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CHO Sep 24. 2024

비엔나에서 황홀했던 그날의 추억

세 번째 목적지, 비엔나, 오스트리아에서 (2)

Hilton Vienna Waterfront 호텔은 '힐튼'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실망스러웠지만, 다뉴브 강만큼은 아름다웠다. 직접 건너가 본 것은 아니지만 눈으로 가늠해 보건대 한강 정도의 너비는 충분히 되는 것 같았다. 파리의 세느 강이나 런던의 템즈강은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강이다. 호야가 깊이 자서 나 혼자 호텔 라운지로 올라가 해 지는 다뉴브강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사진 찍기에 마땅한 구도가 나오지 않아 못 찍은 것이 지금도 참 아쉽다. 차라리 걷자 싶어 강변으로 내려왔는데, 이 또한 모기들이 극성이라 5분 정도 산책한 후 눈물을 머금고 후퇴.

다뉴브 강가에서

조식당도 다뉴브 강을 즐기기에 좋은 강변에 위치해 있었다. 다만 강가에 앉으면 모기에게 물어 뜯길 것은 좀 각오해야 한다. 에바 항공 유니폼을 입은 승무원들이 식사를 하는 것으로 보아, 이 호텔이 에바 항공 승무원 숙소로 쓰이는 것 같았다. 이 분들은 나처럼 호텔에서 한밤중에 벌레와 만나는 일이 없기를.



오늘은 우리가 비엔나를 관광하려고 하루를 온종일 비워둔 날이다. 호야가 컨디션이 안 좋았지만, 그나마 어제 사온 100% 오렌지 주스로 비타민 C 충전을 하더니 나갈 만하단다. 약한 감기에 100% 비타민C가 얼마나 효과적인지 두 번째로 확인.

냉방이 전혀 안 되는 트램은 호야마자도 오랫동안 타기가 어려웠다.

링슈트라세 투어를 할 요량으로 호텔에서 나와 전철을 탔다. Schottenring U에서 1번 트램이나 2번 트램을 타고 한 바퀴를 돌며 천천히 링슈트라세 투어를 즐기고 싶었는데, 이런! 트램 안은 에어컨이 없고 완전 찜통이었다. 트램을 너무너무 사랑하지만, 더위를 많이 타는 호야에게 링 슈트라세 투어는 무리였다.

우리는 마리아 테레지아 플라츠에서 내렸다. 호야도 저 트램을 타느니 차라리 걷겠다며 흔쾌히 내리자는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트램을 타는 대신 이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을 시작으로, 호프부르그 Hofburg를 지나 로스하우스 Looshous까지 천천히 산책했다.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과 미술사 박물관. 여기에 클림트가 그린 벽화도 있고, 유명한 회화도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데.. 이번엔 눈물을 머금고 스킵
호프부르그 스케치


비엔나는 역시 비엔나였다.

과거에 합스부르그 왕가가 통치했던 지역들이 모두 독립해 과거의 영광으로만 남은 비엔나지만 옛 제국의 수도답게 화려했고 섬세하고, 조화로웠다. 파리와는 느낌이 또 달랐다.

그래서 루스하우스가 더 보고 싶었다. 당시로서는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 간 건축가 아돌프 루스가 지은 이 건물은 황제의 코 앞인 호프부르그 궁의 미카엘 광장 맞은편에 지어졌다. 장식을 배제하고 실용성을 강조해 모던한 현대 건축의 시작으로 알려진 루스 하우스를 당시에는 못생겼다고 지탄을 받았고, 황제는 이 건물을 피해 출입했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건축물'로서 제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는 이 건물이 어떻게 주변과 어우러져 있을지 승효상 건축가의 책, <건축, 사유의 기호>에서 처음 접할 때부터 궁금했었는데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안타깝게도 공사 중이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공사중인 루스하우스. 그리고 호야가 고른 식당 Restaunant beim Hofmeister

호야가 완벽한 컨디션이 아니라 오래 걷는 것도 무리였다. 그래서 이 부근에서 점심으로 슈니첼을 먹기로 하고, 음식점은 호야보고 고르라고 했다. 호야가 골라 찾아간 곳은 전형적인 관광객용 음식점이었지만, 그래도 호야가 직접 고른 곳이니만큼 불평하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우리는 벨베데르 상궁으로 가 미술 작품을 보기로 했다.

파리나 런던처럼 규모가 크지 않으니 호야가 미술 작품을 즐기기에 적당한 규모라 판단했다. 미술관에 입장해 작품 해설을 해 주는 오디오 투어 기계를 5유로를 주고 2개 빌려 하나는 영어로 세팅해 호야 손에 쥐어주었다. 이 기계를 작동법을 가르쳐주려고 처음에는 같이 서서 작품 해설을 듣다가, 호야는 호야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 원하는 미술 작품 앞에서 해설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했다. 호야는 이 오디오 기기를 들고 다니면서 설명도 듣고, 사진도 찍으며 나름의 방식으로 미술 작품들을 감상했다. 이 또한 그전에는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미술관에서 호야의 태도였다. 두 번째 새로운 시도도 성공!

호야가 인상깊다고 꼽은 리하르트 게슬의 <웃고 있는 자화상>과 고흐의 <The Plain of Auvers> 웃고 있는 리하르트 게술은 그 해 2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자살하였다.
나는 클림트의 풍경화들이 너무 좋았다. 그가 이렇게 청록색을 잘 쓰는 화가인 줄 처음 알았다. 크릶트의 <키스>는 매혹적이었으나 에곤 쉴레의 작품에서 온 충격이 더 컸다.
나폴레옹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나폴레옹의 초상화. 나는 역시 그림보다는 조각이 더 좋다. 섬세한 내부 장식은 이 미술관을 관람하는 또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이 소식을 듣고 미국에 있는 남편은 뛸 듯이 기뻐했다.

그림 보는 것이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로 여기기보다는 호야의 방식대로 즐기기를 오래전부터 바랬던 우리 부부는 어릴 때부터 어느 도시를 가든 박물관에 데리고 다녔다. 미국의 도시 어디를 가든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 박물관]이 있었고, 일반 박물관에도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이 있었다. 간간히 샌디에고 미술관이나 게티 미술관 등에 아이를 데리고 갔지만 매번 지겹다며 빨리 나가자는 성화에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8학년 때, Fine Art 수업 시간에 그린 그림으로 미술 선생님께서 동네 창고 공간을 빌려 미술 전시회를 열어 학생들의 작품을 팔았다. 그때 아무도 안 살 것이라 예상했었던 호야의 MTS 버스 그림을 지역 방송국 기자가 50불에 사 갔다. 선생님을 통해 작품 대금을 받은 호야는 상당히 뿌듯해했는데, 그때부터였다. 호야가 미술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던 것이.


그 해 2018년 연말, 우리 가족은 첫 장거리 여행을 뉴욕으로 갔고,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을 방문했다.

2018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방문 당시 호야가 해석했던 그림들.

당시 Hilma Af Klint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미술관에서 호야는 보이는 것들을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했는데, 그 방식이 독특하고 재미있었다. 구겐하임 박물관의 지붕은 멜론 꼭지로 비유했다. 맨 왼쪽 그림은 '해와 계곡', 가운데 그림은 '선물 상자', 가장 왼쪽 그림은 미국의 유명 슈퍼 체인 'Target'이라 이름 붙였다. 나와 남편은 이렇게 호야가 미술 작품에 새로운 이름을 붙일 때마다 호야의 기발함과 엉뚱함에 깔깔 웃으며 호응해 주었다. 아마 이것이 보이는 사물을 호야의 방식으로 재정의한 최초의 사례가 아니었던가 싶다. 호야는 그전까지 사물을 다른 것으로 '비유'해 표현한 적이 없었다.


그 후도 LA의 The Broad 등 미술관에도 갔었고 틈 날 때마다 발보아 공원의 여러 미술관과 박물관을 데리고 다녔다. 그러던 중 2022년에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에 갈 기회가 있었다. 마침 전시 주제가 <Motion>이었다. 호야는 다양한 전시물들을 즐겼지만, 여전히 그림 앞에서는 피곤하다며 앉아있었다. 그랬던 아이가 지루해하지 않고 그림을 즐겼다는 것은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동안 우리가 여행 다니며 아이에게 보여준 것, 그리고 학교에서 배운 것, 이 모든 것들이 더디지만 호야가 진전할 수 있는 중요한 밑거름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부모로서 우리 부부가 참 자랑스럽다. 그리고 호야가 이렇게 의미 있는 성장을 보여준 곳이 바로 이곳, 비엔나라는 점에서 이곳은 우리 가족에게는 아주 황홀한 곳으로 기억될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