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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밤 Jul 04. 2024

불편한 감정은 미워하는 감정이었다.

미워하는 감정도 감정이다.

에너지 방전, 안 힘들다고 버텼던 날들, 괜찮다고 했던 날들이 전부다 몰려오는 것만 같은 요즘이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보면 마음이 불편했던 사람들. 나와 상관이 없었는데도 특정한 모습을 보면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돈을 펑펑 쓰는 사람들, 카드 할부를 아무것도 아닌 듯이 쓰는 사람들, 쥐뿔도 없는데 자존심 남에게 보이는 것 때문에 좋은 차를 타고 다니고 명품을 휘두루고 다니고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들, 미래에 대한 계획 없이 사는 사람들을 보면 화남을 넘어서서 분노가 올라왔다.


사실 나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인데 나는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라는 생각을 요즘 해봤다.


아빠가 생각났다. 겉으로는 고마운 아빠라고 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아빠를 그리도 미워했던 것이었다. 겉으로는 우리 아빠 고생했네라고 했지만 속에서 나는 아빠를 미워하는 마음이 컸다.


돈 때문에 학원 보내달라는 말도 못 했다. 돈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한 적도 없었다. 나는 그렇게 돈의 눈치를 보면서 살았다.


아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더라도 남에게 보이는 게 중요했던 사람이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과는 다르게 남에게 보이는 것이 중요했던 아빠, 없어도 있는 척 잘 사는 척 보여주려고 했던 아빠.


돈이 없으니 적금을 못한다면서, 자잘한 것은 계획 없이 소비했던 아빠. 부자들의 생활방식 또는 돈에 관련한 미디어가 나오면 재수 없다고 티비를 돌리던 아빠.


돈이 없었지만 남들에게 보이는 것, 미래에 대한 계획 없이 소비했던 아빠, 카드 할부는 늘 일상이었던 자존심 버리고 사는 게 죽기보다 힘들었던 아빠.


나는 그런 아빠가 미웠던 것이었다. 그러나 난 누구에게도 아빠가 밉다고 말할 수 없었다.


<네가 맏이니까 딸이니까 그래도 아빠니까 잘 해야지, 아빠가 고생하면서 이렇게 키우는데>라는 말들은 내 마음속에서조차 아빠를 미워하는 것 또한 미운 딸로 만들어버렸다. 마치 그 감정이 잘못된 것처럼. 내가 못된 딸인 것처럼 말이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그렇게 카드빚이 많았는지, 그렇게 대출이 많았는지, 개인회생을 할 정도로 신용불량자였는지 나는 그제야 알았다.


없이 살 수 있더라도, 왜 아낄 생각을 안 했을까,,, 왜 일을 벌일 생각만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힘들었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왜 일을 이렇게나 벌려놓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그 일들을 수습하느라 1년 가까운 시간들을 소송에 보냈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말이다.


너무 무책임했다. 슬퍼할 시간도 주지 않을 정도로 모든 일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지금 내가 이렇게 내 집을 가지고 계획적인 소비를 하는 것은 어쩌면 아빠의 영향이다. 절대 나는 저리 무책임하게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소비하지 않겠노라고, 남에게 보이는 것 자존심 때문에 없는데 있는척하지 않겠노라고.


그래서였다. 계획 없이 소비하는 사람들을 싫어했던 이유가. 아빠가 돌아가시고 그 뒷일들을 감당했던 나의 그때의 일이 떠올라서 마치 그렇게 만들어버리는 사람들 같아서 말이다.


무책임, 무책임, 무책임 무책임했다.


내 삶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 특히 친가 어른들은 나에게 <그래도 아빠인데 어쩌니 네가 이해해야지 불쌍하지 뭐>라고 말한다.


그것도 참 무책임하다. 돈으로 다 떠안은 그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들은 그때 그 상황과 관련이 없으니 그렇게 쉽게 말했겠지.


요즘 올라오는 감정은 분노다. 굉장한 분노.


나는 절대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이렇게 살고 있다.


돈이 없으면 그냥 없는 대로 살지, 남들이 뭐라 하든 그냥 없는 대로 살지, 돈이 너무 없으면 아빠가 돈이 없어서 이건 못한다 하지 무슨 생각으로 그리 빚을 지면서까지 살았는가, 왜 남겨졌던 내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아야 했을까 하는 생각들


벌써 1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 속에서는 분노가 차오른다. 그때 내 힘듦이 아직도 남아있어서 그런지 나는 아빠처럼 무계획 소비하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화가 난다. 어쩌면 그 사람들의 모습에서 아빠의 모습이 보여서 그러는 거겠지. 그 힘든 날들이 떠오르니 말이다.


지금 내가 조금은 여유롭게 살고 있는 것은 누구도 아닌 죽기 살기로 살아왔던 내 노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노력해온 대가라고 말이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 누구의 덕도 아니다.


10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내가 만들어온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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