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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다르다

by 루비하루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비가 내렸다.

비닐가방엔 책과 개인 물품이 들어 있었다.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2년 전에도, 비 오는 날 나는 그렇게 돌아왔다.

집 앞 주차장.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엄마···”

뒤를 돌아봤다.

아이가 오른쪽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오른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소리의 방향조차 알 수 없는 나.

딸은 그 모습을 보고 조용히 말했다.

“아··· 슬퍼.”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저 또 하루가 지나가는구나 싶었다.




다음날 오전, 시청으로 인사를 갔다.

병가 신청을 하기 전에 국장을 뵈었다.

그는 예전 본청에서 함께 일하던 팀장이었다.

그 시절, 민원이 폭주하던 어느 겨울.

나만 30대 초반, 다른 팀원들은 모두 40대, 50대.

당연히 대부분의 일은 내 몫이었다.

잠시 눈을 마주친 국장이 조용히 말했다.

“일단 병가 처리하고, 빠른 인사 때 다시 돌아오세요.”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돌아서며 눈물이 났다.

그가 기억해 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다음 날, 정신건강의학과에 갔다.

심리검사부터 다시 시작했다.

지문을 읽는 도중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코를 풀고, 다시 읽었다.

머릿속에 문장은 들어오지 않았다.

남은 건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하는 자각뿐.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았다.

목소리가 잠겼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조금 더 지켜봅시다.”

진단서는 다음 주에 주겠다고 했다.

약 처방을 받아 나왔는데, 지갑을 두고 온 걸 알게 됐다.

남편이 차로 데리러 왔지만,

나는 그 차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경적 소리에 고개를 돌리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차에 올라 말했다.

“내가 정상은 아니지··· 힘나게 우리 집 보러 가자.”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투자해 두었던 집들이 있는 동네.

2018년, 수많은 불안 속에서 내가 미래를 걸었던 곳.

그 집들은 그 자리 그대로였다.

어떤 건 조금 더 멋져졌고,

어떤 건 그 시절 모습 그대로였다.

아이들이 자라듯, 그 집들도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됐다.


근처 동태찌개 집에 들렀다.

늘 맛있었지만, 한 번은 국물이 썼다.

전세 재계약 날, 세입자의 입금이 지연되던 그날.

식사를 하면서도 입맛에 쓴맛이 돌았다.

그날의 국물 맛은 아직도 기억난다.

오늘은 달았다.

내 마음이 달라서였다.

식당에서 계산을 하려는데 젊은 사장님이 남편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이 계속 사진 찍으시던데···

사모님을 많이 사랑하시네요.

두 분 참 닮았어요. “

우리는 웃으며 식당을 나왔다.


이번 병가는 2년 전과는 다르다.

그때는 절망뿐이었고,

정신과 문을 두드리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는 회복 중이고, 이미 많은 것을 이겨냈다.

공상 승인, 셀프소송 승소,

그리고 지금, 나는 글을 쓰고 있다.

그날, 나를 부르던 딸의 한 마디.

“아··· 슬퍼.”

그 슬픔을 나는 글로 옮기고 있다.

내가 살아 있음을,

그리고 다시 걸어가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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