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월밤 Oct 01. 2023

참는 것이 답은 아니다.

아이에게 참으라고 하고 싶지 않아, 아빠처럼.

아빠에게 힘들다고 말할 때면 아빠는 내 감정을 공감해 주고 수용하기보다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살 수는 없어, 참으며 사는 거야 “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내 감정을 표현하며 살기보다는 참으며 참아내며 내 감정하나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살았다.

참는 것은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었다. <참아낸다>는 것은 감정을 억누르고 살아간다는 것이었고 그 감정은 몇십 배로 부풀어 어느 날 분노로 튀어 올랐다.


나의 그런 모습을 본 몇몇 사람은 나를 쌈닭이나 미친년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평소엔 멀쩡하던 애가 갑자기 욱하며 화내는 걸 보고 말이다.


그렇게 참고 참았던 아빠에게 돌아온 것은 행복이 아니라 암이라는 것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아빠를 보내드리고 알았다. 아빠가 암에 걸렸던 것은, 참고 살아온 결과라는 것을.


토해낼 곳 없이 그저 꾹꾹 눌러놓고 눌러놓으니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마음에서 암이라는 것을 만들어 냈다는 것을.


누군가는 참아내는 사람을 <인내심이 있다. 착하다. 배려 깊다.>라고 할 것이고 자기감정을 바로바로 말하는 사람에겐 <성격 이상하다 버릇없다 싹수없다고> 할 것이다.


그 사람들 눈엔 왜 감정 표현을 바로바로 하는 사람이 내키지 않는 것인지 이제는 안다. 표현하지 못하며 살아온 사람들 앞에 자기감정을 잘 드러내는 사람을 보면 좋게 보일리가 없다. <나는 안 그러는데 너는 왜 그래?>라는 시선으로 보게 되는 것이겠지. 나에게 그렇게 말했던 우리 아빠처럼.


아마 아빠의 눈에도 내가 그러지 않았을까. 나는 늘 참으며 산다. 별것도 아닌 일에 너는 왜 그렇게 투덜대고 표현하고 욕하며 사냐? 참아라 이거였을지도.


아빠가 나를 사랑한 건 분명하다. 그러나 아빠는 자식에게 어떻게 하는 게 사랑을 주는 것인지 몰랐다. 내가 원하는 공감과 감정허용은 해주지 않았다. 나에겐 그게 사랑이었다.


당신도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주는 방법을 몰랐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자식을 낳는다면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아이를 낳고 늘 전전긍긍했다. 36개월이라는 황금기까지 이 아이의 성격형성에 내가 부정적인 영향을 주면 어쩌나 하고. 조금이라도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아이의 감정을 외면했던 날은 잠든 아이를 보면서 나도 같이 울었다.


그런 부모가 되지 말자고 그리도 다짐했는데 자주 깨고 우는 아이게 “뚝 그만 그만 울어” 라며 아이의 감정을 그대로 받아주지 못하는 엄마인 나를 보았다.


그렇게 후회하는 나를 보며 남편이 말했다.

“보물이는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을 텐데 당신 스스로 결핍이라고 생각하며 그러면 안돼라고 하면 보물이 도 그걸 결핍이라고 생각하고 인식하며 가져갈 거야. “


그렇다. 결핍이었다. 감정허용에 대한 결핍. 내 아이에게는 참으라고 하지 않겠다 했던 것 또한 내 마음의 결핍이었다.


어쩌면 어쩌면 엄마인 나는 아이의 감정을 받아주지 않으면 안 된다 라는 생각 또한 나 자신에게 그 감정은 엄마로서 나쁜 거라고 느끼면 안 되는 감정이라고 참으라고 하며 억압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 또한 나를 억압했던 감정임을 나는 알았다.

참고 사는 것이 답은 아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초보운전인 내가 두려워하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