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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인물C May 28. 2021

1. 텐센트 소개: 마화텅 그리고 큐큐(QQ) 메신저

시작은 미약했고 지금은 창대한데 끝은 어떠할지?

먼저 알리바바그룹에 대해서 그들의 태생인 전자상거래와 그로부터 파생된 물류, 금융 플랫폼 및 기타 혁신 산업으로 발전해서 중국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제 살펴볼 텐센트(腾讯, Tencent), 중국 비즈니즈 무림계의 태산북두 중 한 축을 맡고 있는 만큼 결코 알리바바에서 비해서 밀리지 않는다.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발전 방향이 전체적으로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또 실행 방법에 있어서는 또 매우 다르다. 그것은 최고 경영자 스타일과 각 기업의 태생적 환경에 따른 차이일 것이다.


알리바바가 전자상거래로 시작했다면, 텐센트는 PC 메신저로 시작해서 그 안에서 다양한 게임, 뉴스, 음악 등의 각종 엔터테인먼트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수익을 창출했고 아주 시의적절한 시기에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인 위챗을 출시하면서 전 중국인들의 스마트폰의 필수 어플로 등극했다.


PC 시절에 모든 서비스를 다 스스로 제공하려고 했던 것과 달리 모바일로 넘어오면서 문호를 개방해서 각종 서비스의 플랫폼이 되었다.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메신저와 SNS 기능을 비롯한 캐시카우인 게임, 동영상, 음악, 소설 등의 각종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지분 투자를 통한 전자상거래 플랫폼, 생활에 필요한 각종 O2O 사업, 알리바바 신유통에 대항하는 스마트 유통 서비스, 여기에 알리바바에 버금가는 핀테크 사업과 클라우드, AI 등의 신규 사업까지 손이 미치지 않는 분야가 별로 없을 정도로 광범위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다.


텐센트는 웨이신(微信, 위챗, wechat 혹은 큐큐, QQ)으로 시작해서 웨이신으로 끝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텐센트 대부분 사업의 구심점에는 웨이신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에서 텐센트를 '중국판 카카오톡'이라고 소개하는 경우가 많은데, 직관적인 설명으로는 이만한 설명이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보기에 지금 텐센트가 자신을 그렇게 부른다고 생각하면 좀 피식할 거 같다.


왜 그런지는 텐센트 편을 대충 읽어보고 나면 이해가 될 것이다.


 비록 몸이 해외에 나와있어서 국뽕에 거하게 취하고 싶을 때가 많고 예전에는 실제로 그랬던  같은데, 점점 한국의 위상이 확실히 전같 않다는 것을 느낄 뿐만 아니라 진짜 자꾸  볼일 없는 나라가 되어 가는  같아서 마음이 무척 좋지 않다.


주모!!!!!


빨리 다시 한번, 주모 여기 국뽕 한 사발 추가!

라고 외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랄 뿐..




ㅇ 텐센트의 큐큐 시절


텐센트는 1998년 11월 설립되어 1999년 2월 큐큐(QQ)라는 PC용 메신저 서비스를 시작으로 성장한 IT 회사다. 지금은 너무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지만 그들의 태생적 DNA를 파악하기 위해선 반드시 QQ 메신저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 초반에 태동한 대부분의 1세대 중국 IT기업이 그러하듯 해외의 유명한 서비스를 베껴서 가져오는 카피캣으로 시작했다.


창업자 마화텅(马化腾)은 1971년생으로 광둥성 출신으로 텐센트를 중국 최고의 기업으로 만든 지금도 굳이 먼저 나설 필요 없고 잘하는 게 있으면 효율적으로 재창조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즉, 마화텅은 퍼스트 무버(first mover)보다는 패스트 팔로워(fast fallower) 전략을 천성적으로 좋아한다. 그리고 실제로 마윈에 비해서 공식석상이나 언론에 나오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한다. 은둔의 경영자라는 말도 있을 정도다.


텐센트의 창업자 마화텅, 본사가 선전에 있어서 선전마(深圳马)라고도 불린다. 마윈은 항주마.


사실 무언가를 새롭게 만드는 일은 너무 어렵고 힘(돈)도 많이 들지만 그것을 응용해서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드는 것은 훨씬 수월하긴 하다. 성공만 할 수 있다면 모방 전략도 훌륭한 전략이다. 실제로 텐센트는 모방으로 시작해서 모방에 자신만의 양념을 쳐서 오리지널보다 더 뛰어난 것을 만드는 데에는 정말 도가 튼 기업이다.


텐센트가 중국으로 처음 가져온 것은 이스라엘의 미라빌리스라는 회사가 개발한 ICQ(I Seek you 너를 찾는다는 뜻)라는 메신저였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 AOL(American Online)에 인수되면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많이 사용됐다. 텐센트는 자신들이 개발한 메신저의 이름을 OICQ라고 지었다.


아무 생각없이 지은듯 보이는 QQ 이름의 유래


원래 ICQ 앞에다가 'Open'을 붙여서 나름대로 이름의 차별점(?)을 두었지만 이렇게 누가 봐도 베껴왔다는 느낌으로 지을 필요는 1g도 없었을 텐데 무슨 생각인진 참 알 수 없다. 당시에 ICQ가 중국에서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어서 후광 효과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비록 별생각 없이 이름은 거의 그대로 가져왔지만 여러 가지 개선점은 있었다.


우선 원조 ICQ는 채팅 기록이 로컬 컴퓨터에 저장되는 시스템이었으나 대부분 당시 중국 접속자들은 대부분 본인 소유 컴퓨터가 없이 PC 카페(PC방)이나 회사에서 사용했으므로 예전의 메시지와 친구 목록을 다시 볼 수 없는 불편함을 겪었다.


따라서 이를 중국 실정에 맞게 중앙 서버에 저장해서 사용자 경험을 크게 개선하는 등 지속적인 사용자 친화적 행보를 보였다. 이렇게 출시 2개월인 1999년 4월에 20만 명, 출시 9개월인 10월에 100만 명, 출시 첫해 말에는 130만 명을 달성해 메신저 시장 점유율 80%을 차지했다.


그리고 2년 만에 4,000만 명을 돌파하여 중국 국민 메신저로 거듭났다. 당연히 예상되는 것처럼 미국 ICQ의 모회사인 AOL에서 대한 상표권 침해를 중단하라는 요구를 받고 지금의 이름인 QQ로 메신저 서비스 이름을 변경한다. 이는 텐센트의 메인 캐릭터인 펭귄을 상징으로 하는 귀여운 이미지의 Cute Cute이라는 뜻도 된다. 이제야 입에도 잘 붙고 의미도 좋다. 참고로 텅쉰의 영어 이름인 텐센트는 문자 메시지 1통에 10센트 정도라는 사실에 착안해서 지었다고 한다.


당연히 중국 발음인 텅쉰과 이름도 비슷해야 하고, 원래 메시징 서비스로 출발한 의미도 반영하고 또 한 편으로 우리 회사는 고작 '땡전 한 닢'이라는 느낌으로 겸손함과 재미도 갖추고 기억도 하기도 좋아서 상당히 좋은 네이밍이라고 생각하는데 OICQ 작명은 비몽사몽 자다가 갑자기 넷째 발가락으로로 끄적거리면서 지은 듯하다.


약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중국, 아니 글로벌 IT 거인이 된 텐센트를 보면서, 자신들의 메인 서비스 명칭 같은 중요한 일도 별 생각 결정했던 시절이 있었구나 하면서 놀라게 된다. 현존 최절정의 무림 고수의 비리비리 하수 시절 이야기다.


2001년에는 많은 회원을 무기로 중국 통신사인 차이나 모바일에게 협력을 제안하여 큐큐 사용자와 차이나 모바일 핸드폰 가입자 간의 단문메시지(SMS) 교환이 가능하도록 제휴를 맺었다. 결과적으로 2001년 3월 동안 큐큐를 통해서 3,000만 건의 메시지가 전송되었고 1건당 0.1위안을 과금했다. 차이나모바일과 텐센트는 이를 15:85를 나눠서 텐센트는 처음으로 그 해 처음으로 흑자를 냈다. 그러나 이게 수익이 난다는 것을 깨달은 차이나 모바일에서는 추후에 스스로 SMS 기능을 개발하고 텐센트와 제휴를 일방적으로 종료한다.


내 밥 그릇 어디갔어? 개무룩..


그 외에는 뾰족한 비즈니스 모델이 없던 텐센트는 이 조치에 상당한 내상을 입었다. 이 쓰디쓴 교훈에서 남의 고객은 결코 내 고객이 아니며, 내 고객은 자신만의 서비스로 확실히 붙잡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이 어찌 보면  QQ 운영 시절에 모든 서비스를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다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의 시작일 수도 있겠다는 추측이 된다.


교훈은 교훈이고, 텐센트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가입자 수의 수많은 데이터를 감당하기 위한 서버 증설 및 관리 자금, 서비스 기능 개선과 개발을 위한 인건비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일반적인 투자자 물색은 물론이고 텐센트가 입주해 있던 건물주한테까지도 지속적으로 투자하라고 권유할 지경이었으니 자금 압박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다가 알리바바 마윈이 창업 초기 소프트뱅크의 손정의를 만났듯, 텐센트는 남아공 최대의 미디어 그룹인 내스퍼스(Naspers)의 CEO 쿠스 베커를 만난다.


마화텅에 투자한 쿠스 베커(Naspers) 킹갓울트라 엠퍼러급 잭팟입니다.

 

당시 내스퍼스는 중국 인터넷 기업에 투자하기 위해서 피씨 카페(피시방)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사를 하면 중국 전역 어디서나 OICQ를 쓰고 있었고, 명함에 전화번호와 함께 OICQ ID를 적어놓는 점이 아주 인상 깊었다고 전한다.


따라서 쿠스 베커는 텐센트의 잠재성장력에 주목하여 2001년도에 약 3,000만 달러를 투자해서 거의 절반에 가까운 46.5%의 지분을 인수한다. 그 이후 다른 투자자 유입으로 30%대로 지분율은 줄었지만 그 물량을 대부분 아직까지 가지고 있다.


창업자인 마화텅의 지분이 10%도 안되므로 무려 그에 3배 이상을 갖고 있는 셈이지만 경영권 전반의 간섭을 하지 않고 있다. 지금 텐센트의 시가총액은 2020년 기준 약 5.5조 홍콩달러(한화 750조 원) 정도 나간다. 무려 수 천 배의 수익률에 달하는 잭팟을 터뜨린 셈이다.


비록 2001년도 텐센트는 내스퍼스의 투자로 숨통이 트였지만 자체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없다면 어차피 조만간 투자금은 바닥 날 터, 이 자금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고민하던 중 2002년 경 텐센트는 한국의 싸이월드에 주목했다.


지금은 이미 사망선고를 받았다가 다시 부활했니 마니 하는 완전히 한물 간 듯 한 추억의 이름이지만 싸이월드 역시 1999년 전후로 설립 후 2001년 미니홈피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경쟁사인 프리챌의 유료화 전환으로 맛이 가면서 썰물처럼 빠진 고객층을 흡수했다. 그 후로 사용자가 폭증하면서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흥하기 시작했던 한국의 토종 SNS 서비스다.


싸이월드 하면 미니홈피고, 미니홈피 하면 도토리다. 싸이월드 세계관에서 친구 개념인 '일촌'의 미니홈피를 한 번씩 쭈욱 돌아다니고 나면(이 행위가 '파도타기'다) 하루 일과를 다한 듯 뿌듯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 때 그 시절 싸이월드, 한 장 요약 (영원히 곶통받는 채연의 눈물셀카)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미니홈피에 자신의 아바타와 룸, 스킨 꾸미기 그리고 배경 음악 등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싸이월드 세계의 온라인 화폐인 도토리가 필요했으므로 사람들은 한 10일쯤 굶은 다람쥐 마냥 도토리를 사재끼기 시작했다. 그 도토리 판매가 바로 싸이월드의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당시 한국의 싸이월드 열풍은 중국을 비롯한 여러 해외 국가까지 알려질 정도로 대단했으며, 당시 10대~30대 중에서 싸이월드를 안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싸이월드 총 가입자수가 3,000만 명이 넘었으니 굳이 더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전 국민을 ‘싸이질’에 빠져들게 만든 그런 한국 토종 SNS의 황금 시절이었다.


잘만 됐으면 2004년에서야 설립된 페이스북 뺨을 여러 차례 후려치고 적어도 한국 시장에서는 뿌리를 못 내리게 할 수 있었는데, 싸이월드는 생각날 때마다 무척 아쉬움이 많이 드는 서비스다.


2003년 1월 텐센트는 이 싸이월드의 아바타 꾸미기용 도토리 비즈니스 모델을 가져가서 QQ 메신저에  QQ쇼(QQshow, QQ秀)를 론칭한다. 중국이나 한국이나 사람 본성이라는 게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보여주기와 체면치레를 중시하는 중국 문화에서는 자신을 대표하는 아타바를 꾸미기 위해서 많은 캐시 아이템을 구매했다. 아바타의 패션(옷) 꾸미기 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품을 비롯해서 남들에게 선물도 살 수 있게 끔 만들어졌다.


큐큐 쇼의 기본 아바타


스티브 잡스가 신제품 발표 시마다 주야장천 외쳐대던 원모싱(one more thing)에 세계가 열광했다면, 마화텅은 조용히 뒤에서 자신들의 서비스에다가 지속적인 원모싱을 적용 중이었다. 단순히 예쁜 패션 아이템들만 꾸밀 수 있도록 출시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패션 브랜드와의 공식 콜라보를 진행했다. 즉, 브랜드의 옷을 실제로 사서 입듯 큐큐 사용자의 아바타에 똑같이 입히는 식이었다.


워낙 큐큐의 사용자가 많다 보니 패션 브랜드들도 서로 자신들의 신상품이나 인기 상품들을 큐큐쇼에 입접시키기 위해 많은 광고비를 냈다. (이런 업그레이드는 나중에 초창기가 아닌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던 큐큐쇼에 적용) 결과적으로 출시 6개월 만에 500만 명이 QQ쇼를 이용하고 아이템 구입에 평균적으로 5위안의 현금 결제를 했다.


반년 만에 매출액 2,500만 위안을 달성한 셈이다. 드디어 차이나모바일(中国移动) 같은 통신사에 의지 하지 않고서도 수익 창출을 냈다는 데에서 싸이월드 도토리 벤치마킹 사건은 텐센트 내에서도 일대 큰 전환점으로 여겨진다.


그 외에도 이 QQ쇼의 성공은 텐센트에게 단순 메신저가 보다는 종합 SNS로서의 발전이 필요하고 또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이 연결 본능이 텐센트의 가장 기저에 깔린 태생적 DNA이라고 할 수 있다. 텐센트의 모든 사업에 출발점이자 핵심 역량이 '연결'에 있다는 사실은 텐센트를 공부하고 파면 팔 수록 깊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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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다양하고 자세한 내용은 검색창에

'중국 테크 기업의 모든 것'

찾아보시고 발간된 서적에서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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