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시작한 첫 명상 2024년 6월 1일

엉켜버린 마음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시간

by 연담


2024년 6월 1일

그날, 나는 처음으로 '명상'을 했다.

내가 명상을 하기 시작한 이유는 거창하지 않았다. 자아실현도, 영적 성장도 아니었다.

오직 살기 위해서였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히 엄두조차 낼 수 없을 만큼 엉켜있던 내 마음의 실타래가, 드디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몰랐다. 마음을 다치면 인생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을.



막다른 골목에서 만난 선택

아마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살기 위해서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때의 나는 정말로 살아갈 방법을 몰랐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버거웠고, 끝없이 쌓여가는 피로와 스트레스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한 사람으로서의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첫 번째 호흡

명상이라고 하면 뭔가 거창한 것일 줄 알았다.

산속 절에서 하는 것, 혹은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처음 시도한 명상은 단순했다.

그냥 앉아서 숨을 쉬는 것. 그것뿐이었다.

5분도 채 안 되어 마음이 온갖 곳으로 떠돌아다녔다.

'저녁은 뭘 해먹지?', '아이 숙제는 다 했나?', '내일 장사 준비는....'

하지만 그 순간,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떠돌아다니던 마음을 다시 호흡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마음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생존을 위한 선택

누군가에게는 명상이 취미일 수도, 자기 계발의 수단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명상은 생존의 기술이었다.

매일 쌓여가는 감정의 쓰레기들을 치워내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 무게에 짓눌려 완전히 무너질 것 같았다.

마음의 근육도 몸의 근육처럼 단련해야 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작은 시작 [나의 마음의 숲을 가꾸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매일 5분씩 명상을 시작했다.

때로는 3분도 채 못하고 포기하는 날도 있었다. 때로는 명상을 한다면서 그냥 잠들어버리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조금씩이라도 나는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었으니까.

지금 돌이켜보면, 그날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쉬어가라, 인생에서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예민할 때 말이 많아진다는 것을. 그럴 때일수록 나에게 속삭인다.

"쉬어가라, 인생에서 쉬어가라."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잠시 움츠려도 괜찮다고. 덜어내고 비워내야 비로소 쉬어갈 수 있다고.

우리 마음속에는 세 가지 마음이 공존한다.

하고 싶어 하는 마음

하기 싫어하는 마음

그냥 하는 마음 (중도심)


나는 오늘도 내 욕심을 덜어낸다.

내가 원하는 바를 덜어낸다.

덜어내니 비워지고, 비워지니 다시 행복으로 채워진다.

이것이 진정한 지복이다. 흔들리지 않는 행복감이다.



마음도 빨래를 해야 한다

매일 양치질을 하듯, 마음도 매일 빨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사에 스스로가 어떤 마음을 내고 있는지, 하루에 1분이라도 나를 되돌아봐야 한다.

아침에 마음을 내고, 잠들기 전에 되돌아보는 것. 이런 과정을 거쳐야 마음공부가 제대로 된다.

나는 하루 중 단 1분이라도 내 자신을 되돌아본다.

나는 하루 중 단 1분이라도 내 자신을 되돌아본다.

나는 하루 중 단 1분이라도 내 자신을 되돌아본다.



침묵이 주는 선물

'모든 종교의 기본은 침묵이다'라는 말이 있다.

예민한 것은 말로, 행동으로 표현된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보면 예민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지만 도가 무르익으면 침묵이 커진다.

놀라운 것은 침묵이 커질수록 나만 마음이 편해지는 게 아니라 가족도 편안해진다는 것이다.

예민한 이유는 집착과 욕심, 바람이 많기 때문이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아 치료받지 않고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나를 고치지 않고 주변 환경 탓만 한다.

하지만 이제 안다.

괴로움과 외로움은 그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낸 것임을.



괴로움은 내가 만든 인과

괴로움은 내가 만들어낸 인과다.

괴로움은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 형성되는 것이다.

예민함, 욕심, 집착, 핑계, 어리석은 마음들이 모여 괴로움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마음의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본다. 천천히, 조급해하지 않고.






끌어당김의 무서운 법칙

평생을 서로 탓하며 불행하게 살아가는 내 부모를 보며, 나는 미리 알고 있었다.

내 불행도 그렇게 시작될 거라는 걸.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부모님의 모습을 지켜봤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탓했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탓했다.

그들의 하루는 언제나 누군가의 잘못을 찾는 것으로 시작해서, 서로를 원망하는 것으로 끝났다.

세월이 흘러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일상에 치이다 보니... 어느새 나도 똑같은 말들을 하고 있었다.


끌어당김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우리가 생각하고 믿는 것들이 현실로 나타난다는 것.

그런데 그 법칙이 불행에도 적용될 줄이야.

나는 평생 불행한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

무의식 중에 '결혼생활은 원래 이런 거야', '부부는 서로 싸우며 사는 거야'라고 학습했던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그런 현실을 만들어냈다.


새로운 끌어당김

이제 나는 다른 것을 끌어당기고 싶다.

서로 탓하는 대신 서로 이해하려 하는 관계.

불평하는 대신 감사하는 마음. 원망하는 대신 용서하는 마음.

쉽지 않다. 수십 년간 몸에 밴 패턴을 바꾸는 것은 정말 어렵다.

오늘은 어떤 마음으로 가족을 대했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엄마도 살 권리가 있다

명상을 시작하고 나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엄마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것. 엄마도 평온할 권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도 살 권리가 있다는 것.

누군가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다.

나를 돌보는 것도 사랑이다. 나를 살리는 것도 사랑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명상한다. 살기 위해서.

오늘도 5분간의 생존 시간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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