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랑지 내리는 쥐
규직 씨는 대학졸업 후 벌써 7년째 취준생신분이다. 학생으로 지낼 때만 해도 나름 성적도 나쁘지 않았고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을 스펙을 쌓아 놓았다는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2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온 뒤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주변의 동기는 그렇다 치고 어찌 보면 까마득한 후배들은 죄다 교환학생이나 외국 유학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모두들 졸업 후의 진로를 위한 선택이라고 했다.
규직 씨도 움찔했다. 남들은 다 뭐라도 하는데 자기 자신만 정체전선의 한복판에 머물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더군다나
얼핏 보기에 조금이라도 똑똑한 머리를 달고 다닌다고 느껴졌던 놈들은 하나같이 다 자퇴의 길로 들어섰다. 요즘 그나마 돈을 벌어먹기 쉬운 의사의 길을 가겠다는 심산이다.
규직 씨도 똑똑한 머리를 덧입고 하얀 가운을 쟁취하기 위한 여정에 돌입해야 하는 걸까? 그러기엔 너무 와버렸다. 이상하리만치 군대에 다녀오 고난 뒤 머리가 굳은 느낌이다. 머리와 몸이 따로 도는 느낌이다. 가능한 머리를 추스려 멀리 달아나 있던 머리를 데리고 오려 안간힘을 써대 가며 겨우 대학졸업은 마쳤고 취업준비를 하게 된 거다. 그렇게 취준생의 자리에서 벌써 7년을 소비했다. 요즘 경기가 어려워서 그런지 신입사원을 채용하려 하는 회사가 줄었다. 이왕이면 경력직을 뽑는 게 즉시전력감으로 유용해서인지 풋풋한 신입의 자리는 대체로 요원하다. 그러다 보니 가뭄에 콩 나는 듯한 신입공채 자리는 바늘의 코를 통과하기보다 어렵다. 규직 씨는 취업을 위해 찔러 넣은 이력서만 벌써 100여 곳 이상이다. 가고 싶은 회사는 많은데 당최 뽑아주질 않는다. 시간은 자꾸 가는데, 주변의 눈치는 대체로 차갑게 그 온도를 내리며 삐딱한 시선으로 규직 씨를 외면하기 일쑤다, 그래서인지 그놈의 합격소리 나 문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방법을 바꿔보기로 했다. 요즘 실제로 쥐새끼 빼고는 다 이용한다는 <쳇 쥐 PT>에게 회사별로 어떠한 유형의 신입을
원하는지 물어보고 그에 맞는 맞춤 이력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더하여 <쳇 쥐 PT>에게 이런 질문도 해보았다.
"헤이 쥐! 내가 여기 A나 B혹은 C사에 지원하려고 하는데 어디에 이력서를 넣어야 승산이 있을 것 같아?"
이상한 일이다. 요즘 이 하찮은 판단을 사람이 아닌 <쳇 쥐 PT>에게 습관처럼 물어보고 있다. 그리고 기대를 한다.
결국 그 쥐 PT의 답변을 따라 이력서를 넣고 기다렸다.
신기하다. 1차 서류심사에 합격했다고 연락이 왔다. 여태 이런 일이 없었다. 진작에 이 방법을 썼어야 했다. 모처럼의 합격소식에 마음이 붕 떴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주변 친구들한테 자랑질을 해댔다. 그리고 나서 2차 면접시험일을 통보받았다. 규직 씨는 재미를 붙였다. 이번엔 면접시험용 예상 질문 100개를 <쳇 쥐 PT>에게 뽑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달달 외웠다. 2차 시험도 합격이다. 이게 먹힌다. 그리고 최종시험이다. 최종시험에는 주제가 주어졌고 이에 대한 자신의 소견을 임원면접 시 말하면 되는 거였다. 규직 씨는 자신 있었다. 그에게는 강력한 쥐가 있었다. 이번에도 그 쥐에게 피력할 소견을 의뢰했다. 그리고 그 소견으로 임원면접을 무사히 마쳤다. 최종합격통보를 받았다.
"규직 씨! 합격자를 위한 오리엔테이션이 있으니 8월 8일에
서초동 본관건물 1층로비에 오전 8시까지 오세요"
규직 씨는 온몸에 흥분이 바들거리며 달라붙어 있는 것을 느꼈다. 이 흥분은 혼자서는 좀처럼 감당이 안되기에 이곳저곳 그를 아는 지인들과 함께 하며 나누기로 하였다.
"어무이! 나 최종합격이래~"
여기는 서초동 본관 1층 로비다. 일찌감치 도착한 합격자들 사이에 규직 씨도 있었다. 본사의 담당자가 출석을
확인하느라 이름을 불러댄다. 8시가 다 되도록 이름을 호명하는데 규직 씨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
"저, 저기요 제 이름을 부르셨는데 제가 못 들은 걸까요?"
담당자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어딘가에 전화를 한다.
"저 죄송한데요, 저기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1 회의실로
가 보실래요?"
뭔가 쎄한 기분으로 회의실의 문을 두드렸다.
"네 들어오세요"
규직 씨는 쓸쓸히 본관 로비의 회전문을 나선다. 그는 더 이상 합격자의 신세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땡 탈락자!
최종단계에서 임원과의 소견발표가 문제였다. 최종합격자를
선별하고 난 후에 자체결산 중 소수의 인원이 면접 중 쏟아낸
발언이 토씨하나 안 틀리고 똑같았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결국 그들의 합격을 취소하기로 하였다는 것.
규직 씨는 결국 정규직의 꿈에서 깨어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규직 씨는 애꿎은 <쳇 쥐 PT> 에게
화풀이 중이다.
"야! 너 때문에 나 떨어졌다 어떡할 거야?"
"저런, 죄송하네요 하지만 거기까지가 제 한계입니다. 안타깝지만 그저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말고 해 드릴 게 없네요"
그저 죄송하고 어쩔 수가 없다는 꼬랑지만 길게 빼서 내보인다. 쳇! 그래서 쥐 PT였네그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