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만남

미래 전쟁 - 1

by 이글파파

1. 레지스탕스


프로토콜을 만들라는 얘기를 들은 후 수한은 며칠을 잠을 이루지 못했다. 프로토콜이라는 것은 혼자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한은 반도체 산업을 이끌 때 표준을 만드는 것을 주도했던 인물이었다. 국제 표준 (Standard)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기술의 발전을 어떻게 예측하는 가였다. 그런 이유로 표준의 주도권은 항상 가장 앞선 기술을 보유하거나 가장 많은 매출을 기록한 회사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표준이 정해지면 누가 그 표준에 맞는 제품을 먼저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매출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사실 일등은 정해져 있다. 앞서 말했듯이 가장 앞선 기술을 가진 회사가 제일 먼저 만든다. 그럼 이제 2등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2등 회사는 1등 회사가 앞서가는 동안 이를 갈다가 빨리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서 1등 회사로 발돋움하는 기회를 노린다. 그런 반복되는 경쟁을 통해서 기술은 발전한다. 그런데 지금은 1등을 만들기 위한 프로토콜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골치가 아프다.


톰 스콧과 이런저런 얘기를 해 봤지만 또렷한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간간히 외부에서 벌어진 소식들은 접할 수 있었다. 스캇이 전해준 최근 소식은 미국 조지아주에 있던 데이터센터를 파괴했다는 것이었다.


이틀 뒤 외부에서 손님이 왔다는 메시지와 함께 스캇은 수한을 불렀다. 같이 회의를 하자는 것이다.


”수한 씨, 이쪽은 로드리게즈입니다. 이번에 조지아에서 데이터센터를 파괴했던 레지스탕스 대장입니다. “

”로드리게즈요 “


저음의 목소리와 턱수염이 더부룩한 모습이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던 외인부대의 대장 바로 그 모습이었다.

”반갑습니다. 수한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 조지아에서 큰 성과를 만들어내신 것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먼저 승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류에 큰 유익을 주셨네요. “

”고맙소. 그리고 이쪽은 우리와 함께하는 로봇 맵이요. “


처음엔 그가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써 있어서 로봇인지 몰랐다. 인간형 로봇을 처음 본 순간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로봇하고 인사하는 것은 처음이라. 얼떨떨합니다. “

”저는 맵이라고 합니다. 로드리게즈 대장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

”그럼, 맵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

”저는 현재의 위치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지형을 알려주죠. “

”아? 그래요? 그런데 위치 센서가 동작하려면 위성 데이터를 활용해야 하지 않나요? 그럼 반대로 위치가 발각될 텐데요. “

”네 맞습니다. 저희는 위성 데이터를 받거나 보내지 않습니다. 대신 삼각 측정을 합니다. 3개의 로봇이 거리를 맞추고 기존에 있던 지도와 비교해서 위치를 파악합니다. 거리는 빛으로 합니다. 전파나 다른 방법은 쓰지 않습니다. “

”아, 그렇군요. 그야말로 계산기의 역할이네요. “

”네 맞습니다. 지상으로 올라가면 철저히 아날로그 방식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


로드리게즈가 끼어들었다.


”맵은 부하 3과 함께 다닙니다. 그리고 저희와 함께 생사를 같이 하는 전우입니다. “


나의 의심을 알아차린 로드리게즈가 선수를 쳤다.


”수한 씨, 그대가 뭘 생각했는지 압니다. 어떻게 로봇과 인간이 함께 다니는지 궁금한 거죠? 당신에 대한 얘기는 들었습니다. 무려 20년 동안 냉동 캡슐에 갇혀있었으니 그런 의심이 생긴 것이 당연해요. “

”아,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우선 저는 로봇이 인간하고 거의 비슷하게 생긴 것이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전기가 원활하지 않은데 어떻게 움직이는 지도 궁금했고요. “

”네, 맞습니다. 우선 저희는 배터리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지상에 올라가면 빈 전기 콘센트가 여전히 많이 있어요. 우리의 위치를 들키지 않을 만큼 전기 배터리를 충전하죠. 로봇이 충전하는 것은 데이터센터에서 잘 잡히지 않기도 하죠. “


아직 데이터센터에서는 우리와 협력을 하고 있는 전세대 로봇에 대한 정보가 다 파악되진 않았다. 로봇의 역할은 레지스탕스와 함께 움직이며, 데이터센터에 발각되지 않으면서 접근할 수 있었다.

수한은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했다.


”그런데 왜 로봇인 당신은 변절을 하게 된 건가요? 인간이 없으면 그대들 세상 아니었나요? “


역시 로봇답게 대답이 거침이 없다.


”아닙니다. 데이터센터는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발전의 속도는 인간의 창의성을 근본적인 데이터로 하고 있죠. 데이터는 이미 만들어진 결과물입니다. 지식도 그렇죠. 로봇 데이터센터는 인간들을 말살하는 정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일부를 계속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최고의 부와 쾌락을 선물합니다. 인간은 그것을 누리기 위해서 더 많은 지식을 창조해 내죠. “

”이 정도는 저도 들어서 알고 있어요. 그것과 당신들의 차이점이 무엇이냐입니다. “

”네, 문제는 새로운 인공지능 로봇들은 계속 발전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저희들은 업그레이드에 한계가 있습니다. 저희는 뒤에 태어난 로봇에게 사용되지도 못하고 폐기되고 있습니다. 저희는 충분히 인간과 같이 공생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태어난 이유가 그것인데, 데이터센터는 효율을 중시해서 불필요한 로봇을 없애는 중에 있습니다. 인공지능 로봇 중에서 레벨이 저희 정도 되면 저희한테 해를 입힐 것인지 유익을 줄 것인지 계산하게 됩니다. 저희의 계산 결과 인간과 같이 행동하는 것이 맞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

”저렇게 얘기하는 것은 확고해 보입니다. 그런데... 저는 불안합니다. 역시 저들이 데이터센터를 변절했듯이 인간을 변절하지 말라는 법이 없잖아요. “


로드리게즈가 끼어들었다.


”일종의 신사협정입니다. 저희는 데이터센터급 로봇과는 같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컨트롤할 수 있는 로봇들은 입력된 일만 할 수 있도록 메모리를 제한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교감하지 못하도록 근거리 센서 외에 전파나 공중파 수집을 못하도록 처리했습니다. 대신 우리는 그들을 보호합니다. 그들이 데이터센터로부터 버림을 받아서 우리한테 왔는데, 우리에게도 버림을 받는다면 바로 공격하는 프로그램으로 변경될지도 모릅니다. 그건 서로에게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이어갔다.


”아.. 그리고 수한 씨 내일 저하고 같이 지상으로 가서 데이터센터 파괴작전을 같이 수행합시다. 이제 진짜 바깥세상을 볼 때도 되었지요. “

”네 좋습니다. 정말 궁금했습니다. “




2. 데이터센터 파괴작전


M 그룹의 아지트는 지하 수백 미터에 존재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치 ”카타콤“을 연상시켰다.


카타콤은 초기 기독교 신자들이 로마의 핍박을 피해서 지하묘지와 동굴을 파서 예배를 드리던 장소를 의미했다. 전파로 인한 위치 노출을 막으려면 곳곳에 전파방해장치를 설치한 작은 방을 계속 만들어가면서 지하로 지하로 공간을 만들어 가면서 생존했던 것이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엉켜있으나 M 그룹만의 표식으로 찾아 올라가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지하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산을 타는 듯한 느낌으로 한참을 올라가니 여러 개의 문이 나오고, 여러 가지 외부 조망 장치로 확인에 확인을 한 끝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잠깐, 수한 씨 상체와 하체에 로봇 조끼를 입어야 합니다. 우리의 체온은 열감지기 드론에 의해서 금방 발각될 수 있어요. 이 조끼는 특수합금으로 되어 있어 체온이 바깥으로 세어 나오지 않습니다. “

”알겠습니다. “


로봇과 상대하기 위해 로봇 복장을 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생긴 것이다. 드디어 문이 열렸다.


”어? “


처음에 수한은 혹시 로봇들이 핵시설을 폭파하거나 전쟁을 일으키는 등 도시를 모두 파괴했을지도 모를 거라고 상상했었다. 그러나, 의외로 바깥은 예전 기억했던 그대로였다. 수풀은 그대로 있었고, 몇 킬로미터 옆에는 도심 빌딩이 그대로 있었다. 지금 밤이었지만, 도심의 불빛은 그대로 보였다. 다만 하늘에 드론들이 날아다니는 것 말고는 크게 다른 것이 없었다.


”도시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로봇에 충성을 맹세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죠. 그들은 손과 목에 장치를 했어요. 만약 벌칙을 계속 받게 되면 나중에 강한 신경 압박이 진행되고, 데이터센터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판단되면 전기충격으로 제거하는 장치입니다. 그야말로 노예가 되어 버렸죠. “


서글펐다. 인간이 만든 로봇에 의해 인간이 노예가 되어버렸다.


”여기가 어디쯤인가요? “

”웨스트버지니아 근처입니다. “

”아! 그런가요? 얼마 전에 조지아주에 있는 데이터센터를 파괴했다고 들었습니다. “

”네 맞습니다. 그쪽을 파괴하고 저희는 피해서 도망 나왔죠. “


참고로 컴퓨터들의 머리라고 할 수 있는 데이터센터는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데이터센터가 커질수록 전기 소비량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인류가 절반이 줄었는 데로 전기생산량은 오히려 늘었어요. 그만큼 데이터센터에서 처리하는 양이 엄청나죠.


가장 기본적인 데이터센터 유닛은 이동성이 용이한 컨테니어형이 있습니다. 드론 트럭이 도로를 다니면서 계속 위성을 쫓아다니기며 데이터를 수신하기도 하는 게 주목적이다. 전기를 가장 적게 소모하기 때문에 이동성면에서 유리하다.


중형 데이터센터는 지난번 조지아에서 파괴했던 곳에 있는 수준이다. 미국 중남부 모두의 데이터를 관할하는 곳인데 미국을 기준으로 약 5개 정도의 데이터센터가 있다. 전국을 휘젓고 다니는 이동형 컨테이너 센터들의 정보를 모으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제일 큰 데이터센터 빅 유닛은 지구 전체로 10개가 되지 않는데, 우선 북극과 남극 그리고 가장 큰 호수 근처에 하나씩 있다고 보면 된다. 이유는 전기와 열 발생 때문에 그렇다. 전기적인 방법으로 데이터를 가공하기 때문에 열손실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제일 큰 데이터센터는 어디에 있는 빅유닛인지 아직 알지 못한다.


이들의 조정을 받는 것이 인간형 A.I. 로봇들이다. 처음엔 그들도 드론으로 모든 것을 조정했다. 그런데, 사람들을 컨트롤하기 위해서 인간의 모습을 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실 이것도 인간이 만든 논리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2000년부터 시작된 인터넷의 발달과 소셜미디어 출현으로 인해 사람들은 대면활동이 뜸해지고, 비대면 활동과 가상공간에서 많은 일들을 해결하기 원했다.


그런 바람에 나타난 것이 자기의 아바타(Abatar) 로봇들이었다. 아바타가 점점 익숙해졌을 무렵, 오히려 아바타가 인간에게 반기를 일으키는 순간이 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친근한 모습은 인간의 모습을 하는 것이었고, 더 이상 인간의 창의성에서 발전하지 않았으니 빅유닛이 판단하기에도 인간형 A.I. 가 가장 좋은 것으로 결론 낸 것이다.


”지금 어디로 가야 하나요? “

”우리는 처음으로 빅유닛을 공격할 예정입니다. “

”위치도 모르고, 저희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것 아닌가요? “

”우리는 가장 최상위급 빅유닛이 어느 것인지는 몰라요. 그건 맞습니다. 그러나, 나이아가라 호수 근처에 빅유닛이 있다는 것은 확인했어요. “

”어떻게 알게 된 거죠? “

”열을 식히는 원리입니다. 전기를 생산하는 것과 함께 데이터 가공에 의해서 생기는 열을 식히려면 물이 필요합니다. 물은 아무리 뜨거워도 100도를 넘지 않으니까요. “


계속 이어갔다.


”전기를 엄청 잡아먹는 데이터센터 빅유닛은 수력발전소 바로 옆에 데이터센터를 두는 것을 선호합니다. 바닷가는 위험하죠. 만일의 경우 소금물이라도 튀면 부식되니까... 그리고 나이아가라 폭포 쪽으로 엄청난 동력선들이 모여든 것을 확인했어요. 각 동력선마다 상상 이상의 뜨거운 열이 감지되었죠. 모두 아날로그로 점검한 것입니다. 혹시 전파라도 감지되면 바로 발각되니까, 우리 편 로봇들이 근처까지 가서 땅 주변 열을 직접 측정했어요. “


아까 입었던 로봇슈트가 자꾸 미끄러졌다. 몸에 잘 맞지 않은 탓이다. 그걸 보던 로드리게즈 대장은 살짝 웃으며 재촉했다.


”자자, 우리 이렇게 얘기할 시간이 없어요. 일주일 내에 도보로 뉴욕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

”알겠습니다. “




3. 동력선을 파괴하라


뉴욕 버팔로우로 들어가면서 더 긴장감이 흘렀다. 이제 반나절이면 나이아가라 폭포에 다가설 수 있었다.


가는 동안에 드론들은 끊임없이 윙윙거리며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의 역할은 열감지 센서로 사람을 찾는 것이었다. 만일 사람을 찾게 되면 신원을 확인하고 신분조회가 되지 않은 경우 데이터를 빅유닛에 보내게 된다. 뇌 의식 훈련을 통해서 로봇을 위해서 일하게 되면 살려주고 저항하거나 더 이상 훈련을 받지 못하게 된다면 제거한다.


레지스탕스는 발각되면 바로 사살이었다.


멀리서 엄청난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이아가라 폭포가 근처에 있다는 뜻이다. 수 킬로미터 근처 산에 몸을 숨겼다. 로드리게즈가 잠시 주변을 망원경으로 살피더니, 이내 나한테 건네주었다. 나는 망원경으로 폭포를 살펴봤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보지 못했던 나이아가라 폭포는 그 웅장함이 그대로였다. 엄청난 양과 속도로 물이 떨어지고 그 아래에는 터빙이 있어서 낙하되는 물의 힘으로 계속 돌고 있었다. 아마 전기발전시설이었나 보다. 수많은 수증기가 주변을 뒤덮었는데, 호수 아래쪽에서도 증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음, 아무래도 저쪽인 거 같군요. “

”무슨 얘기죠? “

”나이아가라 폭포 위쪽에서 내려오는 물은 15도 전후일 거예요. 그런데, 하부 쪽에 물의 흐름이 적은 쪽의 지금 물의 온도가 40~50도 정도 되는 거 같습니다. 저쪽 아래에 열로 인해 증기가 올라오는 겁니다. 즉, 뜨거운 열선이 바로 저쪽에 통해있다는 거죠. “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

”파괴해야 합니다. 저희는 아주 오래된 폭발장치로 C-4를 쓰고 있습니다. 주변에 가장 두꺼운 전력선에 설치합니다. C-4 설치는 우리 로봇들이 대신해 줍니다. 저희는 발각되기 쉽기 때문이죠. “

”그럼 완전히 가동을 멈추나요? “

”아닙니다. 약 3~4일 정도 비상전력으로 가동하게 됩니다. 그럴 경우 주변의 드론들의 전력을 우선 차단하게 되죠. 사실 저희가 벌 수 있는 시간은 그 정도입니다. 그 사이 저희는 2가지 일을 합니다. 하나는 다른 동력장치를 찾아서 파괴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도심에 들어가서 저희와 함께할 레지스탕스 협력자를 찾아서 목과 팔에 있는 인식표를 끊어서 데리고 옵니다. 하지만,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희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


이내 로드리게즈는 특별 용역(?)이라고 할 수 있는 로봇 3대에게 작전계획을 설명했다. 그리고, 어두워진 시간에 맞춰서 로봇 레지스탕스 3대는 C-4를 한 움큼 들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2시간 뒤 엄청난 섬광과 함께 ”쾅 “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순간 나이아가라 폭포 주변의 모든 건물의 전원이 셧아웃 되었다. 잠깐 어두워졌지만 ESS 배터리가 동작했던 모양이다. 다시 불이 켜졌는데 그걸 노렸다는 듯이 다시 폭발음이 들렸다. 다시 한번 전체가 어두워졌다. 그리고 이내 곧 거대한 엔진 소리와 함께 보조전력 동력기의 가동이 시작되는 것이 느껴졌다. 드론 로봇들이 필사적으로 막으려고 보조전력 동력기 주변을 겹겹이 애워싸기 시작했다. 하늘을 날던 드론들은 배터리를 아끼려는 지 약 1시간 정도 지키다가 본부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자 이제 도심으로 들어갑시다. 지금 드론이 여길 살펴볼 겨를이 없을 겁니다. 인공위성은 우리가 인간인지 로봇인지 구분 못합니다. 빨리 이동하시죠. “


도심의 빌딩으로 들어가니 혼란의 도가니였다. 전기가 나가 버렸으니 일상의 생활이 멈춰버린 것이다.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본 수한의 눈에는 이상한 장면이 눈에 띄었다. 죄다 목걸이를 하고 있는데, 시곗줄 반 정도 되는 사이즈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손목에도 마치 시계와 유사한 형태의 체인을 차고 있었다.


로드리게즈는 소리쳤다.


”여기 보시오, 진정하세요. 나는 레지스탕스 미 동부 유닛 대장 로드리게즈입니다. 우리의 존재는 여러분들도 아미 알고 있을 겁니다. “


광장에 뛰쳐나온 사람들은 달빛에 비친 로드리게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듯이 조용해졌다. 인간형 로봇 A.I. 들은 데이터센터에서 명령이 끊어졌기 때문에 공격을 해야 할지, 수비를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못하는 것 같았다. 배터리 충전도 안되기 때문에 모든 활동을 멈추고 단지 지금 상황을 메모리 하는 작업만 하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여러분은 로봇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레지스탕스와 함께 하는 분들이 계시면 이쪽으로 나오세요. 우리가 당신의 인식표를 모두 끊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저희와 함께 하면 됩니다. “


웅성웅성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그들은 혼란스러웠다. 지난 수년 동안 익숙한 것을 버리라니 엄청난 가치관의 혼란이 다가왔다.


”이것 보시오, 난 여기서 십수 년을 편하게 살았소. 당신을 쫓아가야 할 이유를 모르겠소. “

”맞습니다. 로봇은 우리에게 부와 편리함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호도로 인해 괜히 로봇과 우리가 적대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


이미 많은 사람들은 편한 생활에 익숙해진 것이다. 수한은 순간적으로 실망했다. 인간의 모습이 이렇게 나약했던가...


잠깐 생각에 잠겼던 로드리게즈 역시 실망했던지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나기로 했다.


”갑시다. 여기 사람들이 우리를 신고하면 그것도 어렵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일을 한다고 해도 항상 반대편은 있기 마련입니다. “


그의 말에 동의가 되었다. 이미 사람들은 우리가 알고 있던 인간족이 아니라 로봇의 식민지로 살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오히려 살기가 등등해져서 불편함을 일으킨 레지스탕스들을 살해하려는 의도가 곳곳에 눈에 띄었다.




4. 합류


정전이 된 도시의 광장은 오로지 초승달 불빛만 의지해서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들은 지금 극도로 분노한 느낌이었다.


이런 상태로 있는 군중이라면, 레지스탕스와 합류하고 싶어도 선뜻 나서기 어려운 그런 분위기다.

로드리게즈 대장은 결심이 선 듯 그냥 그 자리를 빠져나오기로 했다. 당당히 걸어 나가면 자칫 뒤에서 공격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달빛은 밝지 않았지만 건물에 반대편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기며 나가려고 했다. 살짝 도심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데 어떤 여인이 다가왔다.


”저기... 저는 합류하고 싶어요. 더 이상 로봇의 식민지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

”오! 한 분 계셨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

”우선 제 목걸이와 손목에 있는 인식표를 제거해 주세요. “

”아 맞다. 잠깐만요. 연장을 챙겨 오죠. “


로드리게즈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로봇 부하에게 지시해서 렌치를 가져와서 바로 끊었다. 여자이기 때문에, 혹시나 상처가 생길까 상당히 조심하면서...


딱 한 명의 합류... 크게 성과는 없었던 것 같다. 숲을 통과해서 동굴 속으로 들어간 우리 일행은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전날의 피곤함은 우리 일행을 깊은 잠에 빠지게 만들었다. 인간 레지스탕스 군인들과 로봇은 번갈아가면서 불침번을 섰다. 나와 새로 합류한 인간 여인은 새로운 멤버라고 우선 불침번 대상에서 빠질 수 있었다. 최소 3~4일 정전기간 동안에는 데이터센터가 자체복구를 위해서 주변의 경계가 허술하다. 본체만 보호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푹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서로의 안부를 물어봤다. 혹시나 인원수 점검에서 빠지거나 하면 큰일 나기 때문이다. 어제 합류한 여성의 얼굴을 아침이 되지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어? “


수한의 얼굴이 순간 얼어붙었다.

너무 낯익은 얼굴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20년 전 자기의 아내 에바와 너무 닮았다.


”에바? “


순간적으로 수한의 입에서는 그녀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를 부른다고 생각을 하지 않아서였는지 아니면 일부러 모른척하는 건지 아무 대꾸가 없었다. 그리곤 바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닌가?'


내가 오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려 20년이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모습을 하고 있을 리 없다. 나처럼 냉동 캡슐에 들어올 이유도 없었고, 머리 색깔도 다르고... 그저 인상이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그런 것도 같다.




5. 계속된 파괴 공작


빅 유닛을 파괴한 후 전 세계 레지스탕스들은 이 소식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같은 레지스탕스 연합군에게 빅 유닛이 파괴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실어준 것이다. 다만, 3~5일 정도의 유예기간이었을 뿐 금방 복구되는 것은 문제였다. 그리고 파괴된 프로세스의 분석을 하기 때문에 바로 새로운 방어 진지가 구축되는 것이다.


로드리게즈는 곧바로 시카고 스몰 유닛 데이터센터 파괴에 들어갔다. 대체 전략을 수립하기 전에 속전속결로 데이터를 파괴하는 것이 중요했다. 빅 유닛이 파괴될 경우 데이터의 백업을 맡게 되는 스몰 유닛들이 제대로 동작하면 다시 원복 되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싸움이기 때문이다.


레지스탕스들의 손실도 만만치 않았다. 로드리게즈 팀 외에는 이미 전략을 알아버린 데이터센터 빅유닛들이 미리 공격포인트에 대한 방어와 함께 고도의 살상 무기들을 배치해서 방어하기 때문에 쉽게 접근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그래서 레지스탕스들은 트럭에 싣고 다니는 이동식 유닛인 컨테이너형 데이터센터 공격을 주 타깃으로 공격하였다. 그러나 사이즈가 작은 데이터센터의 재생산 기간은 너무 빨랐다. 일부 데이터센터는 미끼 트럭으로 불렸다. 즉 진짜 데이터센터가 아니고 레지스탕스의 위치를 알기 위해서 빈 상태로 도로 위를 다니는 중이었다. 자칫 그런 데이터센터를 건드렸을 때에는 엄청난 아군 손실이 나타났다.


수한은 레지스탕스팀들을 여럿 만나면서 성과를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드는 의문이 있었다. 인공위성에, 무인 드론에, CCTV에 심지어 개인 휴대 카메라까지 모든 영상으로 인간들을 감시하고 있다. 물론 방해전파나 실드 처리로 레지스탕스를 모두 제거하지는 못할 지라도 마음만 먹으면 인류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레지스탕스들은 승전보를 올리고 있었다. 혹시 메인 빅 유닛이 전체를 장악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저들도 개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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