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콩트 2(39)

차마 그 말만은

by 최병석

장하군 씨의 일상은 때로 따분하기까지 하다. 정부에서 정해준 은퇴연한에 걸려 억지로 쉬었음에 속해버렸기 때문이다. 아직은 그래도 팔팔한데도 이제 필요 없으니 집에 계시라고 미소 속에 보내는 등떠다밈을 이겨낼 방도가 없다. 암튼 억지로 집에서 쉬게 된 하군씨는 정신을 못 차리는 중이다. 분명 일어날 이유가 없음에도 아침 6시가 되면 또렷해지는 뇌의 상태는 최소한 40년 이상의 습관을 뒤집어썼던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바보처럼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동적으로 닫혀있던 눈꺼풀을 번쩍 치켜올릴 이유가 없다. 바보 같은 행동 때문에 멀뚱하게 지내야 하는 시간들이 길어졌다. 어제 까지만 해도 직장인 장 부장으로 직원들 모아놓고 모닝커피로 아침을열어젖혔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창문으로 이미 들어와 앉아있는 햇볕은 아무도 없는 빈 공간을 고요함으로 가득 채워 놓은 채 언제쯤이면 자신이 만들어 놓은 이 무료함에 동참하겠냐는 물음표를 마치 고지 위의 요새에서 적군들을 향해

무지막지하게 쏘아대는 화살처럼 날려댄다.


"슈~웃 피잉 핑"


하다못해 꿈지럭거리던 하군씨가 스러져 누워있는 육신을 일으켰다.


"그래 가라앉은 기운을 움직여야 해"


일어나 몸을 추스르는데 배가 고프다. 몸은 늘어졌어도 일찌감치 활동을 개시한 눈동자가 냉장고문을 열어서 배고픔의 대답을 스캔해 본다. 뭐가 없다.

장하군 씨가 정장대신 세워진 옷걸이에서 트레이닝복을 벗겨내 자신의 외출복으로 삼는다. 밖으로 나왔다. 기분도 껄쩍지근한데 오늘은 동네 맛집에서 아점을 때우는 거다.


"어서 오세요^"


동네에서 뿐 아니라 비교적 먼 동네까지도 소문이 자자한 칼국수집에 들렀다. 이 집은 워낙 장사가 잘되는 집인지라

요즘 같은 불경기에도 확장이전을 감행하였고 오늘 들린 집이 바로 새롭게 오픈한 그 집이다. 이 집은 음식도 음식이지만 무언가 기계처럼 잘 짜여진 시스템으로 손님접대가 이어지기 때문에 많은 손님이 들이닥쳐도 별 문제가 없는 집이었다.

그런데 새 영업장에 들어서는 하군씨의 첫 느낌이 싸하다.

장소가 넓어져서인지 분위기가 산만하다. 유기적으로 움직이던 직원들의 응대는 찾아볼 수없고 대기석에서 기다리는 손님들의 컨트롤도 엉망이다. 게다가 앞손님이 취식하고 난 후의 청소도 미흡하다.

장하군 씨가 가게 안으로 들어섰는데도 직원의 안내가 없다.그가 대기석의 손님들을 보고도 못 본 척하며 비교적 좋은 자리로 냅다 앉았다. 역시나 빈그릇들이 식탁 위에 그대로 놓여 있다. 시스템의 빈구멍에 일찌감치 앉아있는 하군씨를 알아챈 직원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애당초 미리 입장한 손님처럼 모양을 바꾸었다. 스마트폰의 뉴스를 들여다보며 시간을 때우기를 30분이 지났다. 아무도 관심이 없다. 주변을 둘러보니 하군씨말고 다른 이들은 이제 대기석에서 직원의 안내로 자리를 배정받고 있다. 그 안내를 받은 자들에게는 맛있는 칼국수가 비교적 정확하게 배달되고 있었다. 하군씨가 앉아있는 자리에는 여전히 빈 그릇이 치워지지도 않고 있다. 언뜻 보면 하군씨는 주문한 칼국수를 깔끔하게 다 먹고 난 이후의 손님일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 일이 현실이 되었다.


소문난 칼국수를 먹기 위해 거의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을 기다렸건만 여전히 그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직원이 없다. 결국 장하군 씨가 입 밖으로 속에 있는 소리를 꺼냈다.


"사장님! 여기 좀 봐줘요 나보다 늦게 오신 분들은 다 먹고 나갔는데 왜 나는 안 주는 거요?"


"언제 오셨는데요? 다 드시고 딴 볼일 보고 계신 거 아니셨어요?"


장하군 씨가 장한 일을 했다. 그가 여태 칼국수를 영접하지 못했던 이유가 <새치기>때문이었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새치기로 인한 이득은 오히려 손해를 야기했다. 그 손해는 하군씨의 뱃속이 먼저 알아봤다.


"꼬르륵 꼬륵 꼬오륵"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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