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인물C May 26. 2021

2. 알리바바의 반人반神 마윈

마윈과 전자상거래가 촉발한 Innovative China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알리바바의 창업자인 마윈은 1964년생으로 저장성 항저우 출신이다. 알리바바는 중국의 인터넷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고 더불어 그는 전설이 되었고 알리바바 내부에서는 거의 '神'급의 반열에 올라있다.


마윈 젊은 시절, 나름 각진(?) 꽃돌이(??)
중국을 몰라도 마윈 이름 정돈 다들 들어봤겠지?


물론 최근에 그 위상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내려가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기존에 이룬 업적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한국에선 알리바바를 다양한 분야의 온라인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잘 운영하는 중국 내에서 온갖 잡다한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 정도라고 치부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마치 애플은 예쁜 핸드폰이나 만들고, 아마존은 인터넷으로 책이나 같은 거 팔고, 페이스북은 시간 낭비 유도하는 SNS 계정을 운영하는 기업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진배없다.


오.. 이런 크나큰 오해, 노노예요. 보이는 게 다가 아닌 거 같다. 그들의 거대한 탄생의 시초인 전자상거래가 어떻게 중국 경제 전체의 환골탈태를 가져왔는지 관심을 가져보도록 한다.


중국은 원래 지역 별로 따로 노는데 익숙한 나라다. 가장 큰 이유는 일단 땅이 워낙 커서 그렇다. 같은 동네 사람(동향)끼리의 유대감이 한국보다 훨씬 깊고 단단하다.


주요 도시마다 동향 모임을 갖는 기업인도 많고, 중국에서 유명한 기업가 모임도 지역 베이스가 대다수다. 이토록 넓은 지역의 이렇게 많은 인구가 동일한 세력권에 있는 것 자체가 사실 아주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중국 역사만 보더라도, 광대한 땅덩어리에서 통합과 분열이 반복된다. 중국이 지역 별로 쪼개져서 따로 지내던 오랜 세월들이 이를 반증한다.


5호 16국 중국 분열의 시기, 광대한 땅덩어리에서 자연스럽게 통합과 분열이 반복된다.


따라서 중국에선 사랑-믿음-소망, 아니 지연-학연-업연 중에 단연코 으뜸은 지연이다.


중국에서 놀라웠던 것은 중국 내 같은 지역의 바로 옆 동네들끼리도 사투리나 억양이 서로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칭다오(青岛) 시에 속해 있는 두 행정 구역인 스난취(市南区)와 스방취(四方区)는 사투리가 그렇게 다를 수 없었다. 두 곳은 거리 상 얼마 떨어져 있지도 않다. 이와 같은 수많은 유사 상황을 보았다. 한국으로 따지면 서울 서초구 토박이와 송파구 토박이가 쓰는 억양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중간에 무슨 강이나 산이 있어서 인적 교류가 어려웠던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럴 수가? 아니 이 뭔 개소리 같지만 정말이다.


하기사 마오쩌둥도 국민당을 피해서 중국 내에서 수 천 킬로미터의 대장정 시에 말이 안 통해서 여러 통역원을 데리고 다녔다는 것은 유명하다. 실제 녹음된 마오쩌둥의 육성 발음을 들어보면 그의 후난(湖南) 사투리는 외국인이 진짜 알아듣기 힘들다. 공식 연설에서 저 정도니 사석에서는 더 심했을 것이다.


이렇게 서로 간에 말이 잘 안 통하니, 당연히 말 잘 통하는 같은 지역 출신들끼리 뭉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사실 중국어에는 북경어(北京话, 만다린)와 광둥어(广东话, 켄토니즈)만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표준어(普通话, 푸통화)로 지정된 북경 지역의 언어는 전 중국 내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 모든 지역의 의무교육 과정에 강제로 집어넣은 공용어다. 중국은 모르긴 몰라도 세부적으로 나눠보면 수 천 가지 이상의 방언이 존재할 것으로 추측된다. 남부 지역의 민난어(闽南语)도 표준어만 구사하는 사람에게는 아예 외국어로 들린다.


갑자기 이 얘기를 뜬금없이 왜 꺼내고 하니, 같은 국가지만 말이 서로 잘 안 통할 정도로 지역색이 짙다 보니 각 지역 별로 상인들도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판매 가격도 자연스레 달라진다는 것이다.


정말 친한 동네 형제(兄弟)에겐 10위안,

덜 친한 동네 사람에겐 15위안,

근처 동네 사람에겐 30위안,

완전 외지인에겐 50위안,

그리고 외국인에게 100위안 이런 식이다.


유비가 물건을 판다면 관우, 장비에겐 10위안, 간손미에겐 15위안, 노숙에겐 50위안, 조조에겐 기필코 100위안을 받을 듯 하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 중국에 가면 기본적으로 반 값으로 깎거나 0을 하나 빼고 가격 협상을 시작하란 말을 들어봤는가? 실제로 칭다오 거주 시절 수석이나 돌 조각품 등을 파는 예술품 골동 시장에 가면 뒷자리에 '0' 하나 빼는 건 기본이요, 종종 '0'을 두 개씩 빼고 흥정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인간의 기본적인 DNA가 익숙한 사람을 아끼고 모르는 사람은 배척하지만 중국은 정도가 심했다.


그런데 이런 전근대적인 상습관이 전자상거래의 정착으로 서서히 허물어지더니 전 국민의 모바일 인터넷화로 거의 한 방에 날라 간 것이다.


진시황이 6개국을 무너뜨리고 전 중원을 평정하고 사상, 법률 체계, 한자와 계측 단위 등을 일원화시켜서 이후의 통일 제국의 기틀을 마련했고, 마오쩌둥은 신중국 설립 후 내부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북경어를 공용어로 지정해서 중국 언어의 벽을 허물었다.


그리고 마윈은 전자상거래로 중국의 상거래 법칙을 통일시켜 버리고 그 중국 내 수많은 지역으로 파편화되어있던 유통 시장을 단숨에 단일 시장으로 만들었다. 물론 마윈이 애당초에 그걸 의도하고 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다.


다른 지역 사람한텐 비싼 값에 파는 게 논리적으로 너무나 당연하고 흥정을 좋아하는 중국인들 입장에선 모두에게 같은 가격으로 저렴하게 판매하는 전자상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제품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유통업의 관점에서 보면 오프라인 거래에서 결제와 물류는 쌍둥이처럼 이뤄지는 것이었다. 즉, 한 손으론 돈을 건네며 한 손으로 물건 받아오는 것이 당연한 시스템이었으나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결제 따로, 물류 따로, 물건과 돈의 동시 교환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구매자가 돈을 먼저 줄지, 판매자가 물건을 먼저 줄지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수수께끼로 남을 수도 있었다. 이런 진퇴양난의 상황을 알리바바는 미국의 페이팔에서 에스크로 결제시스템을 베껴와서 대박을 쳤다.


이 결제 시스템은 결국 금융업의 기초로서 다양한 핀테크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었고, 동시에 전자상거래에 필수로 수반되는 물류 시스템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갔다.


즉, 전자상거래로부터 시작된 중국 혁신의 시작은


1) 지역 별로 나뉘었던 유통 소비 시장의 통일,


2) 간편 결제로 시작된 금융 핀테크의 폭발적인 성장,


3) 단순히 빠른 배송을 넘어서 예측 배송 및 무인 배송 시스템까지 갖춰지고 있는 물류 업계의 커다란 발전을 가져왔다.


4) 이는 모바일 인터넷 보급을 촉진시켰으며


5) 보급된 스마트폰을 가지고 중국에서는 온갖 새로운 비즈니스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6) 스마트폰 보유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수많은 모바일 비즈니스에서 트래픽(流量, 데이터, 유량) 확보가 수월해지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중국에서 최근 5년 간 유니콘 스타트업 중에 모바일 관련 비즈니스가 아닌 업종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즉, 전자상거래의 촉발로부터 중국 혁신 경제의 꿈틀댐이 시작됐다고 비약을 하고 싶을 정도로 그 영향이 대단했다.


그래서 이 촉발의 진원지인 알리바바가 대단한 것이며, 알리바바의 창업자인 마윈이 오랜 기간 중국 최고 부자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1. 알리바바 소개: 그들이 정말 대단한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