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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파파 Jul 12. 2022

그들의 눈에는 진심이 있었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익숙해지는 풍경이 있다. 전에는 대화를 할 때 입에서 나오는 소리톤과 강약, 그리고 입술의 움직임을 보고 상대방의 진심을 나눌 수 있었는데 이제는 마스크를 통과한 둔한 소리와 눈을 통해 소통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된 것이다.


얼마 전부터 공공기관에서 일자리를 찾아주는 직업 상담사로 일을 하게 하면서 필자 역시 내담자의 목소리와 눈을 집중하면서 상담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짧은 상담 시간 대화와 함께 상대바라보면, 조금씩 그분의 성품과 함께 지난 인생을 같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에피소드 1. 조리장으로 취업한 A 선생님


64세라는 나이는 인생에서 많은 것도 적은 것도 아닌 그저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열심히 일하던 직장에서 정년퇴직하며 나오게 될 때 허탈함에 이은 자기 상실감이 이어지고 특히 새로운 직장으로의 재도전 기회는 점점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얼마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A 선생님은 쉽게 들어갈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했던 요양원 시설요양보호사로 취업이 힘들자 일자리 상담을 위해 내방을 하다.


몇 번 취직을 도전했지만 반복되는 실패로 자신감을 잃은 상태였다. 그의 과거  이력을 들어보니 중동에 진출한 국내 건설사 구내식당에서 조리장과 실장을 수 십 년 역임베테랑 한식 조리사였다.  전 직장에서 퇴직 이후 조리사가 아닌 요양보호사로의 인생 전환을 꿈꾸지만 쉽지 않았다. 실망한 기색의 선생님과의 상담 도중, 요양원에서 조리장을 뽑는다는 공고를 확인했다.


조심스레 그 공고를 보여드렸더니, 그분의 눈에 빛이 나기 시작했다. 평생 가장 잘하는 일이 한식 조리였고 또 대규모 인원의 식사를 손수 준비했던 그분의 몸에서 자신감이 다시 꿈틀 했던 것이다. 그리고 요양원에서 일을 하게 되면 앞으로 하고 싶어 했던 요양보호사의 직무도 간접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력서 준비와 면접에서의 요령을 설명하고 헤어졌다.


며칠을 기다렸더니 편안한 복장의 선생님이 찾아오셨다. 이미 서 진행되고 있는 다른 내담자와의 상담이 끝나기를 기다리다가 순서가 되자 데스크 앞으로 오셔서 한마디 건네신다.


"다음 주부터 요양원 조리장으로 출근하기로 했어요."

"선생님 너무 잘 되셨네요."

"전화로 얘기해주려다 일부러 왔어요. 고마워서."

"안 그러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그날 그분 인사말함께 나눈 대화는 고작 10초 남짓이었다. 하지만 대기 좌석에서 앞사람과의 상담이 끝나기를 5분 넘게 기다린 끝에 내게 감사의 말을 전해 준 것이었다. 마스크 위에 보이는 그분의 선한 눈에는 진심이 전달되고 있었다.




에피소드 2.  주먹 악수


70세 어르신이면 경비직이라고 해도 웬만한 작은 아파트에서도 퇴사를 권유하는 나이다. 아무래도 아파트 경비일이라는 것이 격일 밤을 새워야 하는 직업으로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기 때문이.


B 어르신은 평생 건설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분이셨다. 세월을 이길 수는 없어 귀는 좀 어두웠지만 겉으로 보기에도 단단한 체격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분이 상담할 때 내민 봉투 속에는 이전에 이수한 경비 신임교육 수료증이 들어있었다. 경비직도 요즘에는 교육 수료를 완료한 사람을 우선적으로 뽑는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에 얼마 전 교육을 수료했던 것이다. 사실 시간만 들이면 취득이 가능한 교육 이수 증빙이지만 연세 있는 분들에게는  "교육"이라는 말에 선뜻 도전이 힘들기도 하다.


동네에서 가까운 곳 아파트 경비직이 마침 고령자 취업이 가능하다는 게시를 보고 추천을 해 드렸다. 즉시 팩스로 이력서를 보내고 그쪽에서 올 반응을 기다리기로 했다. "고령자 희망"이라고 해도 건강하고 젊은 경비 지원 있으 상대적으로 뽑힐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이틀 뒤 한 달음에 달려오신 B 어르신, 오자마자 흥분된 어조로 말씀을 하신다. 지원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는데 오늘 4시에 면접을 보자고 했다는 것이다. 이틀 전과 달리 어르신의 목소리는 힘이 있었고, 어느새 이발도 하고 눈썹도 진하게 다시 그려져 있었다. 게다가 젊게 보이려 깨끗한 청바지에 하얀색 재킷도 입고 오셨다.


면접장소에 가기 위해 나서시면서 나에게 주먹 악수를 청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한다면서. 아직 뽑혔다는 소식은 못 들었지만 면접 소식에라도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시는 어르신의 흥분된 두 눈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에피소드 3.  일은 하고 싶지만 몸이...


부부가 방문했다. 경상도 출신의 남편분은 짧고 굵게 한마디 묻는다.


"어디 일 없소?"


60대 중후반의 남편은 시에서 운영하는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근로와 지역 일자리 추첨에서 떨어지고 그 소식을 확인하자마자 옆에 있던 일자리센터로 찾아온 것이다.


경비직과 청소직을 권했지만 반응이 별로 없었다. 그때 아내분이 거든다.


"이 사람은 그런 거 못해요. 힘든 일은 못하는 력이라서."


순간 남편의 미간이 움직이며 강한 어조로 아내를 말린다.


"어허 당신은 좀 가만히 있어."


두 분의 행동에서 가정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청소. 환경미화직을 '희망직종'으로 저장해 놓고 두 시간 뒤에 하루 6시간 정도 일하는 아파트 외곽 미화원직이 공고가 나서 바로 연락을 드렸다. 분명히 남편분의 전화번호연락을 했는데 아내가 받았다.


"잠깐만요. 물어볼게요."


그리고 이내 온 답변이 '그런 일은 힘들어서 못 할 것 같다'라고 전해주셨다.


어떤 이는 70대 초중반에도 육체노동을 할 수 있지만, 많은 분들이 60대만 되어도 몸이 따르지 않는다. 그래도 작은 일이라도 새로운 일을 찾아보시려는 분들은 정말 많은 용기가 있는 분이다. 어르신께서 체력을 회복하시고 자신감을 찾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에피소드 4.  선생님 덕분에 취업했습니다.


사회복지사는 연약한 사람들을 돕는 직종이다.

25살 청년 사회복지사 이 씨와 통화를 했는데  다른 또래 청년들과 다르게 진지하게 구인 게시된 직무정보의 설명을 들었다.


젊은 사람들과 통화할 때면 사실 좀 긴장된다. 굳이 상담사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쉽게 구인정보를 접할 수 있는 데다 많은 기업과 단체가 청년 중심으로 채용을 원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조금만 조건이 좋으면 결심을 바꿀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입사 지원이 가능한 모 노인복지단체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과 그곳에서 채용할 사회복지사 직무를 설명해주고 면접을 원하는지 또는 단체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추후 연락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네 연락처 알려주시면 제가 그곳에 직접 연락해 보겠습니다."


여느 때처업체의 연락처를 남겨주는 "알선"을 하고 그 청년과 전화 상담을 끝냈다. 많은 청년들이 그렇듯이 이후에 결과를 전해주는 전화가 오거나 하는 일없었다.


2주가 지나 본인이 소개한 업체에서 알선했던 청년 이 씨를 채용했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2주 동안 여러 다양한 분들을 소개했던 터라 처음엔 누군지 기억을 못 했었는데 프로필을 다시 보고 기억을 소환할 수 있었다.


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이 ㅇㅇ님 오랜만에 연락드려요. 최종 합격하셨다고 들었어요. 정말 축하드려요."


직업상담사 중에 남자는 드물다. 그래서 필자의 목소리가 기억이 났나 보다.  청년도 이내 반가운 어조로 화답해 준다.


"상담사 선생님 덕분이에요. 소개해 주신 단체와 잘 얘기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회복지사라는 직무가 쉬운 일이 아닌 것을 알고 있다. 박봉에 어려운 이웃을 일부러 찾아가서 현황을 파악하고 정보를 정리 보고한다. 사회약자에 필요한 좋은 정책이 있으면 알려줘서 정부가 찾지 못한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주는 직업이다.


어르신들의 어렵고 불편한 곳을 찾아야 하는 직업, 그리고 그 역할에 사회인 첫발을 내딛는 청년의 도전이 참 귀하다.




에피소드 5.  어렸을 때 고생한 이야기


직업상담 일을 하다 보면 정작 일자리를 찾는 본업과 달리 어르신들의 살아 이야기를 듣는 때가 많이 있다.


한 연세 지극하신 어머니가 자리에 앉으셨다.

"상담사 양반, 하루 3-4시간 일 할 곳은 없을까? 옆집 누구는 담배꽁초 주으면서 돈도 받던데. 나도 그런 일을 찾아주면 좋겠어."


78세 어르신은 부부가 함께 사시는데, 남편이 90 넘으셨고 환자라서 하루 종일 누워 계시기 때문에 나라에서 지원받는 돈으로는 살기 힘들어 조금이라도 일을 해서 생활비를 보태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 그런 일은 시에서 하는 것인데 이미 신청기간이 끝났어요. 발표도 났고요. 다음 기회에 꼭 신청하세요."


잠시 실망하신 표정을 지으시더니 갑자기 살아오신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내가 7살 때 계모가 집에 들어왔거든.  그때 나보다 나이 많은 자식도 같이 왔어. 엄마가 돌아가신 지 일 년 만에 벌어진 일이야. 그때부터 내가 얼마나 맞고 살았는지 알아?"


어르신은 귀에 보청기를 가리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계모 하 그 딸이 맨날 나를 때려서 어렸을 때 고막이 터졌었다니까. 그래서 지금 이렇게 보청기 낄 정도로 귀가 안 좋아. 그때는 이유도 모르고 매일 맞고 살았어. 그런데 하늘은 그렇게 나쁜 사람들 벌을 주더라고. 그 사람들 말년에 다들 고생하면서 죽었어. 그래도 나는 지금껏 남편하고 살고 있잖아."


할머니의 인생에서 권선징악의 스토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또 반전이 있다.


"근데 참 희한한 것이 그렇게 웠던 계모 하고 이복형제들이 모두 죽었는데.... 그 자식들은 나한테 잘해. 지금도 때 되면 연락하고 있고."


80이 되어가는 인생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그리고 인생에는 좋은 이야기와 나쁜 이야기 한데 섞여있다. 나쁜 기억의 이야기가 추억이 되기도 하고, 좋은 기억의 순간들은 어느새  잊히기도 한다. 담담히 옛이야기를 하시는 어머니의 눈에는 회환과 함께 그리움도 묻어있었다.




마스크로 인해 입모양은 볼 수 없지만 대화할 때 목소리뿐 아니라 눈을 자세히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눈에도 표정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입모양보다 눈에서 드러나는 표정에서 그 사람의 진심이 더 전달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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