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는 어떻게 성도 다와 질 수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좋은 책이 없을까 찾아봤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우리나라의 "지혜서"의 대부분은 부자, 돈, 재테크와 관련된 것들로 넘쳐난다. 세상에서 부자가 되고 또 그 부를 유지하기 위한 지속 가능한 성공방정식을 얘기하는 뛰어난 분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듯하다. 그쪽 분야 작가분들은 글도 잘 쓰고, 또한 그들의 성공한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그런데 질문이 생겼다.
"성도의 삶에도 지속 가능한 성공방정식이 존재하는가?"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서 우연히 읽게 된 내용 중 한 구절이 와닿았다.
누군가는 살아 '남기고' 다른 누군가는 살아'간다.' (<부의 확장> 천영록. 제갈현열 지음. pp.31)
참 의미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되었다. 또한 작가가 얘기하는 성공한 사람의 특징은
'혼자 노력하지 않고, 주위 자원들을 찾으려 노력하고, 무엇이 자원인지 분별하며, 찾은 자원을 배치하고, 자신을 밖으로 확장하려 노력한다고 한다.'라고 한다.
부자 되는 삶과 성도의 삶을 직접 연결하기는 무리가 있지만, 이를 믿음으로 치환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같은 말을 이렇게 바꿔 보았다.
'혼자만의 믿음 생활을 하지 않고, 주변에 믿음을 나눌 사람을 찾으며, 믿음 생활과 거짓을 구분하며, 믿음의 동역자들의 탤런트를 과감하게 사용해서,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보다 넓은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그런 사람'
오, 이런 사람이 믿음의 성공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또 책에서는 연결과 접점에 대한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부는 혼자 이루는 것도 그 순간에 이루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사람의 연결이 있다면 이제는 시간의 연결도 생각해야 한다. 오늘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내일 결과가 일어나지 않는다." (<부의 확장> 천영록. 제갈현열 지음. 중에서)
"스타트업들은 일부러 미개척지를 선택해 속도로 승부한다. 자신들의 아이디어와 세상의 어떤 기회가 연결될 수 있을지 찾는 자가 개척자들인 셈이다. 그들은 특정 접점을 찾고 있다." (<부의 확장> 천영록. 제갈현열 지음. 중에서)
성도의 접점은 주님을 만나는 것이다.
성경을 보게 되면 가나안으로 가는 도중의 출애굽기나 가나안에 도착한 후의 사사기에서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에 대해서 계속 부정하고 타락해갔다. 그러면서 그런 인간이 하나님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다른 신, 즉 우상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바로 그 인간을 하나님이 만나시려 오히려 접점을 만드셨다. '시내산에서' 그리고 '성막 안 지성소'를 세우시고 인간을 만나시겠다고 선언하신 분이 오히려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성도가 성도 다와지려면 그분이 만드신 접점에서 그분을 만나는 것이다.
많은 재테크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지속 가능한 권력의 시작은 절제라고 했다. 그리고 부의 첫출발이 지출관리라는 것과 말의 결이 같다. 그럼 성도의 믿음이 지속 가능하려면 어떤 점이 필요한가? 성도가 믿음을 유지하려면 회개가 필요하다. 세상에서 얘기하는 절제와 회개 어떤 차이가 있을까?
부자들이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 것이 절제라면, 믿음이 강한 사람은 더 회개하고 다시 회복한다. 즉 믿음의 성도는 회복 탄력성이 큰 것이다. 죄는 달콤하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는 기쁨은 짧다. 그러면 사람은 다시 달콤함을 느끼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 궁극에 중독되어 버린다. 마치 물건 구매에 중독되는 쇼핑홀릭이 되듯이.
그래서 성도에게는 죄를 절제하기 위한 회개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믿음으로의 회복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첫 질문, 성도는 어떻게 성도 다와 질 수 있는가?
세상의 지혜를 성도의 말로 치환해 보니, 믿음의 삶을 살아내고, 접점에서 주님을 만나고, 죄의 본능에 빠지지 않도록 회개하며, 다시 믿음으로 회복하는 것을 통해 성도다움을 지켜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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