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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파파 Jan 28. 2022

우물쭈물하다가 그럴 줄 알았다고?

아닙니다. 당신은 최선을 다했을 뿐.

우물쭈물하다가 그럴 줄 알았다


아일랜드 출신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소설가, 극작가, 그리고 엄청난 독설의 비평가이기도 한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라고 일컬어지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의 원문을 찾아보니 아래와 같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영어학자는 아니지만 이 문장을 '우물쭈물'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실제로 그는 1856년에 태어나 1950년에 생을 마감해 95세 장수를 하였으며, 무려 70여 편의 희곡작품을 남겼다고 알려졌다. 더더군다나 그는 사회주의에 심취하였고 많은 사람들에게 독설의 비평과 그것을 명언으로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만큼 그는 일생을 치열하게 살아왔으며, 이것이 묘비명이 맞다면, 아마도 '오래 살다 보면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조금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다.


그는 이런 말도 남겼다고 전해진다.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나 아깝다.(Youth is wasted on the young.)"

젊다는 것이 귀한 줄 모른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결국 시간이 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도 할 만하다.



시간을 아끼고 살다가 이럴 줄 알았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에서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아끼고 아껴서 반드시 목표한 성공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구 상 70 억 명의 사람들을 동시에 같은 지구라는 별에 살게 하면서 모두 다른 성격과 능력을 주셨다. 노벨문학상을 타는 능력을 가진 사람도 우주선에 탈 수 있는 행운을 거머쥐는 사람도 그중 몇 명에 불과할 뿐이다. 당신은 그 70억 명 중에 단 '한 사람'이다.


평소 시간. 시간. 시간을 주장하던 사람에게 브레이크가 걸렸다. 회사 오는 길과 집으로 가는 길이 매 같아야 하고 정면만 바라봐야 하며, 주어진 일은 100%가 아닌 120%의 결과를 얻어내야 한다.  사람에게는 변수라는 불확실성보다는 확실한 것과 효율이 가장 중요했다.


"마지막 1%의 노력은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99%보다 훨씬 힘든 과정이 될 거고 그 결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쏟아붓었다. 최고를 만들기 위해. 인정을 받기 위해. 스스로의 다짐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그런데 결국 사달이 났다. 뇌경색 전조 신호가 온 것이다. 얼굴 왼쪽 뺨이 마비되고, 왼쪽 팔에 힘이 빠졌다. 응급실로 향했고, 의사는 좀 쉬라고 권고한다.


이쯤에서 결정해야 한다. 성공을 해 돈을 더 벌어 나와 가족들에게 금전적 여유를 선물할 것인가? 아니면 건강을 지키며 오래 가족과 살아갈 것인가?


지금도 수많은 직장인, 사업가, 자영업자들은 이런 고민을 하면서 살고 있다.



당신은 충분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 혹시나 중년인 내가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았을까 염려하며 조바심을 내고 있는가? 아이들 과외비 마련해야 하고 지금보다 더  윤택한 삶을 꿈꾸고 있는가?


노벨상을 노리는 것도 아니고 지금의 일을 통해 당장 인류 역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면 목숨 걸고 하는 것은 잠시 멈추자. 빨리빨리 처리하려는 그 성격 때문에 오히려 인생 종착지까지의 거리마저 더 빨리 당기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천천히 하고 있는 당신의 일일지언정 세상이 바뀌고 움직이는 데 역할을 하는 작은 과정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어떤 이는 이 세상의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하고, 또 맡겨진 그 어려운 일들을 모두 감당하려면 많이 배워야 하고, 많이 경험해야 한다고 그래서 일분일초가 아깝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많은 것을 배웠지만 동사무소, 요즘으로 하면 주민센터에서 '가족관계 증명서' 한 장 제대로 떼는 것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어른이 되면 더 모르는 것들이 많아진다. 특히 전자기기 제품의 발전은 젊은 세대와 어른 세대 사이를 더 벌어지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시간을 아끼고 또 아끼며 젊은 사람들의 언어를 배우고, 기술을 배우며, 그들의 삶에 나를 동조해서 어울리려고 애 써봤다. 그러나 점점 힘이 부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저 똑같은 시간을 쏟으면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은 마치 영어회화를 처음 배우는 것과 같다. 아무리 수업시간에 열심히 따라 해도 실력이 늘지 않는 이유는 영어 시간에 배운 것을 평소에 쓰지 않매번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해서 얻은 결과를 평소에 활용하지 않는다면 그저 지식을 얻었을 뿐 결코 나의 삶의 변화를 이루었다고 할 수 없다.  


둘째, 알고 있는 지식과 관계들이 많을수록 배우는 것을 체득하기 전에 평가하게 된다. 차라리 젊어서 새롭게 배우는 것이라면 배우는 것에만 열정을 쏟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지식 저 지식이 내 삶에 미치는 영향을 모두 판단하려고 한다면 배우는 시간이 더뎌질 수밖에 없다. 그러는 사이에 세상 지식은 더 발전하고 새로운 기술은 자꾸 늘어만 간다. 쫓아가지 못하는 이유다.


셋째, 나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좀 놔둬라. 내가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는데 그들을 이길 이유가 있가? 내가 더 베풀고 나눠서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오히려 더 좋은 것 아닌가 말이다. 나누자. 나누는 것 만이 나에게, 삶에 여유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을 느리게 가도록 내버려 두자. 내가 쫓아가려고 하면 그만큼 시간은 저만치 달아나 있다.



다시 이일랜드의 문학자 버나드 쇼의 이상한 해석으로 가 보자.

"우물쭈물하려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이제는 오히려  해석이 반갑다. 차라리 나의 인생에서 우물쭈물할  수 있는 시간이 지금이라면 그것이 가져다주는 행복에 머물라. 내가 선택하기 전에 이것도 가능하고 저것도 가능 여러 가지 상상을 할 수 있다면 그것도 행복이다.


시간을 아끼려 아등바등하다가 인생을 놓치고, 건강을 잃느니 차라리 천천히 생각하고 여러 가지 상상도 하면서 인생을 느리게 평가하면서 지내면 좋겠다.


그러나 한 가지, 잘 살아야겠다는 목적의식은 버리지 않으면 좋겠다. 돈과 명예를 좇다가 인생을 허비하는 것이 아닌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 우물쭈물하라는 것이다. 그런 목적 없는 삶이라는 것은 그 삶을 포기하는 과도 같기 때문이다.


지금 쉬어가는 우물쭈물은 오히려 그동안 최선을 다한 당신에게 잠시 멀리 떨어져서 인생을 바라보는 시간을 허락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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