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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CHO Sep 20. 2024

비엔나 다뉴브 강변에서 겪은 악몽 같았던 이틀

세 번째 목적지, 비엔나

밤 비행기여서 그랬을까. 11시간의 비행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예상 도착 시간인 8시 반보다 거의 한 시간 빨리 비엔나에 도착했다.

정작 입국장에서 입국 심사관이 까다롭게 나왔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들어오는 비행기라서 그런 것이었는지, 입국 심사관은 우리가 어느 호텔에서 묵는지, 다음 여정 티켓은 가지고 있는지 물어보고 직접 실물까지 확인했다. 미리 여정표를 프린트해 두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많이 당황할 뻔했다.

비엔나 공항 도착 인증샷. 오른쪽 사진 저머에 우리가 타고 온 에바 항공의 동체가 보인다.

호야에게 호텔 주소를 주고 공항에서 호텔까지 가는 기차 편을 알아보라고 시켰다. 그 사이에 나는 어떤 티켓을 사야 할지 찾아보았는데 공항 열차가 포함된 2일권을 인당 22유로에 살 수 있었다. 이 티켓으로 이틀 동안 본전 치기는 하겠다는 마음으로 2장 구입!

서서히 아들과 나의 역할이 분담이 된다. 호야가 할 수 있는 일들, 내가 믿고 맡길 수 있는 일들이 조금씩 늘어난다는 의미이다. 이 또한 놀라운 발전이다.  

비엔나 공항에서 호텔 가는 7 S-bahn 기다리는 중. 가장 왼쪽은 비엔나에서 쓸 수 있는 2일짜리 티켓


케밥으로 유럽 일정 시작!

비엔나 공항역에서 S-bahn 7을 타고 Pretestern 역에서 U2로 갈아타면 된다. 기차는 무척 깨끗했고 시설도 좋았다.

우리가 예약한 호텔은 Hilton Vienna Waterfront. 체크인 시간은 3시였다. 가서 얼리 체크인을 도전해 보겠지만 거절될 수 있으니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했다. 마침 호야가 배가 고프다고 해서 Pretestern 환승역 안에 있는 케밥집에서 일단 아점을 먹였다. 역시 유럽에서는 제일 만만한 게 케밥이다. 하하


케밥집에서 나와 시간을 뭘로 때워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아뿔싸. 오늘은 7월 14일 일요일이다. 역사에 문 연 상점보다 열지 않은 곳이 더 많았다. 혹시 인근에 문을 열지 않아 필요한 물건이나 식품들을 못 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뭘 사두어야 하나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그러고 보니 호야가 자꾸 재채기를 한다. 곧 감기가 올 거라는 신호다. 감기차랑 그 슈퍼에서 짜주는 100% 오렌지 주스를 사 들고 서둘러 U2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힐튼 비엔나 워터프런트

내가 이 호텔을 선택한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에 영감을 준 도나우/다뉴브 강변에서 아들과 함께 보내는 이틀.

이 얼마나 특별한 경험인가.

지금은 그만두었지만, 한때 호야도 바이올린을 했었기에 클래식 음악과 아주 거리가 있는 아이는 아니다. 여기에서 함께 음악도 들으며 아들과 함께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다뉴브 강의 석양(왼쪽)과 일출. 음악책에서만 본 곳에 내가 와 있다니!

나는 힐튼 다이아몬드 회원이라 라운지 액세스가 가능한데, 이 호텔은 라운지가 있는 곳이다. 해피아워에 간단한 요기도 할 수 있으니 11시간 넘게 비행하고 날아온 우리가 다음 날을 비엔나 시내에서 보내기 위한 휴식을 가지기엔 최고의 호텔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나의 기대는 무참하게 박살 났다.


호텔에서는 다행히 얼리 체크인을 해 주었다. 내가 원했던 6층방은 아직 준비가 안 되었고, 3층방은 준비가 되었으니 여기를 원하면 얼리 체크인이 가능하단다. 우리 둘 다 거의 이틀을 눕지 못했기 때문에 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 그들이 제공한 얼리 체크인 옵션을 덥석 물었다.


문제는 이 방이 새 손님을 맞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이전 투숙객이 마시고 난 물병은 반만 채워진 채 새 물병으로 교체되어 있지 않았고, 침대 위에는 정체 모를 갈색 털뭉치가 발견되었다. 욕실에는 대용량으로 비치된 샴푸와 로션, 샤워젤과 수건은 있었지만, 가운과 슬리퍼도 없었다. 이것이 비엔나에서 첫인상이라니.. 너무 속상했지만 내려가서 따질 힘도 없었다. 일단 대강 정리 후 한숨 자고 5시쯤 프런트로 내려갔다.

나이 어린 직원은 저녁을 먹다 입에 든 음식을 삼키지도 못하고 뛰어나왔다. 그런 모습이 안쓰러워 방 상태에 대해 강하게 따지지도 못하고, 방에 구비되어 있어야 하는데 없는 물건 리스트를 말해주었다. 특히나 가운은 손님들이 들고 가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내가 가져간 걸로 그들이 오해할까 싶어 따로 리마인드를 했다. 새 병물도 직원 시켜 가져다준다고 했으나 너희들 바쁜 거 같으니 내가 가져가겠다고 말하고는 물건을 들고 올라왔다. 방을 교체해 달라 할까 잠시 생각도 했었으나, 이들이 일처리 하는 속도를 보아하니 한참 걸릴 것 같아 그냥 넘기기로 헸다. 사실 그래서 호텔방 집기들도 내가 가지고 올라온 이유도 바로 이거였다. 무엇보다 감기기운이 있는 호야가 아직도 방에서 자고 있었다. 호야도 좀 더 쉬어야 했다.


정작 문제는 다음날인 15일에 터졌다.

호야랑 비엔나 다운타운을 하루 종일 걷고 호텔로 돌아왔다. 내일 프랑스 파리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일찌감찌 여기서 출발해야 했기에 짐을 싸 놓고 일찍 잠이 들었다. 어제와 달랐던 점이 있다면 숙면이 취해야 해서 불을 모두 끄고 잤다는 거다.


한 새벽 1시쯤 되었을까..

느낌이 이상해서 일어났다. 오른쪽 귓가에 뭔가가 꼬물대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손이 귓가로 간 순간...

.

.

.

꺅!!!!!!!!


벌레였다.

깜깜해서 보이진 않았지만 손으로 만져 본 크기와 느낌으로 짐작하건대 이건 틀림없는 바퀴벌레였다!


호야도 깜짝 놀라 일어나 무슨 일이냐며 불을 켰다. 내가 벌레라고 하니 호야도 깜짝 놀라 벌레가 어딨냐며 마구 침대 주변을 뒤져댔다.

예전에 집에서 죽은 쥐가 나온 적이 있었다. 비명을 지르는 것도 잠깐, 남편도 집에 없는데 이 쥐를 어떻게 처치할지가 문제였는데, 그때도 호야는 놀란 나를 진정시키고 침착하게 죽은 쥐가 들어있었던 컨테이너와 함께 이 쥐를 처리해 준 적이 있다. 그 후로는 엄마가 하지 못하는 일을 자기가 처리한 것이 자랑스러웠는지 종종 나에게 이 죽은 쥐 이야기를 하며 놀린다. 이 날도 어김없이 호야는 벌레가 사라졌으니 엄마도 진정하라며 나를 달랜다. 의젓하게 말이다.


이 여행을 준비하면서 사실 스트레스를 참 많이 받았다. 모든 것을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말도 못 했다. 그런데 막상 길을 떠나보니, 아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작년 봄에는 딸이랑 둘이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때랑은 다른 매력이 있었다. 일단 든든하다. 남편만큼은 아니지만, 아들이 주는 든든함이 분명 있다. 무거운 짐도 본인이 들겠다고 하고, 몸 쓰는 일은 호야가 다 전담해 주었다. 밤늦게 들어와도 옆에 아들이 있어서 무섭지 않았다.

아이가 자폐 성향이 있어도 역시 아들은 아들이구나.

내가 울 아들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곳이다. 나에게 있어 비엔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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