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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by 루비하루

공상을 받았다.

천일 넘게 걸린 싸움 끝에 받은 결과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무겁다.

마치 누군가가 “그래, 공상은 줄게. 대신 조용히 사라져”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세 번 연속 승진에서 탈락했고, 내년이면 근속 승진 대상이었다.

그걸 앞두고 날아온 건, 본청 발령이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본청이면 좋은 거 아니야?”

하지만 나는 안다.

그건 축복이 아니라, 빅엿이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며,

그 손은 나를 조용히 책상에서 밀어냈고,

회의실에서 밀쳐냈고, 삶의 가장자리로 떠밀었다.


그날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눈물은 흘렀지만 고통은 없었다.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기도했다.

“내일 아침, 그냥 일어나지 않게 해 주세요.”

그런데 아직 유서를 쓰지 못했다.

너무 피곤했고, 너무 지쳐 있었다.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마치 수면내시경 때처럼.

프로포폴이 혈관을 타고 흐르듯,

의식이 조용히 꺼졌다.


그렇게,

유서를 못 썼다.

그리고 나는 또 하루를 살아버렸다.


살아 있다는 게 공허하게만 느껴진 날.

그래서 오늘, 유서를 대신해 이 글을 쓴다.

그리고 오늘도, 그저 또 하루를 살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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