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콩트 2(41)

주머니 속 사랑

by 최병석

구비한 씨는 직장생활 10년 차이다. 입사 이래로 회사밖에서 근무를 해본 적이 없다. 사실 그는 회사 내에서만 꼼짝없이 붙어 다람쥐 쳇바퀴처럼 늘 반복되는 패턴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다. 이런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심정이 가슴을 넘어 머리끝까지 올라왔다고도 할 수 있다. 견디다 못해 팀장한테 면담을 요청했다.


"팀장님! 저 다른 부서로 좀 보내주세요"


"아니 왜? 왜 그러는데?"


"그냥 제 마음이 여길 벗어나라고 말을 하네요"


"아니 그게 말이 되는가? 그런 허황된 말이 어디 있느냐고?"


팀장은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만 짓는다.


"팀장님! 이렇게 날마다 틀에 박힌 생활이 너무나 싫다고요"


팀장의 얼굴에 미묘한 감정선이 도드라졌다.


"자 네 생각은 알겠네만 이걸 어쩐다...."


시름이 깊어지며 밖에서 실컷 노닐던 팀장님의 생각이란 것이 느닷없이 그의 심장 속을 비집는다.


"구 과장! 자네 없으면 우리 부서 힘들어지는 건 알지?"


"내 윗선에 말씀드려 볼게 조금만 참자고"


구비한 씨의 귓가에 그 말이 들어올 리는 없지만 그래도 한편에 남아있는 잔정이라는 게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나서 벌써 한 달째다.


'휴~이건 사표를 쓰라는 얘기겠지?'


한 달 전만 해도 가라앉을 뻔했던 날개의 끄트머리가 또다시 움찔거린다. 그의 주머니 속에는 사직서가 바깥구경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이다.


"구비한 과장님~ 대표님께서 찾으십니다. 방송을 들으시는 대로 대표실로 가 주시기 바랍니다"


구비한 과장의 생각이 어느새 대표님한테로 쳐들어간 것일까?

생각도 못한 호출이 구 과장의 생각에 묵직하게 올라탔다.


"이여 구 과장! 자네 울회사에 입사한 지 벌써 10년이던데 고생 많이 했어 그 자네 팀의 오 부장한테 얘기 들었네 요즘 많이 힘든가 봐? 그래서 내 이번에 자네한테 일주일간의 특별휴가를 주기로 하였네"


"어때 구 과장 맘에 드나?"


용무를 마치고 대표실을 나오는 구 과장의 뒤통수에 선물이라는 총알이 들어와 박혔다.


"아 참! 구 과장 여기 얼마 안 되지만 내 휴가비 좀 준비했네, 마음 좀 편히 다스리고 오시게나"


구 과장의 굳어졌던 마음에 째지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 이러다가 늦겠어... 서둘러야 해"


모처럼의 귀한 시간인지라 함께 여행을 떠나자는 구비한 씨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건만 웬일인지 아내는 한사코 거절의 기운을 마구 쏘아댄다. 가뜩이나 힘들어하는 남편에게 그야말로 힐링의 시간을 온전히 주어서 개과천선(?)의 기회를 주고야 말겠다는 깊은 뜻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봇 아니 늦는다고 하더구먼 어디 계신 거예욧?"


참으로 이상스러운 일이다. 외출하려면 늘 아내를 닦달하고 나면 꼭 아랫배에서 브레이크를 걸고야 마니 말이다.


오늘도 예외없다. 급박하게 찾아오신 뒷동네의 그분 때문에 아내의 잔소리를 감내해야만 한다. 아니 이번엔 그뿐이 아니다. 여차하다가는 공항행 리무진버스를 놓칠 수도 있겠다. 서둘러 옷깃을 추스르고 후다닥 아내가 기다리는 차로 움직였다.


"여보 자 여기 키요"


"에? 자기가 운전해 주는 거 아녔어?"


"나 당신이 옆에 있으면 긴장되어서 운전 못하는 거 알잖아"


"그래 그래 알겠어 알았어요"


리무진버스를 놓칠까 봐 다소 과격하게 차를 몰았다.

그리고 마침내 세이프. 구비한 씨가 차여서 내려 묵직한 캐리어와 구비된 사랑의 포옹을 아내에게 격한 시전으로 선보였다.


"사랑하는 자갸 덕분에 가서 마음 잘 추스르고 올게요, 사랑하고 사랑합니다. 쪼~옥"


다소 아쉬움이 묻어나는 아내의 손을 놓으며 마침 도착한 공항행 리무진 버스에 몸을 실었다.


"자갸, 어서 들어가요, 이제 갑니다."


굴러가는 버스의 바퀴에 그동안의 답답했던 찌꺼기가 굴곡진 자국으로 지워지려는 찰나의 시간.


편안하고 안락한 리무진버스의 의자에 몸을 기대어 여행의 시작이 묶여있는 끈을 풀어내려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여봇! 차키, 차키를 가지고 가버렸네 나 이제 어쩌요?


아뿔싸! 모두 다 완벽하게 구비된 줄 알았었는데 이를 어쩔.


버스는 계속 굴러가고 이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모처럼의 휴가는 허무한 비행기의 배기연기 속으로 사라져 버리게 된다. 기껏 운전하고 정신머리를 놓쳐버려 주머니 속의 차키를 아내에게 주었어야 한다는 걸 깜박했다


환장하겠습니다. 아코~죽겠넹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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