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H의 Junior Internship의 기록(3)
미국은 11월 초, 빠르게는 10월 말부터 크리스마스를 위한 연말 쇼핑 시즌이 시작한다. 그 절정에 있는 것이 바로 추수감사절 다음 날인 금요일에 있는 ‘black friday sale’. 이메일함이 광고 메일들로 터져나가던 2021년 연말, 학교에서 재미있는 이메일을 받았다.
이 메일은 학교에서 우리 학교 관련자들이 운영하는 업체 리스트를 정리하여 보낸 것이다. 이왕 쇼핑을 할 거면 우리 학교 학부모가 하는 업체들을 이용하자는 차원에서 보낸 것일 터.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미국은 사립과 공립학교 모두 학부모의 기부금에 상당 부분 의존하다 보니 기부금 모금 행사가 자주 있다. 사립이야 그럴 수 있다 치지만, 공립학교도 학부모들이 얼마나 기부를 하느냐에 따라 예체능 수업이 달라지고, 도서관에 비치되는 책들의 수준이 달라진다. 그래서 사립, 공립 할 것 없이 일 년에 최소한 한 번씩은 도네이션 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이는데, 우리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어떤 업체가 있는지 한 번 볼까? 이왕이면 학부모들끼리 서로 도우면 좋지!
호기심에 이 이메일 링크를 열었다. 이 링크는 다음과 같다.
https://sites.google.com/hightechhigh.org/internshipendersession/business-directory
업체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여느 광고와는 다른 점을 발견했다.
이 메일링 리스트에서 광고하는 비즈니스 업체가 어느 학교와 관련이 있는지, 같은 학교 부모들에게 어떤 특혜를 줄 수 있는지만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학생 인턴십을 받을 수 있는 곳은 그 여부도 함께 공개한다. 다시 말하면 이 메일링 리스트는 광고이면서 학생 인턴십 풀 중 하나인 것이다.
이 메일 리스트에는 음식점, 부동산, 여행사, 요가 학원 같은 리테일 업체뿐만 아니라 전문 떼라피스트, 법률 사무소, 웹 개발자, 헤드 헌터 같은 전문 서비스 업체들도 있었고, 한부모 가정 지원 커뮤니티, 소아암 치료에 교통편을 제공하는 비영리 단체 등 다양한 업체들이 포진되어 있었다. 이 디렉토리를 통해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학부모들은 고객을 확보할 수 있고, 고객이 될 학부모는 약간의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나아가 학교 입장에서는 학생 인턴십뿐 만 아니라 학교에서 수행하는 각종 프로젝트, 멘토링을 할 수 있는 인력풀을 확보한다! 이것이야 말로 학교 운영 철학을 서포트함과 동시에 HTH 커뮤니티가 서로 상생하는 최고의 방법이 아닌가?
Our families are involved in small business, large companies, schools, universities, non profits, restaurants, retail, hotels, research, bio tech, finance and much more. We would love to support our families in business and create partnerships for our students through projects, supplies, internships, mentorship and more.
우리 HTH 패밀리들은 소상공 업체, 대기업, 학교, 대학, 비영리 단체, 음식점, 소매업, 호텔업, 연구직, 바이오산업, 재무 등 많은 곳에 포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비즈니스라는 측면에서 학생 및 임직원 가족들을 지원하고, 프로젝트, 이에 필요한 용품, 인턴십과 멘토십 등을 통해 우리 학생들을 위한 파트너십을 창조하고자 합니다.
다음 주부터 우리 아들은 인턴십을 시작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오늘, 우리가 진심으로 인턴십 하기를 바랐던 샌디에고의 Metropolitan Transportation System에서 인턴십을 하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MTS에서 하는 일들을 두루두루 경험하게 될 것 같다. 우리 아들이 고기능성 자폐 학생임에도 차별받지 않고 이런 기회를 갖게 된 것은 우리 아이의 특수성도 개인적인 특성 중 하나로 보는 교육 철학을 가진 학교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게다.
나는 이 블로그를 통해 특수 학생인 우리 아이가 인턴십을 찾는 과정을 올렸고, 단순한 요식행위가 아닌 학생의 미래 직업을 결정하는데 도움을 주는 고등학생 인턴십이 되려면 내 아이의 인턴십은 학부모가 아닌 학교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이미 주장한 바 있다. 이 시리즈의 세 번째로 오늘 올리는 이 글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고등학생 인턴십을 하는 데 있어 학부모의 역할은 따로 있고, 이 또한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 학년에 100명이 채 안 되는 하이텍 고등학교 세 개가 포인트 로마 캠퍼스에 있다. 중간에 들어오는 학생들도 있지만, 크지 않은 커뮤니티라 학부모들은 서로의 아이들을 잘 알고 있으니 역량이 충분하다 싶거나 기회를 주고 싶은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인맥을 동원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학교가 '작은 학교'를 지향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의 인턴십 구하는 것이 영 진도가 안 나가서 답답했던 나는 친구 엄마들에게 이 상황을 하소연했다. 그중 우리 아들과 제일 친한 친구의 아빠가 군인 출신인데, 그분이 자기 동료 중 Airbus의 AS 서비스 센터 부문장을 한다며 그를 통해 인턴십이 가능한지 알아봐 주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무산되었지만 이 분을 통해 이 직종에서 근무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지금은 에어버스 입사가 불가능한 도전처럼 느껴지지만, 언젠가 우리 아이가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다면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런 희망이 오늘 하루를 더욱 의미 있게 만든다.
이렇게 우리 아이를 위해 신경 써 주는 부모의 아이, 다시 말해 우리 아들의 친구는 한 번 더 눈여겨보게 된다. 마침 이 친구가 엔지니어링에 관심이 있다고는 하는데 인턴십이 마땅치 않은 눈치였다. 남미 계열이라 엔지니어링 쪽에 인맥이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그래서 그 친구 엄마랑 커피를 마시며 혹시 이 친구가 관심이 있다면 일개미씨에게 연락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엄마에게 넌지시 언지를 주었다. 나는 이런 경우 부모가 아니라 반드시 본인이 직접 연락하라고 전한다. 내 경험상 학생 본인이 내켜 직접 컨택해야 그 인턴십은 성공적으로 끝날 확률이 높았다. 미국 아이들은 본인이 내키지 않는 일은 죽어도 안 하기 때문. 그랬더니 그 친구가 얼마 전 일개미씨와 식사하는 자리에서 남편 회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엔지니어링 필드에서는 어떤 능력이 요구되는지 물어보며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다. 우리 회사 인턴십에 관심이 있으면 레쥬메를 보내라는 일개미씨 말에 다음날 당장 본인의 레쥬메를 보낸 것은 물론이다.
고등학교 인턴십을 진행하는 데 있어 학교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학교가 다양한 역량의 학생들을 모두 커버할 수는 없다. 그 빈 곳을 메꾸는 역할을 학부모들이 해야 한다. 이렇게 비즈니스 디렉토리를 통해 할 수도 있고, 개별적으로 서로 갖지 않은 것을 품앗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학부모도 학생들의 성장을 위해 함께 길을 만들어 가는 중요한 주체이므로 적극적으로 여기에 동참해야 한다.
'내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위해 학교와 학부모가 함께 만들어 가는 길, 이보다 더 멋진 일이 있을까.
이것이 바로 PBL의 핵심이다.
2022년 2월 9일
E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