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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밤 Oct 31. 2023

초보운전인 내가 두려워하는 것

나는 운전이 두렵다. 그러나 해야 한다.

아이를 낳고 100일 차 운전면허를 땄다.

이유는, 필기시험 만료가 코앞이라 아까워서 기능과 도로주행을 위해 학원을 등록했다.


보물이가 나에게 찾아오기 전, 나는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독학으로 필기시험을 봤다. 필기에 붙었고 운전면허 학원을 등록하려 알아보고 있던 시기에 보물이가 나에게 찾아온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모든 것을 다 멈췄다. 이유는 한번 유산의 아픔이 있었기에 또다시 지키지 못할까 봐 출퇴근 외에는 다른 것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운전면허 필기만 붙은 채 운전면허 학원 등록은 할 수 없었다. 10달 뒤에 보물이를 낳았다.

보물이 100일 때 필기가 만료되기 직전 시부모님의 도움으로 나는 면허학원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다행히도 불합격 없이 기능 도로주행 모두 합격하여 면허를 취득할 수 있었다.


면허를 딴 뒤에 운전을 하지 않으면 장롱면허가 될 것 같아 보물이 200일 차쯤 주말에 남편에게 몇 시간만 육아를 부탁한 뒤 운전연수를 받았다. 20시간의 운전연수가 끝난 뒤에도 운전을 조금씩은 해야 할 것 같아 주말에 아이와 남편과 어딘가를 갈 때 가까운 거리는 내가 운전했다.


아이가 있었기에 남편 없이 운전하는 것은 엄두도 안 났을뿐더러 어차피 우리 집은 남편 차 한 대여서 주말에만 할 수 있었다.


심장은 늘 두근두근 거렸지만 남편 없이 가끔 주말에 운전해야 하는 경우 내 심장은 이미 창문 밖을 뛰쳐나갔다.


그렇게 1년 동안은 주말에 간간히 남편과 아이를 태우고 운전을 했는데 갑자기... 우리에게 차가 생겼다.

아버님께서 보물이 등원할 때 겨울에는 추우니 아이도 나도 힘들다며 남편이 아버님 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고 내가 남편차를 타고 등원하라고 하시며 아버님 차를 주셨다.


사실 보물이의 등원길은 왕복 40분 거리로 꽤나 오래 걸리는 편이다. 유모차로 등하원 하는 게 힘들기는 했지만 할만했다. 그러나 비가 오거나 추운 날에는... 택시를 타야 했고 오전 시간엔 택시가 또 잡히지 않아 힘든 날도 많았다.


차가 생겼다는 기쁨도 잠시... 아이를 태우고 나와 둘이 운전한 경험이 별로 없기에 걱정도 많이 되었다.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고 나 혼자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늘 내 옆에 남편이 있었는데 이젠 나 스스로 운전을 해야 한다.


첫날 나는 심장이 뛰쳐나갈 것 같이 요동을 쳤다. 아이를 뒤에 태우고 운전한다는 사실이 두렵기만 했다.

걱정이 많은 나인지라 혹시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정말 많았다.


일주일 정도 차로 등하원을 하니 그 길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유리창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던 심장은 그나마 괜찮아졌다.


근데 복병이 생겼다. 차가 생기니... 이제는 내가 가야 하는 곳이 있을 때 차를 가져가야 한다. 처음으로 네비를 켜고 갔던 초행길. 심장이 창밖이 아니라 앞차 뒷 범퍼까지 뛰쳐나간 느낌이었다.


내비게이션의 소리는 하나도 안 들리고... 초행길이니 어느 지점에서 차선변경을 해야 괜찮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목적지까지 갔다가 집으로 잘 돌아오긴 했지만 이것저것 신경 쓰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서 그런지 운전의 편안함이 도대체 뭔지... 하나도 내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의 두려움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왜 운전을 두려워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전까지 운전이 덜 두려웠던 것은 내 옆에 남편이 동승했기 때문이었고 지금은 나 혼자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의한 두려움이었다.


왜 두려울까...?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 두려운 것일까 생각해 보니 운전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운전 미숙으로 인해 누군가 나에게 뭐라고 할까 봐, 나를 무시하고 욕할까 봐 그게 두려웠던 것이다. 누군가 내게 그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혼자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운전도 못하면 그냥 집에나 있을 것이지... 차는 왜 가지고 나와서...'라고 나에게 욕하는 것만 같다.


그렇다. 두려움은 이거였다. 운전이 아니라 누군가 운전이 미숙한 초보운전인 내게 욕을 하고 무시하는 말을 할까 봐였다. 운전으로 인해 나에게 무시당하는 상황이 닥칠까 나는 그게 두려운 거였다.


결국 운전이 주는 두려움이 아니었다. 운전을 안 한다고 피한다고 해서 내가 느끼지 않는 두려움이 아니라 언젠가 어떤 상황에서는 느꼈을 무시당하는 두려움을 나는 운전이라는 것으로 마주하게 된 것이다.


초행길은 늘 두렵다. 특히 입출차가 한 곳인 주차장은 더 두렵다. 이런 곳은 운전이 능숙해질 때까지는 피할 예정이다.


두렵지만 나는 오늘도 해본다. 피한다고 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누군가에게 운전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나와 두려움을 마주하는 존재다.


두려움이 턱 밑까지 차올라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고 이런저런 상상으로 눈물까지 흘렸다는 것을 알면 우리 남편 얼마나 어이없어할까...


두렵지만 오늘도 나는 운전대를 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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