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뚝거리는 겨울

by 루비하루



​1월의 끝자락, 겨울은 가장 매서운 이빨을 드러낸다. 이 추위는 단순히 물리적인 기온의 하락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수술 부위의 미세한 신경들이 비명을 지르고, 뼛속까지 시린 냉기가 몸의 비대칭을 더욱 선명하게 일깨우는 계절이다. 약한 자들에게 겨울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라, 생존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전장이다.


​그녀는 화장실의 차가운 타일 위에서 C과장을 마주쳤다. 그녀처럼 뇌수술을 견뎌낸 사람이다. C과장은 한쪽 다리를 눈에 뚜렷하게 보일 정도로 절뚝거리며 세면대로 향했다. 그 절뚝거림은 화장실 안의 정적을 깨는 유일한 리듬이었고, 동시에 이 공간이 품고 있는 거대한 비극의 증거였다. 두 사람은 서로의 결함을 본능적으로 인지했지만, 아무 말도 섞지 않았다. 침묵은 이 전장에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고도화된 방어 기제였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또 다른 종류의 날 선 공기가 그녀를 맞이한다. 이번 인사발령으로 새로 온 서무는 이전과는 다르다. 쏟아지는 업무 속에 적응하느라 여유를 잃은 탓인지, 그는 유난히 날이 서 있다. 보고서 인쇄를 요청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녀의 팀에 놓인 칼라 프린터는 기약 없이 멈춰 서 있다. 다른 팀들은 멀쩡히 연결해서 쓴다는 그 기계가, 왜 그녀의 팀에서만 죽은 듯 침묵하고 있는 것인지... 실무를 챙겨야 하는 그녀의 입장에서는 그 예민한 서무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그저 조심스럽고 버거울 뿐이다.

​과장이 바뀐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하지만 이 조직의 시계는 여전히 과거에 멈춰 있다. 사람들은 각자가 가진 익숙한 관성에 몸을 맡긴 채,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팀장도, 동료들도, 그리고 그녀조차도 그 견고한 관성의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새로 온 서무의 날카로움이나 고장 난 프린터 같은 사소한 결핍조차 시간이 지나면 결국 이 조직의 무거운 관성 속으로 흡수되어 일상이 될 것이다.
​새로운 책임자가 온다 해도 시스템의 온도는 바뀌지 않는다. 관성은 변화를 거부하는 안온함이자, 동시에 서서히 질식해 가는 과정이다. 다리를 절뚝이는 C과장과 날카로운 서무, 고장 난 채 방치된 프린터, 그리고 살기 어린 눈빛을 품은 채 기록을 채워가는 그녀.

그들은 각자의 관성대로 이 겨울을 통과하고 있을 뿐이다. 이 정체된 흐름 속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이 풍경을 낱낱이 기록하는 것뿐이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