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 남들이 잠든 시간에 시작된 팀장의 유연근무는 늘 위태로웠다. 성인 아들의 감기가 도졌다는 이유로 9시가 되기도 전에 서둘러 유연근무를 종료하고 연가 버튼을 눌렀다. 다음날은 병가를 냈다.
서른을 앞둔 아들의 콧물을 닦아주러 간다는 서른 해 경력의 공무원. 그 기이한 모성애 혹은 책임 회피의 현장을 새로 부임한 과장은 놓치지 않았다.
과장의 목소리가 복도를 갈랐다.
“아들이 미성년자입니까? 근태 체크 똑바로 안 해요?”
과장의 서슬 퍼런 ‘꼽’에 팀장이 선택한 무기는 서류가 아닌 눈물이었다. 팀원들을 모아놓고 과장의 비인간성을 성토하며 쏟아내는 그 축축한 액체들. 사람들은 그것을 동료애로 받아줬을지 모르나, 그녀의 눈에는 그저 퇴화하지 않은 생존 본능, ‘악어의 눈물’로만 보였다.
그녀는 그저 모른 채 한다.
위로도, 비난도 섞이지 않은 완벽한 무관심. 그것이 그녀가 팀장에게 베푸는 최선의 예의다. 팀장은 그렇게 비굴함과 눈물로 30년을 버텨온 사람이다.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들고, 감정에 호소하며, 결정적인 순간에 약자 코스프레를 하며 살아남은 그 세월의 관성.
뇌종양과 싸우며 1,000일을 법정에서 보낸 그녀.
한쪽 귀의 소리를 잃고도 제 자리를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한 그녀에게 팀장의 그 눈물은 지나치게 가볍다. 죽음 앞에 선 사람의 눈에 비친 팀장의 30년은, 그저 썩은 동아줄을 붙잡고 발버둥 치는 비루한 연극일 뿐이다.
팀장의 눈물 섞인 넋두리가 사무실의 공기를 축축하게 오염시킬 때쯤, 그녀는 서랍을 열어 상품권을 꺼낸다. 그리고 팀장과 팀원들 사이에 슬쩍 밀어 넣으며 말한다.
"팀장님, 이걸로 팀원들이랑 차라도 한잔 마시고 오세요."
그녀의 이 호의는 다정한 위로가 아니다. "그 지겨운 입 좀 제발 닥치라"는 무언의 압력이자, 그녀의 평온한 집필 시간을 방해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다. 조용히 그녀의 삶을 완주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은 그렇게 몇 장의 종이 뒤에 숨겨진다.
누군가는 말했다. 돈으로 안 되는 건, 돈이 부족해서라고. 반백년을 산 그녀가 배운 진리는 조금 더 서글프고도 명확하다. 저들에게는 고작 몇 만 원의 호의면 충분하다는 사실이다. 30년을 비굴하게 버텨온 영혼의 값어치는 딱 그 정도였다.
팀장은 뜻밖의 횡재에 금세 눈물을 닦고 상품권을 챙긴다. 뇌종양을 이겨내고 돌아온 자의 서늘한 눈빛보다, 당장 손에 쥐어진 상품권 몇 장이 팀장에게는 더 확실한 사료였다.
그녀는 다시 귀마개를 끼듯 한쪽 귀의 정적 속으로 숨어든다. 빌런들에게 던져준 먹이는 효과적이었다. 사무실은 다시 고요해졌고, 그녀는 이제 타인의 비루한 서사가 아닌, 그녀의 장엄한 마침표를 찍기 위해 노트북을 켠다.
백 년의 생을 압축해 산 그녀에게, 이 정도 지출은 평화를 사기 위한 가장 값싼 비용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