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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파파 Jan 15. 2022

퇴사, 그리고...

하나님의 함께하심

퇴직이 결정되었다.


작년 7월, 재기의 꿈을 안고 새로운 직장에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어색함도 잠시, 직원들과의 생활에 서서히 녹아들어 갔고, 젊은 사람들이 많은 회사에 필자가 경력직으로 들어가게 된 이유도 알게 되었다. 해야 할 일이 많았던 것이다.


열심히 일 했고, 다락방의 기도 동역자 형제님들께도 중보를 부탁했다. 좋은 만남을 위해서, 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드러내게 해 달라고.


평소 성격이 내성적인 사람이 남에게 먼저 다가가서 이러쿵저러쿵 말을 건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도 열심히 처음 대하는 고객들에 먼저 전화하고 이메일을 주고받고, 새로운 미팅을 잡아가며 일을 성사시키려고 했다. 작은 성과라도 있으면 감사했다. 매일매일 감사의 제목을 찾으려 노력했고 하나님은 위로를 주셨다.


열심히 일을 하고자 했으나, 건강에 이상 신호가 오면서 서서히 지쳐갔다. 허리 디스크 수술 후 완전히 회복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하게 되니 다시 다리가 저려오고 약을 먹을 때만 간신히 정상적인 걸음을 옮기는 지경에 이르기 시작했다.


회사 입사 후, 회사내 여러 규정은 어쩌면 중소기업이니까 당연한 단속의 일환이라고 생각을 했다. 일 분 일 초출퇴근 시간을 어겨도 사유서를 제출해야 했고 누적이 되면 고과에 우선 반영이 되었다. 문제는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던 그런 규정이 아플 때는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급할 때 병원을 가려면 대표이사까지 3단계, 4단계의 반차 또는 연차 신고서를 결재받아야 했다.


"당연한 것이 힘들어지는 순간이 왔다면 아픈 것이다."


기쁘지 않다는 것이고 모든 일이 귀찮아지는 것이다. 아픔은 점점 심해져 갔고, 도중에 병원 가는 횟수가 늘어가고, 팀원들에게 미안함이 커져가기 시작했다.


새롭게 시작하려는 사업들은 나 때문에 지연되는 것 같고, 한 개의 업무가 마무리되지도 않았는데 다른 업무와 미션이 주어질 때 상사와의 갈등은 점점 고조로 향해가고 있었다.

평소에 형. 동생 하는 사이의 관계가 틀어지니 마음에 부담이 커지기 시작했다.


결국 회사 출근 후에 뇌경색 증상이 연 이틀 발병했고, 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 와중에 회사의 업무를 챙기려는 선배 상사와 인간적 섭섭함에 결국 큰 충돌이 생겼다. 그리고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 퇴직을 결정했다.


그러고 보니 일전에 전화 심방을 하신 담당 목사님과의 대화가 생각났다.

허리 디스크 수술이 끝났음에도 계속 "허리가 안 좋으시죠?" 하면서 기도해 주시는데, 속으로 '이미 수술받았는데 아직 잘 모르시는 것 아닌가?' 하면서 의심하곤 했었다. 그런데 그 허리 기도는 지금의 날 위한 기도였음을 알게 되었다.


대청소 그리고 쉼, 감사


퇴직이 결정되고 아무 생각 없이 쉬기로 했다. 전(!) 직장의 후임과는 때때로 소통하면서 업무의 인수인계를 진행했다. 그래도 이제는 내 일이 아닌데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애써 회사 일에 신경을 껐다. 그럼에도 신경을 안 쓸 수 없는 것이 당장 매 달 들어오던 월급이 없어져 버리니 아무래도 생활비를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큰 아들은 올해 제대 후 복학하고, 둘째는 대학 입학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각종 돈 들어갈 이것저것을 생각하면 사실 대한민국의 가장이 나이 50에 쉰다는 것은 정말 리스크가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생활비가 아주 여유 없는 것은 아니나 앞으로 얼마나 더 쉴 수 있는가가 또 다른 문제였다. 이것저것 지출을 줄이고 기본적으로 나가는 돈이 무엇이 있는지도 확인해봐야 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중에 아내가 나에게 일을 맡겼다. 군대 간 아들 방이 너무 널브러져 있으니 10년이 다 된 낡고 부서진 서랍장을 버리고 코트 같은 것도 넣을 수 있는 작은 옷장을 사자고 했다.


첫날, 아들 방을 뒤집어 놓았다. 책상 하나만 남기고 책장과 서랍장을 분해하고 이동했다. 아수라장이 된 방에 온갖 먼지가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한다. 평소에 축농증 때문에 고생하곤 했던 아들에게 미안했다. 7-8년이 되어서야 묵은 먼지를 쓸어내고 닦아주었다.


둘째 날, 이케아에 가서 적당한 옷장을 골랐다. 이케아 가구의 특징은 직접 조립하게 되면 상당히 저렴하게 가구를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대 나온 아빠와 공대에 가려고 하는 둘째 아들이 있잖은가. 바로 구매해서 조립을 시작했다.


사실 이런저런 물건을 산다는 것은 재정적으로 무리일 수 있었다. 그래도 자녀가 거의 부서질 정도의 가구를 십 년 가까이 쓰고 있기에 조금 무리해서라도 바꿔주고 싶었다.


조립과 배치를 마친 바로 그때 핸드폰에서 입금 메시지가 왔다. 회사에서 퇴직에 따른 지난달 임금과 함께 위로금 명목으로 한 달의 월급을 더 추가해 주었다.


지난 회사 생활을 하고 있을 때는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한 대가로 월급을 받는다고 생각을 했는데 처음으로 회사에 감사했다. 그리고 필요한 때에 물질적 복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이번 일을 통해 나의 생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고통과 연단의  연속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나의 생을 어떻게 봐야 할까? 신년에 말을 통해 주신 은혜가 참 감사했다. 그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시선


신년이 되어 성경을 다시 편다. 늘 그랬듯이 성경 말씀은 창세기 1장 1절부터 시작한다. 평소에는 인물 중심의 말씀을 보지 못 했는데 이번에는 성경 인물이 가진 연단의 고통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 인물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시선을 나에게도 투영해 본다.


첫 번째 하나님의 시선 - 기다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자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에게 하나님은 많은 복을 허락하셨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고통은 자기의 대를 이어 줄 자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에게 하나님이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지 않으셨다면 모를까 그가 75세 되던 때에 이미 하늘의 별을 보고 약속하지 않으셨던가?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창세기 15:5)」


24년이 지나 99세가 되었지만 여전히 사라를 통해서 아이가 태어나지 못했고 이미 사라는 생리가 끊겨 아이를 생산할 수 없게 되었지만 하나님은 다시 아브라함에게 그를 통해 자손이 번성할 것임을 약속하셨다.  (창세기 17:4-8)


그때에도 아브라함은 여종 하갈에서 난 이스마엘을 축복해 달라고 빌었을 뿐이다. 그러나 결국 그의 나이 100세 때 사라를 통해 이삭을 낳게 된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신다. 그리고 그 약속이 실행되는 시간을 인간인 우리가 가늠할 수 없다. 하나님은 기다리는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 다만 기다림의 연단은 우리의 몫인 것이다.


두 번째 하나님의 시선- 가 어디에 있던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인간은 참 간사한 동물이다. 배부르고 힘이 있을 때는 하나님을 찾지 않지만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을 찾는다. 구해 달라고, 위로해 달라고.


야곱은 형 에서에게 장자권을 뺏고 아비 이삭으로부터 형이 받았어야 할 축복도 빼앗아 결국 형 에서의 살해 위협으로부터 도망해야 했다. 혈혈단신 혼자 이리저리 도망하는데 지치고 쓰러진 곳이 벧엘이다.  그곳에서 돌을 베개 삼아 자는 데  환상에 천사들이 사닥다리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된다. 도망자 신세이고 이 세상에 혼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순간, 아무도 없이 춥고 배고픈 때에 바라보고 알게 된 것이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위로의 말을 듣게 된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세기 28:15)」


가 그대로 그 자리에 있던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떠나던지 하나님은 항상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이다. 그 분이 나와 동행한다는 것을 늘 자각하고 내가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하나님의 시야에서 가려질 것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세 번째 하나님의 시선 -  실패하더라도 내 인생을 이끌어 가심

모세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 가장 위대한 리더라고 할 수 있다. 무려 이백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애굽을 나온 사람이 때문이다. 군대가 아닌 갓난 아기부터 노인까지 포함한 일반 백성들이기에 이동도 느리고 수많은 안전사고로 인해 중간중간에 문제가 많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가나안 땅 바로 앞까지 데리고 온 것이다.


그러나 그는 원래 말을 잘 못하는 수줍음 많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하나님이 시켜서 한 일에 대해 실패한 것을 두고 노골적으로 실망하고 원망했던 사람이다.


모세는 젊은 날,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두고 결국 의분을  못 이겨 사람을 죽였지만 동족을 지켰음에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디안 광야로 가서 숨어 40년을 살았다. 하나님에 실망한 그는 일부러 하나님을 멀리 했는데, 오히려 하나님은 양 떼를 통해 호렙산으로 이끌어 주셨다.


모세는 다시 그곳에서 소명을 받고 바로 왕 앞에 가서 자신의 민족을 데리고 나가겠다고 선포했으나 오히려 더 많은 노역을 할당받 혹 떼려다 혹을 붙이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했는데도 실패했을 때 그 마음은 어떠했을까?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출애굽기 5:22)」


모세가 하나님 앞에 첫 번째 실패 앞에서는 실망하더니, 두 번째 실 앞에서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선하신 계획이라고 믿으며 일을 하기도 하고 구제 활동도 하고 크리스천답게 행동하려고 애쓰기도 한다. '그래 예수 믿는 사람은 저렇게 살아야 해'라고 얘기 들으며 살아가지만 복은 커녕 또 실패하고 또 실패한다.


모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갔고 또다시 소명을 받아 바로 왕 앞에 섰다. 아론의 지팡이로 뱀을 만들어 보였으나 마술사들도 비슷하게 뱀을 만들면서 생각만큼 바로를 감동시키지 못했다. 그런데 모세의 태도가 실망에서 순종으로 바뀌었다. 하나님이 바로를 악하게 한 것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시선에서 자신의 실패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우리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다. 그런데 하나님께 기도하고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착하고 선한 일을 행했음에도 실패했다면 그것 때문에 스스로를 자책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모세가 실패했다고 판단한 그 일들을 통해서 결국 엄청난 숫자의 백성을 모두 이끌고 나오셨다. 나의 실패도 하나님께서 그분의 계획 가운데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데 사용하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위대한 리더 모세가 사명을 다하고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죽었을 때 다음 리더로 지명 받은 여호수아는 자신이 없고 떨렸을 것이다. 그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힘을 불어넣으시는 말씀으로 위로를 하신다. 그 위로가 독자들에게도 함께 하길 기도한다. 당신이 그 어떤 일을 하던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여호수아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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