고 생각한 나 역시 사마리아인처럼 하지 않고 결국 내 눈앞에 드러난 성공에만, 행복에만 도취한 사람은 아닐까 스스로 반성해 본다.


이번에는 세상적으로 성공에서 실패를 경험하는 인생의 이야기이다.

야고보서에서는 1장 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생각하십시오.".. 아니 우리가 죄의 고통에 빠진 이유가 아담이 시험에 빠져서 그런 것 아니었던가? 그런데 시험을, 그것도 한두 번도 아닌 여러 가지 시험을 기쁨으로 여기라는 것은 무슨 말씀일까?


하나님은 우리를 그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셨다. 죄로 인해 사망에 이를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독생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구원에 이르게 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이 자녀로까지 삼아주신 우리가 고통에 빠지는 것을 그냥 놔두신다? 아니 시험에 빠뜨리신다는 것인가?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그리고 그 시험을 통해 인내를 가질 것을 말씀하신다. 그래서 같은 야고보서 1장에서 시험을 당한 우리들은 결국 그것을 인내함으로 궁극에 성숙한 사람이 되라고 하시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계속 우리에게 우리의 목표는 이 세상의 성공이나 명예, 행복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나병에서 병을 나은 정말 극적인 성공, 그리고 반대로 성공했다가 실패한 시험의 굴레에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결국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고 말씀고 계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시지만, 결국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않도록 하시는 분이시다.


출애굽기 20장 20절 말씀을 보면,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 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시험하고 경외하게 하신다는 말씀이 이것이다.


지금 성공한 위치에 있는가? 절대 자만하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라.

지금 시련의 위치에 있는가? 인내를 길러 결국 성숙한 이로 만들어 주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라.


우리가 목표로 하는 최종 목표는 주님께서 주시는 구원이지, 이 세상의 성공이 아닌 것을...

주님은 우리가 그렇게 되기까지 기다리고 계신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물쭈물하다가 그럴 줄 알았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