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하게 살아온 20년이 아이를 낳고 무너졌다. 그리고 그때서야 알았다.
글을 쓰며 내 마음을 정리했던 것은 중학교 때부터였다.
사춘기 때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이 휘몰아쳤다.
그때는 친구들에게 내 감정을 털어놓는 것이 나의 단점을 들어내는 것만 같아 상상할 수 없었다.
아빠에게 힘든 감정을 말해보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되자 힘든 감정이 몰아칠 때마다 나는 나에게 편지를 쓰듯 일기를 썼다.
내 마음의 힘든 것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기보다는 나는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 수 있는 것이 그렇게 나는 내 감정을 들여다보고 정리했던 것이다.
15살 때부터 썼던 일기장은 30살이 넘은 지금은 15권이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늘어나겠지.
일기장을 보면 그때 나에게 어떤 힘듦이 있었는지 어떤 기쁨이 있었는지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다.
지금도 나는 다 털어놓지 못하는 내 마음속 이야기는 종이 일기장에 쓰곤 한다. 누군가를 욕하고 싶을 때도 일기장에 막 욕을 쓰며 내 마음을 풀어낸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무너진 마음을 다 잡으려 애쓸 때 많이 힘들었다. 그다음으로 힘들었던 것은 아이를 낳고 육아하며 나에게 찾아온 산후우울증이었다.
아이를 낳고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산후 우울증이 찾아왔다. 그리도 원했던 아이였는데 엄마가 처음이었던지라 모든 게 다 두렵고 버거웠다. 일찍 엄마를 보내줘야 했던 어린 시절 나는 괜찮다고 나를 다독이며 씩씩하게 살아왔었는데 아이를 낳고 내가 엄마가 되고 나니 무너져버렸다. 씩씩할 수 없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했고 기대고 싶고 힘들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럴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견뎌내야 했고 그 상황이 복합적으로 겹치며 산후우울증이 세게 왔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아이와 둘이 있는 그 시간에 베란다 창문 밖을 보는데 뛰어내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아무렇지 않게 든 나에게 놀랐고 그런 나 자신이 무서웠다. 정말 내가 죽어버릴까 봐.
나 같은 게 무슨 엄마인가 싶고 부정적인 감정만 가득했다. 산후 우울증은 참 무서운 것이었다. 나를 잡아먹고 가족을 삼키는 아주 무서운 것이었다. 남편도 할 수 있는 만큼 내 옆에서 해주었지만 남편이 출근해서 내 곁에 없는 그 시간들이 나에게는 굉장히 힘들었다. 이렇게 육아라는 것을 감당 못할 나였다면 아이를 낳지 말걸 이 생각이 가득했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만 한 없이 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나는 상담을 받았다.
상담이라는 것이 상담 자체로도 좋아지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는다는 게 큰 위로가 되었다.
친구, 남편에게조차 말하지 못했던 내 마음을 상담 선생님께 털어놓으며 목놓아 울었다.
엄마가 너무나도 보고 싶고 그립다고, 아무렇지 않은 척 잘 해내는 척해왔는데 그저 그 존재만으로도 힘이 될 것 같다고 그런데 그런 존재조차 없으니 힘든데 힘들지 않은 척 해내는 게 너무 힘들다고 말이다.
엄마가 되었는데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미워하는 척 아닌 척했지만 아이를 낳고 내가 엄마가 되니 그제야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참 많이 힘들었겠다는 마음이.
내가 보물이를 낳지 않았다면 늘 괜찮은 척했던 감정이 아무렇지 않게 잘 살고 있는 척했던 감정은 너무 오랫동안 꾹꾹 눌러놓아 있지도 않은 감정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갔을 거다. 그리고 나 자신을 들여다볼 생각조차 안 했을 것 같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 미움, 이해에 대한 것들은 어쩌면 언젠가는 한 번쯤은 마주해야 할 감정이었다.
힘들었지만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음에 감사하고 지금도 육아하며 문득문득 올라오는 감정에 온몸이 힘들 정도로 힘든 날도 있지만 이 또한 내가 겪어야 할 것들이라 생각하며 받아들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