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의 끝, 과장님의 굽은 등에서 나의 미래를 보았다

by 루비하루


​본청 교육을 마치고 복귀한 S과장은 조직 내에서 보기 드문 ‘선인(善人)’이다. 그러나 오늘 업무보고 자리에서 그녀가 목격한 것은 인품이 보호해주지 못하는 잔인한 현실이었다. 시의원의 서슬 퍼런 질책 앞에 S과장의 고개는 맥없이 꺾였다. 그가 지켜온 선의와 전문성은 고작 몇 마디의 호통에 먼지처럼 흩어졌다. 그녀는 물었다. ‘저게 저토록 처절하게 깨질 일인가?’
​한 달 전 발령받은 D과장 역시 마찬가지다. 6개월 뒤 명예퇴직을 앞두고 본청에서 밀려 내려온 그는 이미 ‘전투 불능’ 상태였다. 부시장에게 호되게 깨지고 내려왔다는 소문은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30년 공직생활의 마침표가 영광이 아닌 ‘좌천’과 ‘냉소’라니. 60년대생 선배들의 뒷모습은 거대한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뒤의 폐허를 닮아 있었다.
​박봉을 견디며, 가족을 위해 자존심을 저당 잡히며 버틴 30년. 그 끝에 기다리는 것이 고작 저런 모멸이라면, 이 조직에 ‘진정한 승자’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닐까.

​그녀는 20년을 근무하고도 여전히 7급이다. 누군가는 그녀를 ‘낙오자’라 부를지 모르지만, 그녀의 생각은 다르다. 그녀의 오른쪽 귀는 이제 100 데시벨의 비명조차 읽어내지 못한다. 내이는 무너졌고 신경은 끊겼다. 하지만 이 ‘영구적 침묵’은 역설적으로 그녀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기계가 증명하는 차가운 수치들. 그녀는 이제 시스템에 구걸하지 않는다.

20년 근속과 7월의 장애 등록. 이것은 그녀가 조직에 바친 생체 에너지에 대한 정당한 ‘채권 추심’이다.

​진정한 승자는 누구인가
​오늘 업무보고 자리에서 무너지던 과장님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는 확신했다. 조직에서의 승리란 화려한 퇴임사가 아니다. 그것은 ‘더 이상 상처받지 않을 만큼 차가워진 채로, 그녀가 챙겨야 할 모든 권리를 손에 쥐고 나가는 것’이다.
​적당한 일과 적당한 돈,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의 질책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단단해진 무관심. 그녀는 이제 타인이 기대하는 ‘착한 공무원’의 가면을 벗기로 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녀를 보며 혀를 찰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안다. 30년 S과장이나 D과장처럼 ‘명예로운 퇴직’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서 깨지고 있을 바에야, 지금 차가운 ‘낙오자’가 되어 제 몫을 챙기는 것이 가장 고단수라는 소리 없는 진실을.
​그녀의 20년은 헛되지 않았다. 다만 그 결실이 그들이 말하는 ‘승진’이 아닐 뿐이다. 100 데시벨의 고요 속에서, 그녀는 비로소 자신만의 명예를 새로 쓰기 시작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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