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저롱야오(王者荣耀), 동접자 1.5억 명인 게임
2003년 초 큐큐쇼의 성공으로 인한 매출액 증대를 똑똑히 확인한 텐센트는 다른 여러 가지 추가 수익 모델을 찾던 중 당시 게임 산업의 빠른 성장세에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같은 해 게임 산업에 진출해서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게임 산업의 구조를 살펴보면 크게 개발사와 유통사(배급사)로 나뉜다. 영화 산업과 큰 줄기는 같다고 보면 된다. 텐센트도 게임 업계에 진출을 하면서 게임을 자체 개발을 할 것인지 아니면 게임 유통을 할 것인지 사내에서도 논란이 일었다.
일단 마화텅이 내린 결론은 텐센트도 자체 게임 개발이 가능하지만 아무래도 경험이 적은 상황에서는 리스크가 크니, 우선은 해외에서 성공하고 검증받은 유명 게임들을 중국으로 들여와서 유통하는 퍼블리싱 쪽으로 방향을 잡고 진행하되 자체 개발 준비를 병행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되고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이 바로 가까운 한국의 게임 산업이었다.
한국은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미국 블리자드사의 스타크래프트 열풍과 함께 전국에 퍼진 피시방 문화와 e스포츠 흥행으로 젊은 세대의 게임 수용도가 상당히 높았다. 당시에 청소년 사이에선 스타크래프트 온라인 접속 프로그램인 ‘배틀넷' 점수가 학교 시험 성적표보다 더 중요한 지표였고, 임요한과 홍진표 등의 1세대 e스포츠 스타들이 청소년들의 우상인 시절이었다. 그래, 바로 내가 당시 그 청소년이었다. 취미가 온게임넷 시청이었지.
이런 양질의 게임 토양에서 3대 N사인 넷마블, 넥슨, 엔씨소프트 외에도 스마일게이트, 컴투스 등의 한국 토종 게임 회사들이 성장할 수 있었고, 이들은 앞 다투어 새로운 게임들을 개발해서 출시했다.
2003년 텐센트는 우선 텅쉰왕(qq.com 큐큐닷컴)이라는 주로 각 분야별 실시간 뉴스와 엔터테인먼트, 스포츠, 패션 등의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종합 포털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여기에 한 섹션으로 큐큐 게임(qqgame.qq.com)을 개설하고 온라인 게임 서비스를 제공한다. 예전에 네이버 포털에서 같이 제공하던, 지금은 뭔가 맛이 간 한게임 서비스와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큐큐 게임이라는 온라인 게임 플랫폼에서 가장 먼저 배급한 게임이 한국의 3D 온라인 게임인 '세피로스'(한국 게임 개발사 이매직)였다. 2003년 당시 기사를 찾아보면 계약금 60만 달러, 로열티 30% 조건으로 수출 계약을 맺었고 기사 말미에는 텐센트는 세피로스를 통해 게임 사업에 첫 발을 내딛게 된 만큼 텐센트 회원들을 바탕으로 전폭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칠 것이라고 되어있다. 지금 텐센트 게임의 위상과 게임 관련 억도 아닌 조(兆) 단위의 매출액 규모를 생각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지금의 메인 사이트는 큐큐 게임은 아니고 텐센트 게임(腾讯游戏)이다. http://game.qq.com/
그 이후에도 큐큐/텐센트 게임에서 대 히트를 친 한국 게임으로는
-스마일게이트의 '크로스파이어',
-넥슨의 '던전 앤 파이터' '피파온라인'
-엔씨소프트의 '블레이드앤소울' 등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크래프톤(구 블루홀)의 '배틀그라운드'도 중국 게임 시장에서 크게 성공했다.
이들은 모두 텐센트 큐큐 메신저와 큐큐/텐센트 게임이라는 플랫폼으로 중국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큰 매출을 올렸다.
2008년 이후에는 한국 게임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잘 나가는 게임들까지 중국에 들여오기 시작한다. 이와 더불어 지금까지 여러 게임 유통을 통해서 쌓은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국과 글로벌 게임 기업들의 지분을 공격적으로 사들인다. 다만 특징적인 것은 지분을 얼마를 인수하던지 해당 회사의 경영 방식에 대해서는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텐센트에서는 이런 방식을 '소유는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라고 표현한다.
텐센트는 현재 벤처캐피털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수많은 기업들에게 투자를 하고 있는 상황이며, 게임 관련 굵직한 것들만 몇 가지 살펴본다.
2009년부터는 라이엇(Riot) 사의 지분을 야금야금 가져가더니, 2011년에는 50%를 넘어 2015년 결국 지분 100%를 전부 텐센트가 사들인다. 당연히 라이엇의 최대 히트작인 리그오브레전드(League of Legends, 약칭 롤, 중문명: 英雄联盟 )를 중국에 수입 및 유통시킨다.
- 2011년에는 당시 작은 게임사에 불과했던 에픽게임즈의 지분 48%를 취득한 바 있으며, 2018년에는 에픽게임즈에서 개발 및 유통해서 대박을 친 포트나이트(Fortnite, 중문명: 堡垒之夜)를 중국에 배급한다.
- 2013년에는 워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 콜오브듀티 등으로 너무나 유명한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지분을 5% 정도 사드리고,
- 2014년에는 한국 넷마블 5300억을 투자하여 지분 28%로 3대 주주가 된다.
- 2016년에는 클래시 오브 클랜(Clash of Clan, 중문명: 部落冲突)과 클래시 로열(Clash Royale, 중문명: 部落冲突,皇室战争) 등으로 유명한 핀란드의 슈퍼셀(Supercell)까지 약 85%의 지분을 인수해서 최대 주주가 되었다.
이렇게 해외 유명 게임 기업의 지분 확보 및 관련 게임의 중국 유통과 병행하여 텐센트는 원래 하려고 했던 자체 게임 개발에도 박차를 가한다.
사실 박차를 가한다는 표현을 써도 될까 싶을 정도로 텐센트의 초창기 자체 게임 개발 과정을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해외 유명 게임을 들여오는 중국에 유통시키는 건 판권이라도 사서 유통시키는 것이지만 텐센트의 초창기의 자체 개발한 게임은 아예 해외 유명 게임들을 대놓고 카피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2004년 텐센트에서 처음으로 제작한 게임은 큐큐탕( QQtang, QQ堂, qqtang.qq.com)이라는 게임인데, 캐릭터들이 지도 상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폭탄을 설치해놓고 그 폭탄으로 상대방을 제거하는 게임이다. 벌써 출시 17년째인데 2021년 기준으로 여전히 서비스 중에 있다.
이 게임은 텐센트에서 제작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한국 넥슨의 크레이지 아케이드를 카피해서 만든 게임이며, 한국도 딱히 할 말이 없는 건 넥슨 역시 일본 허드슨사의 봄버맨 콘셉트를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물론 조금씩 주요 캐릭터와 게임 설정은 달리해서 가져왔지만 큰 줄기가 같다는 것은 한 번만 플레이해보면 알 수 있다. 또한 큐큐 스피드(QQ飞车, speed.qq.com) 또한 넥슨의 카트라이더를 카피해서 만든 게임이며, 넥슨 역시 닌텐도의 마리오 카트를 참고해서 만들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텐센트는 어차피 카피 해온 것에 대해서 그저 원본보다 더 잘 만들면 될 뿐이라고 생각하며 개의치 않는다. 법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또 모를까 말이다. 2006년 넥슨이 실제로 큐큐탕에 대해서 텐센트의 표절에 대해서 손해를 입었다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별 소득 없이 소송은 마무리된 바 있다.
카피는 했으나 소송 등의 법적 제재는 피해 갔으므로 큐큐탕이나 큐큐 스피드 등으로 자체 개발한 게임 역시 꽤나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게다가 비록 카피를 할지언정 계속 새로운 기능 개발, 업데이트, 게임 및 서버 운영 등에 대한 노하우는 쌓여갔다. 그러나 그렇게 쌓여가는 노하우 속에서도 텐센트의 피 속에 흐르는 복제 DNA가 어디 사라질까? 내가 복제인지 복제가 나인지 구분조차 모호해져 간다.
2015년 11월에는 공전의 히트를 친 왕저롱야오(王者荣耀 왕자영요, Arena Game, 한국명 펜다스톰 https://pvp.qq.com/)라는 게임을 자체 개발해서 유통한다. 그런데 이 게임도 뭔가 익숙하다.
그렇다. 라이엇의 역대급 명작 리그오브레전드, 속칭 롤과 너무 비슷하다. 2015년 11월이면 텐센트가 이미 지분 100%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라이엇의 모회사다.
아무리 '소유하되 간섭하지 않기' 작전이라지만 자회사의 역대급 히트 게임을 이렇게 거의 완전히 베끼듯이 가져와서 중국에다가 유통을 시키고 매출액 1위까지 차지하는 텐센트의 모습을 보면서 역시 돈 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다는 걸 느낀다. 물론 라이엇 입장에서도 좀 어이가 없었겠지만 모회사가 그렇게 하겠다는데 당연히 어떠한 법적 제재나 움직임 없이 받아들였다.
그렇게 왕저롱야오는 2016년에 서서히 중국 시장에서 무르익어가더니 급기야 2017년에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모바일 게임이 되었다. 이 왕저롱야오가 얼마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지 한국에서도 일부 젊은이들이 피시방에서 며칠 동안 안 자고 게임하다가 급사하는 일이 발생했듯 중국에서도 왕저롱야오를 즐기다가 죽은 사람이 상당수 나왔다.
따라서 중국 인민일보에서도 이에 대한 비판기사를 내고 중국 정부도 이 게임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텐센트의 주가 폭락하는(당시 약 17조 원 증발) 상황이 나타난다.
그러자 2017년 7월 2일 텐센트 측에서 게임시간 제한령을 내려서 7월 4일부터 12세 이하 미성년자는 매일 1시간 이하 접속, 9시 이후 로그인 금지, 12세 이상의 미성년자는 2시간 이하 접속 시간 초과자는 강제 로그아웃하는 조치를 취한다.
이런 셀프 셧다운에 추가로 실명제 인증까지 더해서 미성년자 여부를 확인하는 더 강력한 조치까지 취한다. 성인들도 10시간 이상 플레이하면 15분 동안 강제로 로그아웃이 되는 기능까지 만들 정도였으니 그 인기가 대단할 따름이다.
코로나 19 전에도 동시접속자 수가 6~7,000만 명 정도였는데, 코로나 19로 인한 집콕 시간 장기화로 최대 1.5억 명이 2020년 춘절 기간에 접속한 것으로 나왔다.
월간 사용자도 아니고, 연간 사용자도 아니고 동접자 수가 1.5억 명, 한국 인구 3배.
이렇게 텐센트는 글로벌 유명 게임 유통 및 자체 개발 게임 두 가지 영역에서 모두 압도적 성공 신화를 썼다.
지금 중국에서는 텐센트는 모바일 게임 점유율 50% 이상으로 2위인 넷이즈(网易, 왕이) 15.8%의 3배 이상의 압도적 시장 지배자이며, 글로벌로 범위를 넓혀도 이미 전 세계 1위의 게임 개발사 및 유통사가 되었다.
텐센트의 전략 자체도 좋았고 실행 방식도 좋았겠지만 어쨌든 큐큐 게임의 성공은 또 큐큐 메신저를 떨어뜨리고 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다.
이미 대부분 중국사람들은 큐큐 아이디를 가지고 있었으며 큐큐 게임에서 제공하는 모든 온라인 게임은 추가적인 어떠한 절차도 없이 큐큐 메신저에서 로그인한 상태라면 바로 실행이 가능했다. 큐큐 아이디를 눌러보면 이 사용자가 큐큐 내에서 몇 가지 게임을 했고, 세계 등수가 얼마고 최근에 한 게임이 무엇인지 등의 정보를 볼 수 있다. 거의 큐큐 아이디 하나만 있으면 앵간한 게임은 프리패스를 가졌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다.
결국은 큐큐로 흥해서 큐큐를 무기로 게임 분야까지 안착, 아니 안착 정도가 아니라 글로벌 게임업계를 평정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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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다양하고 자세한 내용은 검색창에
'중국 테크 기업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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