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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CHO Sep 28. 2024

호야, 파리에 가다. ABBA와 함께

네 번째 목적지, 파리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는 사람은 없다는 그 도시, 파리.

나도 2015년에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남편과 함께 온 이후로 두 번째로 오는 파리였다.

2015년의 파리가 너무 좋아서 돌아온 것일까? 아니다. 그땐 파리가 너무 지저분해서 크게 실망했다. 그 당시 남편 딴에는 큰맘 먹고 데리고 온 파리였는데 내가 그다지 파리를 좋아하지 않아 남편이 서운해할 정도였다.

내가 파리를 온 이유는 에어버스 공장이 있는 툴루즈를 가기 위해서였다. 엄밀하게 말하면 파리는 목적지가 아닌 경유지였다. 그래서 파리에 있는 시간도 길게 잡지 않았다. 호야와 나에게 파리에서 허락된 시간은 단 하루. 간신히 24시간이 조금 넘는다. 그마저도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하는 시간과 시내에서 툴루즈행 기차를 타러 몽파르나스 역으로 가는 시간을 빼고 나면 관광할 시간은 얼마 되지도 않는 셈.

게다가 호야는 계속 몸이 좋지 않았다. 자꾸 누우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타이레놀을 먹이고 호텔에서 쉬게 하고 나 혼자 호텔을 나섰다. 딸이 나에게 준 미션이 있었다. 에펠탑 전구쇼 사진을 직접 보고 동영상으로 찍어달라는 것이었다. 해가 져야 전구쇼가 시작하는데, 그러려면 10시 넘어야 했다. 전구쇼까지 못 찍더라도 그럴싸한 에펠탑 사진 하나 정도는 찍어 보내고 싶었다. 호텔 컨시어지에 가서 물어보니, 라파옛트 백화점 옥상 식당가가 개중 가장 높은 곳에서 에펠탑을 찍을 수 있단다. 산책 겸 우리가 묵은 Hotel du Louvre에서 라파옛트 백화점까지 걸었다.


라파예트 백화점 옥상 식당가에서 찍은 에펠탑 사진. 라운지가 8시에 문을 닫아서 아쉽게 라운지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2015년의 파리와는 달리 올림픽이 2주일 정도밖에 안 남은 이 시점에 파리는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그 덕에 그때는 보지 못했던 파리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났다. 2015년에 내가 봤던 파리는 진주이긴 했어도 흙 속에 처박혀 있는 진주였다. 진주에 묻은 흙이랑 줄줄 흐르는 땟구정물을 완전히 벗겨내고 나니 원래의 은은한 매력이 100% 드러났다. 도로 중간중간 펜스가 쳐져 통행을 제한했으나, 관광객들도 많지 않아 오히려 파리를 즐기기에 더 좋았다.

관광객도 얼마 없고, 집시들이나 홈리스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오페라 거리라니! 이 거리를 걷는 지금 이 순간이 정말이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나 혼자만 즐길 수는 없었다. 호텔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기어이 호야를 끌고 루브르 박물관 주변을 산책했다. 잠자는 시간조차도 아까워서 늦게까지 걷고 또 걸었다. 이제야 파리를 제대로 보게 된 나. 파리에서 시간을 너무 짧게 잡은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이 날 호야와 함께 한 루브르 박물관 주변 산책은 정말 눈물 나게 아름다웠다.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걸으면서 나는 속으로 기도했다. 이 아름다운 곳에 다음에 호야가 올 때는 내가 아닌 여자친구, 혹은 와이프랑 함께 올 수 있게 해 달라고.

우리가 묵은 Hotel Du Louvre 스케치. 위치가 너무 좋아서 교통 체증이 심한 파리에서 걸어다니기에 너무 좋다.메트로폴리탄 여행에는 무조건 위치 좋은 호텔이 최고다!

 

우리 부부의 추억이 서린 루브르 박물관 주변 스케치. 호야가 서 있는 저 카페, 남편과 2015년에 왔을 때 하루 종일 루브르에서 그림 보고 나와 다리 쉼을 했던 곳이다.


생 오노레 거리 밤중 산책 중. 호야는 컨디션이 안 좋았지만 이 산책엔 따라나서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너무 아룸다운 야경 속 아들과 나. 오랫동안 못 잊을 순간이다.



파리에 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호야의 첫 반응은 바로 이거였다;

엄마, 그럼 노트르담 성당도 가나요?


엥?? 갑자기 왜 뜬금없이 노트르담??

호야에게 물었지만 호야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 후로도 계속 호야는 파리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노트르담'에 가는지 계속 물었다. 약간 집착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호야랑 같이 차를 타고 가는데, 여느 때와 같이 호야가 유튜브로 듣고 싶은 노래를 골라 틀었다. 그것은 바로 ABBA의 'Our Last Summer'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g-qF3GuAozw

... I can still recall our last summer
I still see it all
Walks along the Seine, laughing in the rain
Our last summer
Memories that remain
We made our way along the river
And we sat down in the grass
By the Eiffel tower..
I can still recall our last summer
I still see it all
In the tourist jam, round the Notre Dame
Our last summer
Walking hand in hand
Paris restaurants
Our last summer
Morning croissants
Living for the day, worries far away
Our last summer
We could laugh and play..


아이고, 이 노래 또 트는구나!

똑같은 노래를 반복해 듣는 호야의 자폐적 성향 때문에 이 노래라면 진절머리가 난 터다. 억지로 함께 듣고 있는데, 갑자기 이 노랫말이 귀에 들어온다!


I can still recall our last summer
I still see it all
In the tourist jam, round the Notre Dame
Our last summer, Walking hand in hand


파리를 즐기는 방법은 아마 수백, 수천 가지가 넘을 것이다. 그중 호야가 파리를 즐기는 방식은 바로 이것이었다.

한 여름밤, ABBA의 연인들처럼 파리를 즐기는 것.

호야가 말을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서 이 분이 말하는 의미를 내가 짐작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중, '이렇게 창의적일 때가!' 감탄이 나오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이번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호야는 자신의 머릿속에 각인된 이 노래 속의 장소를 우리의 여행과 연결을 시킨 것이다!

뒤늦게서야 호야의 말을 알아들은 나는 파리에서 샹젤리제 거리를 걷고, 세느 강변을 산책하고, 에펠탑 옆 풀밭에 앉아보고, 노트르담 성당 주변을 손잡고 걷고, 파리의 레스토랑에서 아침으로 크루아상을 먹고.. 이 모든 것을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결국 시간적인 한계 때문에 샹젤리제는 걸어보지는 못하고, 대신 차 타고 지나가야 했고, 노트르담 성당은 시간에 쫓겨 택시 타고 갔는데, 파리의 어마어마한 교통 체증과 우버 기사의 어리바리함 때문에 결국 길에서 시간을 다 써버려 결국 되돌아왔다. 이런 현실적인 한계에 있긴 했지만, 우리는 나름 의미 있고 즐겁게 파리를 즐겼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서둘러 루브르 박물관 쪽으로 방향을 잡아 산책을 했다. 그러다가 튈르리 정원 쪽으로 나가다가 예상치 못하게 에릭 케제르의 노점을 발견해 여기서 호야랑 아침을 먹었다. 우리는 샌드위치와 당연히, 모닝 크루아상을 시켰다. 그리고는 세느 강을 따라 걸으며 오르세 미술관, 팔레스 부르봉, 알렉산더 3세 다리를 지났다. 우리의 목적지는 에펠 타워였다.

루브르 박물관 아침 산책
Morning Croissants - 호야랑 함께 한 "ABBA" 프로젝트


튈르리 정원에서 국회의사당, 그리고 알렉산드르 3세 다리까지 세느강 산책


중간중간 길이 막혀있어 계속 강변을 따라 걷기가 어려웠기에 골목길로 갔다. 가다가 호야가 직감적으로 찍은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화장실도 쓸 겸.. 파리에서도 피자와 파스타를 먹어야 하다니! 딴 소리지만 파리 몽파르나스 기차역에서 저녁으로 먹은 것은 호야는 빅맥, 나는 시간에 쫓겨 간신히 사들고 들어간 차가운 초밥이었다! 먹는 것으로만 본다면 이번 파리 여행은 실망스러웠다. 엉엉

파리에서의 한 끼는 피자와 파스타로(왼쪽), 저녁은 호야는 빅맥을, 나는 시간이 촉박해 간신히 초밥(왼쪽)로 때웠다. 파리의 맥날에서 마카롱(가운데)이라도 먹어볼껄!

그럼에도 이 날 호야와 루브르에서 에펠탑까지 걸어간 것은 최고로 잘한 일이었다. 에펠탑은 골목길 사이로 예고도 없이, 어느 순간 짠!! 하고 나타났다! 그때의 감격과 흥분은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갑툭튀 에펠탑(위)과 we sat down in the grassBy the Eiffel tower (아래/왼쪽)

호야랑 에펠탑 옆 잔디밭에 앉아 잠시 다리 쉼을 했다.  

호야는 에펠탑이 너~~~무 너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에펠탑 부근에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곳으로 가 보더니 저 탑에 올라가는 투어가 있고, 자기도 해 보고 싶단다. 이렇게 무엇인가를 스스로 알아보고 해 보고 싶다는 의욕을 보이면 보통은 들어주는데, 그러기엔 줄이 너무 길었다. 다음에 파리에 오면 미리 에펠탑 투어도 예약하고, 이번에 못 간 노트르담 성당도 가는 걸로 아들이랑 약속했다. 에펠탑 투어 입구에 눌어선 어마어마한 줄을 본 호야는 그렇게 하자며 다음을 기약했다. 하지만 많이 아쉬웠던지 계속 에펠탑 주변에서 사진을 찍었다.


에펠탑을 보고 호텔로 돌아가려고 메트로 쪽으로 내가 조금 앞서서 걷던 중이었다. 갑자기 뒤쪽에서 "No! No!!"라는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 아들 목소리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호야 쪽으로 달려갔다. 한 여자가 호야의 옷을 붙잡고 따라오고 있었다. 내가 갔는데도 이 사람은 호야의 옷을 놓지 않았다. 나는 호야의 반대쪽 손을 잡고는 강하게 내 쪽으로 잡아당기며 큰 소리로 "NO! Don't touch him!"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내 기세에 놀라 그랬는지, 내가 호야를 강하게 잡아당겨 그런 건지, 이 여자가 얼떨결에 잡고 있던 옷을 놓았다. 나는 호야를 빠른 걸음으로 끌고 인파 속으로 갔다. 다행히 이 사람은 더 따라오지는 않았다.

한참 걷다가 호야한테 괜찮냐고 물었다.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자기는 괜찮단다. 이 여자가 뭘 노린 건가 싶어 아이를 찬찬히 살펴보니 청바지 앞주머니가 불룩했다. 그곳에는 호야의 지갑이 들어 있었다. 독일 브란델부르크 문 앞에서도 사인해 달라며 어떤 여자가 따라붙더니, 여기서도 어리숙해 보이는 우리 아들의 지갑이 타깃이었구나.


나: "호야, 아까 그 여자가 네 지갑을 빼가려고 널 잡았던 거 같아. 네가 그 여자랑 말을 섞지 않고 엄마 쪽으로 온 건 정말 잘 한 행동이야."
호야: "엄마, 내가 따라오지 말라고 하는데도 나를 놔주지도 않고 계속 나를 따라와서 무서웠어요. 근데 내가 그 사람을 밀어도 되는 건가요?:
나: (질문에서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호야가 이 여자를 밀고 싶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호야, 그러면 저 여자는 일부러 더 심하게 넘어질 거고, '너 때문에 내가 다쳤으니 병원비 내놓으라'라고 할 수도 있어. 네가 분명 저 여자보다 힘이 센데, 폭력을 쓰지 않고 말로만 싫다고 표현한 거는 정말 잘한 거야. 진짜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잘했다."
호야: (으쓱해하며) "엄마가 나쁜 사람들도 많고, 함부로 이런 곳에서 다른 사람이랑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말이 떠올라서 엄마 말대로 했어요"

홈리스 한 두 명도 아니고, 텐트를 치고 도로를 점거한 곳에 호야가 주니어 인턴십을 했던 MTS 본부가 있었다. 어느 날, 한 홈리스가 호야에게 와 돈 달라며 구걸을 했고 호야도 지갑을 꺼내 돈을 주려고 했단다. 다행히 옆에 선생님이 계셔서 아이를 말려 돈을 주는 상황까지 번지지는 않았다. 호야의 이런 행동이 나에게 위해가 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설령 구분을 했어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해 달라는 대로 해 주려던 것일 수도 있다. 호야가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와는 상관없이 둘 다 적절한 행동은 아니다. 선생님과 우리 부부는 이후 이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그동안 1. '위해가 되는 사람'을 구분하고, 2. 적절하게 행동할 것, 즉 해를 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과는 스몰톡을 하고 -스몰톡이 일상화된 곳이 미국이라 무조건적으로 타인과 말을 안 할 수도 없다- 해를 끼칠 것 같은 사람이면 대꾸하지 말고 딴 데를 보거나 자리를 피하라고 가르쳐 왔다. 이 '선량한 타인'과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타인'을 구분하는 것이 호야에게는 쉬운 일은 아니었는데, 몇 번의 불미스러운 일들을 통해 아이가 깨우치긴 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 '몇 번의 사고'에 대해서도 글을 쓰겠다)


하마터면 소매치기를 당할 뻔했지만, 호야는 위험한 상황에서 자기가 적절하게 대처했다는 것에 대해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또 하나의 자부심 포인트를 여기서 쌓은 것이다. 여러모로 호야에겐 잊지 못할 곳이다. 파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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