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ya의 ‘나의 선생님’ (4)
진단명이 붙기 전, 우리 부부가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바로 '아이를 잘 못 키운 부모'라는 죄책감이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좌절하고, 아이와 씨름하고, 울고, 집안이 난장판이 되지만, 이 점은 아이 키우는 다른 집도 그렇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는 큰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이 집 밖에서 부모 말을 안 듣고 뗑깡 부리고 화를 내는 일이나, 다른 아이를 때리기도 하고 못 어울리기도 하지만, 다른 아이들도 그렇다. 역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문제는 이 정도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수준을 벗어나면 그 비난은 온전히 부모에게 돌아온다.
도대체 집에서 애를 어떻게 키우는 거야!
아무리 육아서를 들여다보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해도, 답을 찾을 수 없는 우리 아들 같은 아이들이 있다. 육아서를 참고해 아무리 아이를 훈육하려고 해도 번번이 실패를 반복한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나름 열심히 해결책을 찾으려고 이런저런 자료들을 찾아보며 동분서주해도 우리는 '아이를 제대로 훈육하지 못한 부모'이고 '애를 이 상태로 방치한 무책임한 부모'라는 시선 비난을 받는다. 잘 모르는 이들에게 이런 시선을 받으면 화를 내고, 가까운 이들에게 이런 시선을 받으면 좌절한다. 이런 과정이 3년 넘게 계속되다 보니 우리에겐 자존심이고 뭐고 따질 겨를이 없었다. 그만큼 절박했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여러 임상 양상 중 하나입니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다른 아이들처럼, 비정상적인 사회적 상호작용 및 제한되고 반복적인 행동 문제를 보입니다. 행동이나 관심 분야, 활동 분야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대인 관계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인지 발달 및 언어 발달이 상대적으로 적게 지연되어 늦게 발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래보다는 어른과 어울리거나 홀로 지내는 것을 선호합니다. 경직된 사고방식과 타인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성향이 합쳐져 오해를 사고, 이로 인해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울 아산병원 질환백과에서 발췌
아스퍼거 신드롬(증후군).
의학적으로 지금은 더 이상 쓰이지 않는 병명이다. 대신 High Functioned Autism, 즉 고기능성 자폐로 진단이 내려지며, 발달 장애인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Autistic Spectrum Disorder)의 일부에 속한다. 개인에 따라 자폐의 양상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중증에서 고기능성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다. 우리 아이가 가지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관심 범위가 한정적이다: 자동차나 비행기, 기차 등 교통수단, 음식, 레고, 퍼즐 등
2. 공간 인지 기능이 뛰어나다.
3. 단순한 숫자 조합을 암기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4. 의미 있는 사건을 날짜, 시간 등 숫자로 기억한다.
5. 익숙한 놀이의 단순 반복을 좋아한다. 반대로 새로운 것을 접하면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6. 눈치가 없다. 즉, 타인의 감정을 읽어내는데 서투르다. 예외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사람들(가족, 선생님)의 표정 변화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7. 낯선 이들과 교류하는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거부감이 없어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예) 노숙자들이 말을 걸어도 경계하지 않음.
8. 글은 읽으나 의미 해석(독해)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 특징들 중, 일부는 고전적 의미에서의 자폐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사회성이 바로 그랬다. 우리 아들은 눈치가 없어서 지속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는 것에 서툴렀다. 그러나 처음 보는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아주 잘 어울린다. 이런 측면이 타인과의 관계 맺음에 있어 폐쇄성을 가장 주요한 특징으로 하는 고전적 자폐로 진단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자폐' 대신 '아스퍼거 신드롬'으로 진단을 내렸다.
아스퍼거 신드롬.
학교에서 붙여준 이 진단명은 어떤 면에서 우리에겐 일종의 면죄부와 같았다.
이 아이는 틀린 아이가 아니야. 다른 아이들과 다른 뿐. 이것은 너희 잘못이 아니야.
우리는 완벽한 부모가 아니다.
진단명이 붙기 전에도 아니었고, 우리 아이에게 어떤 종류의 문제가 있는지 알고 나 후에도 아니었으며, 심지어 지금도 아니다. 아이를 키우며 계속 공부를 하며 더 나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하지만 진단명이 붙기 전에 우리는 '잘못된 부모'였다. 이 점은 진단받고 난 이후에도 큰 차이가 없긴 했다. '아이를 저렇게 키우면 안 되는 부모'로 오랫동안 또래 부모들에게 외면당했다. 그들은 그런 의도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느꼈다. 그래서 숨었다.
비록 의학적인 소견은 아니었지만 교육적으로 아스퍼거 신드롬이라는 진단이 나옴으로써, 우리 아이가 일반 아이들과는 다르며, 다른 방식으로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사실이 전문가들에 의해 입증되었다. 이제 우리는 떳떳했다. 우리 아이는 틀린 게 아니고, 다른 것이다!
(참고로 학교에서 아스퍼거 신드롬으로 진단이 나왔다고 전하니, 담당 소아과 전문의는 ADHD라는 진단을 추가했다)
진단명을 우리에게 알려주던 그날을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어두컴컴한 교무실 한 귀퉁이, 라운드 테이블을 놓고 앉은 예닐곱 명의 사람들, 어두운 표정으로 온갖 부정적인 관찰 결과를 알려주던 선생님들의 목소리, 그저 듣고만 있어야만 했던 우리 부부. 미팅하는 동안에도 교무실 구석에 비치된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며 놀던 우리 아이들..
그날 미팅의 결과는 최악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가족이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탈출할 수 있는 디딤돌 하나를 놓은 날이다.
이날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스퍼거 신드롬은 학교 밖에서는 특수아로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없는 진단명이란다. (참고로 아스퍼거가 ASD로 포함이 된 이후부터 우리는 우리가 속한 지역 리저널 센터에서 아이를 돌보느라 지친 엄마가 쉴 수 있도록 대신 아이를 봐주는 아이 돌봄 서비스인 Respite Service를 받고 있다. 우리 아이가 미취학이라면 현재 학교에서 받고 있는 언어치료, 작업치료도 리저널 센터를 통해 무상으로 받을 수 있다. 뒤늦게나마 응용 행동 분석(ABA: Applied Behavior Analysis)으로 행동 교정을 하는 서비스도 받았었다)
리저널 센터에서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우리가 매달릴 곳은 학교 밖에 없었다.
일단 아이가 수업에 집중을 못하니 옆에서 도움을 줄 Aide가 제일 절실했다. 학교에서는 우리에게 기다려보라며 저학년 때는 고학년 아이들에게 에이드가 우선적으로 배치되어야 하고, 3학년이 되니 이젠 저학년 아이들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많아 우리 아이까지 차례가 가지 않는다고 변명했다. 아이가 학습적인 측면에서는 일반아들과 큰 차이가 없고, 특정 분야에서는 남다르게 뛰어난 부분이 있으니 에이드의 도움을 받으면 효과가 클 것이라고 설득했지만, 학교에서는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 학교 예산을 감안해 볼 때 불가능한 요청이었다.
우리 학교는 외국 학생을 부모로 둔 아이들이 많아서 영어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 아들이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용인이 되었다. 영어를 못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다른 아이들을 때리고 무는 것은 큰 문제였다. 이런 일은 발생할 때마다 사고 일지로 나에게 통보되었고, 그때마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집에서 이런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주의를 시키겠다는 말을 반복해야만 했다.
문제는 교우 관계였다. 특히 저학년 아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인간관계를 맺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상대를 배제하기도 한다. 툭하면 때리는 우리 아들은 당연히 배제 대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아이는 자의적으로 스스로를 왕따 시키면서도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고자 하는 욕구도 무척 강했다. 선생님은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사이좋게 노는 법을 가르쳐야 했다.
그때 Ms.Jenny Rayle은 일부러 우리 아이에게 권위를 심어주었다. Mrs. Rayle은 우리 아들의 첫 번째 ‘나의 선생님’이다. 사이좋게 놀라고 말로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함께 놀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선생님이 시도한 것이 바로 Lunch Bunch 프로그램이다.
2022년 3월 13일
E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