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CHO Sep 25. 2024

VIE-CDG OS415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2시간

파리로 가는 오스트리아 항공 기내에서

Dear Eva Air, Austria Airlines, and Brussel Airlines Team,  

I hope this message finds you well.
My name is ECho and I am writing to you regarding a special request for my son, Hoya Cho, 19 years old who is a huge aviation enthusiast.  Hyoungho has high functioning autism, and his passion for airplanes brings him immense joy and comfort. That’s why I prepared for Round The World program of Star Alliance and we are doing it..(중략)

We are planning a trip with BR, OS, and SN and I was wondering if it would be possible to arrange a unique experience for him. Whether it be a brief visit to the cockpit, a meet-and-greet with the pilots, or even a small behind-the-scenes tour, I am certain it would mean the world to him.

I understand that operational constraints and safety regulations may limit what can be arranged, but any gesture, no matter how small, would be greatly appreciated.

Thank you very much for considering this request. We look forward to flying with Eva Air, Austria Airlines, and Brussel Airlines, and making this trip an unforgettable experience for Hoya

Warm regards,
ECho

태국에서 비엔나로 출발 전, 나는 앞으로 이용하게 될 유럽 항공사들에게 이 이메일을 우리 아들의 진단서를 첨부하여 보냈다. 아시아의 항공사보다 유럽 항공사가 이런 면에서 좀 더 유연한 태도를 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보낸 메일이었으나 항공사들의 대답은 하나같이 실망스러웠다.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것이었다. 어느 항공사는 아예 답장조차 없었다. 처음부터 거절 가능성을 높게 보고 보낸 메일이었기에 그러려니 했다.


2024년 7월 16일,

여느 때와 같이 짐을 챙겨 공항에서 체크인을 했다. 여기도 셀프 체크인 기계만 있었고, 호야는 신이 나서 수하물을 부쳤다. 그리고는 여느 때와 같이 라운지에 들러 간단하게 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보딩 시작. 파리까지 2시간밖에 안 되는 단거리 노선이라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버스를 타고 OS415편 주기장까지 가서 계단차를 타고 항공기에 탑승했다.

비엔나 공항 오스트리아 항공 비즈니스 라운지 스케치
비엔나 공항 출발 인증 샷(왼쪽)과 탑승 대기 중

 

탑승 직전

여느 때와 같이 탑승을 하자 승무원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먼저 올라간 호야도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는 우리 좌석 자리를 말해주었다. 그러자 갑자기 승무원의 눈이 동그래지더니, "Are you Hoya? How are you?"라며 아는 척을 하신다.

호야가 깜짝 놀라 "엇! 나를 어떻게 아세요?"라고 물으니, 승무원은 "그게야 네가 유명하니까 알고 있지!"라고 말씀하시며 나에게 윙크를 건네신다!


그녀의 윙크를 보는 순간 깨달았다.

아.. 내가 보낸 이메일에 오스트리아 항공이 이렇게 나에게 답장을 주는구나!


승무원은 호야에게 계속 말씀을 하셨다.

"네가 항공기를 좋아한다면서? A320도 좋아하니? 그렇다면 Cockpit에 들어가 볼래? 오늘 이 비행기를 몰 기장님과 인사도 할 수 있어"

그러시더니 호야를 데리고 기장실로 데리고 가시는 거다! 기장님께서는 호야와 인사를 하며 반갑게 악수해 주셨다. 그러고는 이내 이륙 준비를 하시느라 다시 조종석에 앉으셨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부랴부랴 전화기를 꺼냈지만 이미 기장님을 자리에 다시 앉은 후였다. A320 조종석은 간신히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크기로 상당히 작았다. 부기장님은 계속 무전으로 무엇인가를 보고 중이셨는데, 기장님께 사진을 찍어야 하니 다시 일어나 달라 하기엔 너무 경우가 아니었다. 게다가 너무 작아 각도도 마땅하게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하는 마음에 조종석 앞에서 호야의 기념사진을 찍었다.


OS415편 A320 기장실 앞에서

호야도 예상치 못한 이 이벤트에 정신이 없었는지 어리바리했다. 잔뜩 흥분을 하거나 신나 하는 것도 없이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게다가 곧 이 비행기가 출발할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기장석에 초대되는데도 빨리 자리에 가 앉아야 한다며 기장석에서 금방 나와 지정된 좌석에 앉았다.


이 날 이 비행에는 비즈니스 석이 따로 없이 이코노미 좌석을 옆 좌석을 비운 채로 좌석이 배치되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3-3-3열로 배치된 좌석에 가운데 좌석 하나씩 비워 비즈니스석 승객을 앉혔으니, 승객 1인 당 이코노미석 1.5자리를 차지한 것과 같았다.  

비행이 시작되자 승무원들은 오스트리아 항공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작은 기념품을 '파리에서 즐거운 여행을 하길 바란다'는 메모와 함께 주셨다. 그리고 기내식을 서빙할 때에도 특별히 호야의 기내식에는 호야의 이름을 써서 함께 주셨다. 몸이 좋지 않아 라운지에서도 계속 잤던 호야가 기내에서 뜨거운 차를 주문했더니, 원래 서빙되는 작은 찻잔 말고 큰 컵에 가져다주는 게 낫겠다며 머그에 차를 담아 내오는 등, 이 날의 서비스는 정말이지 호야에게 특별했다. 그쯤 되어서야 정신을 차린 호야가 "당신은 정말 친절하네요!"라는 찬사와 함께 성함을 물었다. 이 분이 처음 호야를 알아보신 승무원이 이 날의 수석 승무원인 안젤라 승무원님인데, 호야는 이 분에게 나중에 파리에 도착하면 함께 사진 찍어 줄 수 있는지 물었고, 승무원님은 흔쾌히 그러겠노라 약속하셨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우리가 탄 비행기가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내렸다. 사진이 찍고 싶어 마음이 급했던 호야가 비행기가 아직 택싱 중인데도 승무원님께 다가가자, 승무원님께서는 "이왕 찍는 거 재킷까지 입고 예쁘게 찍자. 근데 호야, 너 비행기 문 여는 거 본 적 있니? 없다면 내가 보여줄까?"라고 말씀하시며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셨다. 비행기가 완전히 멈춰 서자 비행기 문을 여시고, 제일 먼저 내린 호야와 함께 이렇게 사진 포즈도 취해 주셨다.

OS415편 파리 도착 후 비행기 문을 여는 안젤라 승무원님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발달장애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이 말은 바꿔 말하면 어떻게 배려해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의미인데, 발달 장애인의 엄마로 바라는 것은 사실 특별 대우가 아니다. 공공의 안전이나 타인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발달 장애인들이 원하는 것이나 원하지 않는 것을 존중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이런 나의 대답에 대해 혹자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이 장애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우리가 어떻게 아느냐고.


맞다. 잘 모른다면 오스트리아 항공 승무원들이 해 준 것처럼 이렇게 '이름'을 불러주면 된다. 

내가 한 것처럼 '발달장애인이지만 비행기 덕후인 우리 아이에게 당신들이 일하는 데 있어 크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일반인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좀 더 경험하게 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여건이 허락하는 선에서 부탁을 들어주면 되는 것이다. 설령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 조종석 공개를 못 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승무원들이 해 준 것처럼 이렇게 이름을 불러주고, 알아봐 주고, 눈 한 번 더 맞춰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누구에게나 다 전달되는 기내식, 그리고 어린이 손님들이 심심할까 봐 시간 보내기 용으로 기내에서 주는 저 액티비티팩이 뭐가 특별하겠는가. 너무나 평범한 기내식과 어린이 손님용 선물에  아들 이름이 쓰인 쪽지나 메모 하나가 더해짐으로써 이 기내식과 액티비티 팩은 '호야를 위한 것'이 되는 특별한 것이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이렇게 당신을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가 우리에게 충분히 전달되었다. 나는 그런 그들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 감사하고 고맙다.


이 날 파리까지 가는 2시간, 호야의 꿈이 이루어졌다.

이들이 선사한 이 날의 경험은 아마 나나 호야 둘 다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것 같다. 

앞으로 유럽 갈 때는 무조건 오스트리아 항공만 타겠다! 

이전 14화 비엔나에서 황홀했던 그날의 추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